인스타툰 <고기자의 수습생활>에는 다양한 고양이 기자들이 등장한다. 치즈냥이(노란색 털을 가진 고양이)인 고 기자는 마포 경찰서에서 ‘사쓰마와리’를 하며 발제와 보고 압박에 눈물을 흘리고, 술을 잘 마시지 못하고 내향적인 자신이 기자 일과 잘 맞는지 고민한다. 담배 쩐내를 걱정하면서도 쉬기 위해 담배를 피우는 흰색 고양이 동료 기자, 기자는 출입처를 잘 조져야 한다며 고 기자를 나무라는 검은 점박이 고양이 부장도 있다.
주니어 기자의 고민과 고충을 담은 <고기자의 수습생활>은 실제 한 일간지 경제부 기자인 본인과 동료 기자들의 경험담을 소재로 그려졌다. 지난해 6월 마포 경찰서 수습 생활을 담은 첫 화를 선보인 고 기자는 어느덧 51편(15일 기준)의 기자 이야기를 내놓은 2년 차 기자가 됐다. 기자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제를 일으키며 <고기자의 수습생활> 계정(@gogizanim_)은 어느새 팔로워 957명이 됐다. 고 기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며 “그냥 혼잣말하듯, 철저히 기자 얘기만 그려서 올리던 계정이었다. 팔로워에 대한 기대도 없었는데 꾸준히 숫자가 늘어나고, ‘좋아요’ 수가 올라가고 있어 요즘 설렌다”고 말했다. “부장이 본다고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고기자의 수습생활>에는 익명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터뷰를 익명으로 진행한 까닭이다.
“‘조진다’라는 표현은 직업적 자아의 폭력적인 발현같다”, “직업과 일상 분리가 너무 어렵지만, Let's do 사리분별. keep the 사회성” 등 만화 속에는 기자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내용이 담겨있다. 한 편당 ‘좋아요’ 수는 100개 정도, 게시물마다 “누가 내 맘 읽었냐”, “맞는 말 대잔치” 등의 댓글이 달려있다. 고 기자의 한 친구는 그의 정체를 모르고 ‘팬이다’라는 다이렉트메시지(DM)을 보내 고 기자가 술자리에서 “고 기자는 사실 나다”라고 고백한 일도 있었다.
고 기자에게 <고기자의 수습생활>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도피처였다. <고기자>를 그리기로 맘 먹었을 때 그는 각종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심해진 상태였다. 몇 년 전 다녔던 병원을 다시 찾아야 할지 고민하다 우연히 그림을 떠올렸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은 없지만, 집에서 키우는 세 마리의 고양이, 길에서 본 고양이, 친구의 고양이를 모델로 삼아 기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냥 힘들었던 기억으로 흘려보내는 대신 기록해두고, 그러다 누군가는 공감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연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그리고 싶은 내용이 생기면 자유롭게 그리고 있죠. 아주 스트레스가 심했던 날이면 그냥 자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그림일기를 쓰듯 하나 남기기도 하고요.”
<고기자의 수습생활>은 “징징대는”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하지만, 귀여운 고양이 그림 속 담겨있는 고민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처음 경찰서에 “버려지다시피” 사쓰마와리를 시작했을 때 ‘내가 그렇게까지 주체적인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고, 일반 회사보다는 능동적이고, 자기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조직의 구성원을 기대했지만 결국 ‘신문사도 회사고, 기자도 회사원’이라는 현실을 깨달았다. 2년 차 기자가 된 현재, ‘하루살이’로만 살아가는 것이 요즘 고민이다.
“너무 바쁜 하루를 살다보니 시각이 근시안적으로 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지면과 온라인 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주문, ‘클릭 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압박 등에 시달리다 보면 ‘진짜 내가 쓰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거의 없죠. 조금 더 긴 호흡의 기사를 써보고 싶고, 다른 방향에서도 생각해보고 싶은데 그런 경험이 오히려 주니어였을 때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면 좋을 것 같아요.”
<고기자의 수습생활>을 보고 한 독자가 고 기자에게 DM을 보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등 독자들과 고 기자는 서로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있다. 힘든 기자의 일상이 담긴 만화를 보고 오히려 기자를 더 꿈꾸게 됐다는 기자 지망생의 DM은 고 기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 반응이다.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징징대고 있는데 누군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짜릿하게 정신이 들고는 해요. 힘든 게 더 많지만,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고, 여전히 좋은 기자와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동료 기자에게는 각자의 자리에서 힘냈으면 좋겠다고 전하고 싶어요. ‘기자’라는 느슨한 정체성을 공유하지만 모두 다른 사람인만큼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무게의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