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같은 순간... 사진 찍고도 믿기지 않았어요"

한겨레, 노숙인에게 외투·장갑 벗어준 시민 사진 화제
대통령 기자회견·이재용 재판 제치고 1면 실어

한겨레신문 제공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도 아닌, 노숙인에게 외투와 장갑을 벗어준 한 시민이었다. 한겨레신문이 19일자 1면에 실은 사진이다.

18일 오전, 백소아 한겨레 사진기자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시민들을 취재하고 역사 밖으로 바삐 움직였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눈을 스케치하기 위해서였다.

펑펑 쏟아지던 눈을 취재하던 백 기자의 카메라 앵글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서울역 앞 광장에서 노숙인에게 지나가던 시민이 자신이 입고 있던 방한용 외투를 벗어 건네고 있었다. 그리고 주머니 속 장갑과 5만원짜리 지폐 한 장도. 


찰나의 순간을 잡은 그는 놀란 마음을 다잡고 얼른 뛰어가 노숙인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선생님이 잠바랑 장갑이랑 돈도 다 주신 거예요?”

“네, 너무 추워서 커피 한잔 사달라고 했는데 아무런 대꾸도 없이 내 어깨를 잡더니 입고 있던 외투와 장갑을 줘 너무 고맙고 눈물이 납니다.”

노숙인을 인터뷰하고 주위를 둘러봤지만 외투를 건넨 시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마법 같은 순간이었어요.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았으니까요.” 백 기자는 19일 기자협회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격려 이메일과 응원 문자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핫팩이라도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보내야 하나”, “코로나19로 우울했는데, 출근길에 마음 따뜻한 사진 잘봤다”, “홈리스 앤 앤젤” 등등.  

이 사진은 18일 오후 디지털(“커피 한잔” 부탁한 노숙인에게 점퍼∙장갑까지 건넨 시민)로 나가고 19일자 종이신문 1면에 실렸다. 백 기자는 “신년 기자회견도 있고, 이재용 부회장도 있고 해서 1면에 실릴지 생각도 못했다”며 “저라면 못 밀었을텐데, 부장이 1면 회의에 가지고 갔다. 한겨레라 가능했다”고 말했다.

윤운식 한겨레 사진부장은 “여러모로 어려운 시절이지만 우리 사회에 아직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대통령 기자회견이나 이재용 재판은 종합면에 2~3개면씩 펼치고 관련 사진도 여러 장 들어가니 1면에 이 사진을 쓰자고 건의했고 국장단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했다. 


한겨레신문 19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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