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 언론은 문제 제기 아닌 '문제 해결'을 하라"

[코로나 변곡점, 언론의 역할은]
'O명 사망' 사실전달 그쳐선 안 돼
'제목 보는 독자' 고려할 제목 짓고
'기자에 시간 더 줄' 회사 결단 필요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다음 달부터 시작된다. ‘코로나 팬데믹’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시기, 언론 보도가 유의할 점은 무엇일까. 나아가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현 시점에서 언론의 최우선 과제로는 ‘시민들의 이성적인 판단을 도와 백신 공포를 해소하고 접종률을 높일 수 있는 뉴스’가 꼽힌다. 정부는 다음달부터 본격 백신 접종을 시작해 오는 9월까지 전 국민의 70%를 대상으로 1차 접종을 시행, 11월까지 집단면역을 형성하겠다는 목표를 최근 밝혔지만 백신 공포로 접종률이 떨어질 경우 무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 의학과 교수는 “굉장히 오래 맞아온 백신을 두고도 두려움을 갖기 마련인데 신종 감염병에 대해선 ‘백신 헤지턴시(vaccine hesitancy)’가 클 수밖에 없다”면서도 “(백신을) 맞히기 전후나 과정에서 여러 일들이 벌어질 텐데 숨기라는 말이 아니다. 최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다양한 루트로 확인하고 과학적 근거와 함께 전해줬으면 한다. 독자들이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을 돕는 기사를 부탁한다”고 했다.



언론보도는 백신 접종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998년 영국에선 ‘웨이크필드 사건’이 불거졌는데 유력 의학학술지에 MMR(홍역-볼거리-풍진) 백신 예방접종이 자폐증과 연관 있다는 논문이 게재되며 ‘안티 백신’ 운동 확산이 초래된 경우다. 1998년~2006년 사이 영국 언론 중 40%는 ‘연관 있다’는 한 가지 관점을 중심으로 사안을 다뤄 논란 확산을 적극 야기했고, 영국과 유럽 등에선 백신 접종률이 급락했다. 홍역 집단 발병이 일어나기도 했다. 해당 연구자는 연구비 관련 이해충돌 위반으로 의사면허를 박탈당하고, 이후 ‘연관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지만 백신 접종률이 논문발표 이전으로 회복되는 덴 20년이 걸렸다.


국내에선 지난해 10월 독감 백신을 맞은 고교생이 이틀 만에 숨진 일 등이 벌어지고 실제 지난해 접종률이 전년보다 9.1%포인트 떨어진 64%에 그친 바 있다.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는 “백신과 사망 간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았고 전문가들은 백신이 원인일 가능성이 낮다고 보지만 실제 접종률이 떨어졌다.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으로 독감 발생률은 줄었지만 향후 미칠 파장이 어떨진 고민되는 지점”이라고 했다.


최근 노르웨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사람 가운데 수십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는 백신 보도와 관련해 국내 언론이 바꿔야 할 관행과 업무방식을 드러낸 경우였다. ‘단순히 사실 자체만 전달하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노르웨이 의약청 발 보고서를 다룬 외신 인용 보도는 지난 16일부터 국내 수십개 매체를 통해 별반 내용 차이 없이 23명, 29명, 33명 등 사망자 수를 불려가며 반복 재생산됐다. 노르웨이 당국이 지난 19일 ‘백신을 우선 접종한 요양원 거주자 대부분은 심각한 기저질환이 있거나 삶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 있고 매주 평균 요양원 거주자 300명이 사망한다’며 시간 순서상 선후 관계로 이를 설명할 때까지 보도는 계속됐다.


이소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사실을 보도했다고 하지만 인과관계가 파악되지 않은 사안이 있는 것처럼 보도되는 전형이다. 불확실한 건 불확실하다고 보도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건 ‘난 백신을 맞아도 되나’일 텐데 언론보도는 ‘그렇다더라’ ‘판단은 알아서 해라’에 그쳐선 안 된다. 문제제기가 아닌 문제해결 차원에서, 언론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재빠른 1보로 관심을 모으고 2보, 3보를 통해 기사를 전개해온 국내 언론 관행이 코로나19 보도에선 달라질 필요성을 시사한다. ‘백신 접종 후 사망’이란 1보의 공포감은 추후 어떤 후속이 나와도 잊히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고 과학적 논거를 따져보면 1보와 3보가 담은 실체적 진실이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 ‘해외에서 백신 접종 후 사망했다’는 보도는 조만간 국내 버전으로 바뀌어 반복될 소지가 큰 만큼 개선이 요구된다.


백신 뉴스의 ‘제목달기’ 역시 고민을 남긴다. 앞서 ‘노르웨이 보도’ 상당수는 단순 사실 전달에 머물긴 했어도 신중한 태도가 어느 정도는 담보돼 있었다. 하지만 기사 제목은 <노르웨이 백신 접종 후 사망자 속출...화이자 맞은 23명> <노르웨이 29명 죽음 쇼크...백신 수급보다 포비아가 더 걱정> <맞힐수록 늘어 사망자 33명...노르웨이 ‘화이자 백신’ 딜레마> 등으로 그렇지 않았다. 제목만 보고 마는 이용자가 많다는 현실을 고려한 신중함이 요구된다.


과학의 언어를 올바로 이해하고 대중에게 전하기 위해 ‘기자들 전문성을 높이고, 관련 보도 생산에 시간을 더 줄 필요성’도 제기된다. 시사IN은 최신호 기사를 통해 노르웨이 의약청 보고서에서 특히 언론 관심을 받았던, “그러나 매우 허약한 환자의 경우, 백신으로 인한 경증의 부작용이라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문장에 주목했다. 언론보도는 이를 백신 접종과 사망 간 관련 가능성을 염두하는 차원에서 다뤘지만 전문가들은 “조심스러운 당부”로 해석하는 인식차가 엿보인다.


위 <노르웨이 백신 문제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들> 기사를 쓰고 지속적으로 코로나 이슈를 다뤄온 김연희 시사IN 기자는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훈련받은 분들은 결코 ‘100% 안전하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위험이 주의 수준인지, 무게를 가졌는지 판단이 어려운데 과학자들의 언어를 언론이 잘 알아듣고 풀어쓰는 역할이 필요하다”면서 “기성언론 문법대로라면 ‘100% 안전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 쓰겠지만 사실은 ‘안전하다’에 가까울 수 있는데 이 맥락을 잘 살피는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백신 기사를 쓸 때 이중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와 보건의료 위기 상황에서 공공재인 언론이 위기 돌파에 도움을 줘야 하고, 동시에 ‘와치독’으로서 긴장감도 가져야 하는, 국내 저널리스트들에게 부여되지 않았던 이질적인 역할이 함께 주어진 것”이라며 “기자들에게만 요구해선 달라질 수 없다. 데스크와 언론사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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