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11시, 유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인터뷰] '제주 중학생 피살사건' 보도한 문준영 KBS제주총국 기자

지난달 19일 아침, 출근해보니 밤사이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조용한 주택가에 경찰차가 잔뜩 와 있는 걸 보고 주민이 제보한 것이었다. 주소를 확인하고 현장에 나갔다.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인근 어느 주택에도 없는 CCTV가 사건 발생 주택에만 앞뒤로 달려 있었다. 이전에 취재했던 경찰의 신변보호용 CCTV가 생각났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보니 역시나였다. ‘뭔가가 있을 거 같다’는 직감이 왔다. 무조건 유족을 만나야 했다.


어렵게 장례식장을 수소문해서 늦은 밤 찾아가 보니 이미 발인이 끝난 뒤였다. “망했다” 생각하며 돌아서려는 찰나,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는 직원이 보였다. 기자임을 밝히고 30분 가까이 설득한 끝에 유족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밤 11시에 만난 피해자 A군의 어머니와 외삼촌의 이야기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제주 중학생 피살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계기였다. 피해자와 유족이 수차례 살해 위협 등을 당하는 동안 경찰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도, 낱낱이 드러났다. 문준영 기자는 생각한다. “제가 그때 유족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피의자 신상공개나 대책 마련까지 됐을까, 지금 와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었기에 국민의 분노는 더 컸다. 보도 이후 경찰은 감찰에 나서겠다고 했고, 경찰청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제도만이 아니었다. “신변보호 대책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취재기자로서 볼 때 이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는 경찰이 검거를 못 한 거거든요. 말 그대로 기본적인 걸 안 한 거예요. 7월 초 피의자들이 집에 침입해 어머니 목을 조르고 지갑을 훔치고, 가스 배관을 파손하고, 청바지들이 없어지고… 그러는 동안 경찰도 방범용 CCTV로 용의자를 특정하고 수사를 했거든요. 그러면 잡았어야죠. 수사관들이 신경 쓰고 범인을 잡겠다 했으면 분명히 막을 수 있었어요.”


헤어진 옛 연인에게 앙심을 품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간’ 이번 사건은 피가 낭자하고 수법이 잔혹한 어느 범죄 못지 않게 잔인한 것이었다. 범행 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고통 속에 몸부림쳤을 A군의 흔적을 보며, 문 기자 또한 크게 휘청였다. “저 힘들어요” 그는 말했다.


문 기자는 3년차였던 2017년 제주CBS에 있으면서 현장실습생 사망사고를 보도해 이듬해 한국기자상 등을 받았다. 당시에도 문 기자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너무 힘들어서 심장 검사까지 받았다고 했다. “이번 사건도 많이 힘들었죠. 잠도 못 자고, 뭐랄까, 제가 어머니가 되는 느낌이랄까요. 마음이 너무 아프고 사회가 왜 이럴 수밖에 없는지, 기자로서 회의감도 들고요.”
심리 치료는커녕 쉴 틈도 없지만, A군의 어머니와는 요즘도 통화를 하면서 괜찮은지 안부를 확인하곤 한다. “이제 피의자들이 재판에 넘겨지면 구체적인 공소사실도 나오고 할텐데요, 힘들어도 끝까지 챙겨야죠. 경찰의 대책 마련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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