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데이터저널리즘이 사라져간다

전담팀 잇따라 폐지…
고연차 데이터 저널리스트들 대부분 현업 떠나

화려하거나 특별하거나. 기성언론사 뉴스룸이 데이터저널리즘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2015년 전후로 빅데이터 열풍과 디지털 혁신 기조가 맞물리면서 여러 언론사가 데이터 전담팀을 신설하고 인력을 강화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인터랙티브 방식으로 화려하게 구현한 콘텐츠가 나올 때마다 화제가 되곤 했다.


공공부문을 포함해 전 산업에서 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반면 언론계의 데이터저널리즘은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습이다. 국내 데이터저널리즘을 선도했던 언론사들은 올해 들어 잇달아 전담팀을 폐지했다. 취재기자 경력을 갖춘 고연차 데이터 저널리스트들도 현업을 떠났다. ‘한국 언론의 새로운 희망’(2018년 보도, 김익현 지디넷 기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데이터저널리즘이 위협받고 있다.


지난 2014년 신설됐던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올 초 직제개편 과정에서 폐지됐다. 현재 탐사보도부에서 기자 1명과 데이터분석가 2명이 데이터 관련 콘텐츠를 맡고 있지만 한때 8명(기자 3명, 데이터분석가 2명, 개발자 2명, 인포그래픽 디자이너 1명)으로 운영되던 시기와 비교하면 규모가 크게 줄었다. YTN도 지난 10월 신임 사장 취임 이후 첫 인사에서 데이터저널리즘팀을 폐지했다. 2015년 출범 때부터 팀장을 맡아왔던 함형건 기자는 앵커팀으로 발령 받았다.


함형건 기자처럼 취재기자 경력을 가지고 데이터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던 권오성 한겨레신문 기자는 지난 10월 퇴사해 일반기업으로 전직했다. 지난해에는 데이터에 특화한 디지털 콘텐츠를 선보이던 한경닷컴 뉴스래빗의 김민성 팀장이 구글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뉴스래빗의 또 다른 데이터 저널리스트도 타 언론사로 이직했다.*


데이터팀과 전문 인력이 부침을 겪는 원인은 기성언론사가 안고 있는 문제들과 맞닿아 있다. 대다수 언론사는 새로운 도전이나 사업을 벌일 때 회사 차원의 장기적인 관점과 전략보단 담당자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담당자는 진행 과정에서 결정권자를 설득해야 하고, 성과 압박에도 시달린다.


우여곡절 끝에 유의미한 결과를 내더라도 담당자의 경험치가 조직 전반에 퍼지거나 다음 세대로 쉽게 이어지지 못한다. 데이터팀도 마찬가지였다. 데이터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국내 언론에서 데이터 저널리스트 한 명 한 명의 존재는 개별 회사를 넘어 언론계 전반에 중요한 자산이다. 저널리스트 마인드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쉽게 풀어내는 능력을 가진 이들의 역할이 중요한데도 뉴스룸 구성원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함형건 기자가 6년간 이끈 데이터저널리즘팀을 ‘섬’ 같은 존재였다고 자조한 배경이다.


권오성 건국대 대학원 디지털저널리즘학과 겸임교수(전 한겨레 미래전략팀장)는 “데이터저널리즘은 먼저 데이터를 가져와서 실증이나 과학적인 연구 방법으로 보도할만한 것을 찾는 과정이다. 그런데 국내 언론사 결정권자들은 이미 답을 정해놓고 거기에 잘 어울리는 장식이 데이터저널리즘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판단한다”며 “철학적 배경 없이 윗선에 따라 지원 여부가 달라지다보니 저와 같은 생각으로 뭔가 해보고자 했던 이들이 실망하거나 다른 데로 옮기는 사례가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데일리 뉴스 중심으로 돌아가는 업무 환경도 데이터저널리즘을 위축시키는 한 요인이다. 데이터 수집과 분석은 ‘막노동’에 비유될 정도로 품이 많이 드는 데다 결과물을 내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데이터저널리즘팀에서 근무했던 김태형 KBS 기자는 “데이터 기사는 오랜 시간 열심히 취재하고 보도해도 많이 읽히지 않고, 포털에서 구현도 한계가 있다”며 “당장 그날 처리해야 할 뉴스는 뺄 수 없으니 데이터저널리즘처럼 기획성 기사에 쏟는 힘을 줄이려는 거다. 데이터팀을 유지하는 데 회사의 의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021 한국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에서 올해의 데이터 시각화상을 수상한 경향신문의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문재인 정부 ‘싱크탱크’>

“데이터저널리즘, 특별하다는 선입견… 그저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일”

데이터저널리즘을 향한 오해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일반 취재보도와 동떨어졌다거나 화려한 시각화 콘텐츠가 데이터저널리즘의 전부라는 인식이다. 데이터 저널리스트들은 “정말 오해”라고 입을 모았다. ‘데이터’는 취재현장이자 취재보도 기법의 하나일 뿐 특정인만 할 수 있다거나 특별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장슬기 MBC 데이터 전문기자는 “데이터저널리즘은 그 영역이 따로 있다기보다 기사를 내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다. 누군가를 취재할 때 전화하고 질문지 보내고 ‘뻗치기’하는 것과 똑같다”며 “데이터저널리즘을 신의 영역이라든가, 하기만 하면 무조건 대박 나는 특별한 분야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 이런 인식의 괴리 때문에 데이터저널리즘이 자리를 잡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과 다른 시선에도 이들이 데이터에 몰두하는 이유는 “좋은 보도를 한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데이터 저널리스트들은 기존의 자료 수집 과정이나 취재 방식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가치 있는 뉴스가 데이터에 숨어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하고 있다. 시간이 들더라도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 새로운 차원의 정보값을 전달한다면 기자의 역할과 저널리즘 영역도 확장할 수 있다.


취재부서에 있다가 지난 6월부터 데이터를 다루기 시작한 조형국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기자도 새로운 취재보도 방법으로써 데이터의 확장성에 공감했다. 조 기자는 “출입처에서 늘 써오던 식의 기사는 이미 생명을 다했다. 읽히는 뉴스를 전달하려면 다른 방식으로 독자의 니즈를 찾아야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데이터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한다”며 “데이터저널리즘 자체를 완성된 결과물로 보기보다 설득력 있는 수단으로써 활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제52회 한국기자상 전문보도 온라인부문에 선정된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의 <털어봤다! 동네의회 - 업무추진비 편> 시리즈.


KBS 탐사보도부에서 데이터저널리즘을 담당하는 김영은 기자는 “보도자료를 인용하거나 취재원에 의존해 기사를 쓰다보면 출입처 시각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입수해 들여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발견하고, 현상이나 사안을 더 입체적이고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며 “데이터저널리즘 보도가 쌓이면 그 자체로도 논문이나 연구물처럼 다른 기사를 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함형건 YTN 기자(전 데이터저널리즘팀장)도 데이터저널리즘이 우리 언론의 고질적인 보도관행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함 기자는 “언론에 보도되는 뉴스의 80% 이상은 취재원이 가공한 자료를 주면 그대로 받아쓰거나 일부 해석을 달거나 확인해 내보내는 것이다. 관행과 다르게 독립적으로 자료를 찾고 2차, 3차 가공을 해서 객관적·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데이터저널리즘”이라며 “뉴스 품질을 높일 뿐 아니라 언론의 책임을 다하는 접근 방식이다. 한국에도 축적된 사례가 꽤 있고 어느 정도 아웃풋이 검증됐는데 (팀 폐지로) 더 이상 실천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KBS와 YTN이 팀을 폐지하면서 현재 데이터전담팀을 운영하는 곳은 SBS(탐사2부 산하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와 경향신문 정도다. SBS는 2015년 마부작침을 신설한 뒤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뉴콘텐츠팀에 있던 데이터·인터랙티브 역량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지난 6월 데이터저널리즘팀을 새로 만들었다.


전담팀 운영 여부가 데이터저널리즘 강화의 유일한 지표는 아니다. 뉴스룸 전반에 데이터저널리즘이 얼마나 녹아들어 있는지, 회사 차원에서 방향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김보미 경향신문 뉴콘텐츠팀장은 “취재부서에서 크고 작은 기획을 할 때마다 데이터팀(인터랙티브)을 찾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라며 “커뮤니케이션도 잘 되고 협업도 수월하다”고 말했다. 배여운 SBS 탐사2부 마부작침 기자는 “결국 중요한 건 데이터팀과 취재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고 협업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는 데이터 인력을 따로 두지 않고, 데이터는 취재보도 기법으로써 모든 기자가 활용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담팀은 없지만 상대적으로 데이터 기획물을 자주 선보이는 한국일보는 내부에서 데이터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데이터저널리즘을 특정 팀에 의존하기보다 일반적인 기사 생산 과정에 흡수되고 퍼져나가도록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김주성 한국일보 디지털전략부장은 “콘텐츠 품질 향상을 위해 취재윤리나 글쓰기처럼 데이터를 다루는 기술과 데이터 리터러시 강화에 초점을 맞춰 교육하고 있다”며 “이제 기자들에게 데이터 소양은 필수다. 어느 순간 언론사 입사 때 데이터 능력 시험을 보는 날도 올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12월21일 오후 11시15분 출고한 첫 기사에 <또 다른 데이터 저널리스트도 타 언론사로 이직해 현재 뉴스래빗은 데이터저널리즘 콘텐츠 생산을 중단한 상태다.>라는 표현이 있었으나, 22일 한경닷컴 측이 "현재 새로운 데이터 저널리즘 콘텐츠 및 서비스를 위해 뉴스래빗 홈페이지에 기사를 게시하고 있지 않을 뿐 데이터 저널리즘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생산 중"이라고 밝혀와 같은 날 오후 2시 위의 문장을 <뉴스래빗의 또 다른 데이터 저널리스트도 타 언론사로 이직했다.>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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