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노정교섭' 주장이 놓치고 있는 것들

[이슈 인사이드 | 노동] 전혜원 시사IN 기자

전혜원 시사IN 기자

민주노총이 윤석열 당선자에게 만나자고 제안했다. 3대 핵심 과제를 들었다. 5인 미만 기업과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문제,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 재편에 따른 일자리 문제,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의 상징인 비정규직 문제. 모두 한국 노동시장이 풀어가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다.


민주노총은 이를 위해 ‘노정교섭’, 즉 ‘노동조합’과 ‘정부’의 ‘교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하고만 이야기해서 될 일은 아니다. 위 문제들은 노동자들을 고용해서(혹은 고용을 회피하면서) 보수를 주는 주체, 곧 민간 부문 사업주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법을 개정하려면 사업주, 혹은 사업주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합의가 필요하다(국민의힘이 대체로 그래왔다).


‘노정교섭’이라는 주장은 이를 가려버린다. 모든 의미 있는 변화는 정부의 ‘결단’만으로 가능한 것처럼. 사실은 정부도 아니고 ‘대통령’과 ‘청와대’다. 노동조합이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청와대로 달려가는 이유다. 하지만 청와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인사들에게서는 “대통령이 노동을 제일 잘 아신다”라는 말을 곧잘 들을 수 있었다. 의미 있는 변화도 있었지만,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했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이 충분히 과감하지 못해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흔히 듣는다. 예컨대 공공부문 정규직화에서 직접고용이 아닌 자회사 고용을 허용한 일이 그렇다. 물론 상시·지속 업무에 자회사 고용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근속연수 외에는 명확한 임금의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직접고용 이후 공공부문의 ‘원청’ 노동자들을 따라 기관별로 임금이 오르는 것을 대통령 결단만으로 감당할 수 있었을까? 민간 부문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포기한 것도 자주 거론된다. 그러나 법 개정이 필요한 이 사안을 당시 야당(국민의힘)과의 타협 없이 통과시킬 수 있었을까?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을 주도했던 김현숙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윤석열 당선자의 정책특보로 임명되면서 차기 정부 노동정책이 ‘박근혜 정부 시즌 2’가 되리라는 우려가 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근무성과 저조로 인한 ‘일반해고’를 열어주는 정부 지침이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등을 일방적으로 추진해 노동조합의 반발을 불렀다. 정부가 또 다시 초법적인 일방통행을 한다면, 노동조합이 저항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만약 윤석열 정부가 일반해고 도입이나 성과연봉제가 아니라 ‘직무에 따른 임금체계’, 곧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임금을 받는 체계를 도입하자고 한다면 노동조합의 입장은 무엇인가? 임금체계 개편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원·하청 관계에서 원청 의무를 대폭 강화하거나, 고용보험과 직업훈련 등 울타리 밖 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면, 노동조합은 모든 노동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서 내부에 이를 설득하고 ‘교환’할 수 있는가? 1998년 이후 한국사회가 20년 넘게 풀지 못한 질문이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협상을 고수하는 동안 민주노총은 장외에서 투쟁을 맡았다. 노동에 호의적이라 믿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노정교섭’을 외쳤다. 취약 노동자들을 위한 변화는 정부뿐 아니라 사업주 단체와 마주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되는 노동조합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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