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2700억, 6개월 내로 다 쓰라?

[지역 속으로] 오세현 강원도민일보 기자
강원도교육청 예산 낭비 실태 심층 조명

강원도민일보는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에 걸쳐 지방교육재정 교부금과 예산사용 실태를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강원도 원주시 한 초등학교 교실 모습. (강원도민일보 제공)

‘멀쩡한 책상·걸상 바꿔야 하나 2700억원 소진 비상’.

2021년 10월15일 강원도민일보 1면 톱 제목이다. 당시 강원도 교육계는 대규모 예산을 한꺼번에 받으면서 정해진 기한 내에 사용하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각 학교에서 멀쩡한 책, 걸상 교체까지 검토했다. 이 보도 이후 강원도민일보는 3개월에 걸쳐 지방교육재정 교부금과 예산사용 실태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논란의 시작, 6개월 안에 2700억원 쓰기

취재는 제보전화에서 시작됐다. 비슷한 이름으로 예산이 계속 내려와 일선 학교에서 소화하기 버겁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강원도교육청이 교육부 예산을 대거 확보해 홍보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다. 교육당국과 일선 학교 현장의 간극이 무엇인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취재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폐쇄적인 교육계 특성상 학교 내부의 일을 쉽게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이들을 일일이 설득하고 익명을 보장 받은 뒤에야 교육청에서 내려보낸 공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올해 2월까지 사용해야 하는 교부금 예산 규모가 2738억원임이 확인됐다. 2회 추경에서 확보한 3469억원 대비 78.9%에 달하는 규모다

강원도민일보는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에 걸쳐 지방교육재정 교부금과 예산사용 실태를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2021년 10월15일자 강원도민일보 1면 지면

사업 내용도 교육환경개선과 학교 현안사업 지원에 1429억원, 미래교육환경 구성에 701억원, 교육안전망 강화에 478억원 등이 편성됐다. 해당 예산의 소진 시기는 2022년 2월까지다.

지난해 9월부터 10월까지 한 달간 강원도내 한 학교에 내려온 공문을 보면 지급된 예산만 39억8000만원이다. 대부분 학교 도색과 비품교체, 지능형 과학실 운영비, 학교현안사업 등이었다. 일선 학교 역시 이 예산을 어떻게 써야할 지 몰라 난색을 표했다. 이 같은 내용은 2021년 10월15일 강원도민일보 1면으로 보도됐다.

“지방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

보도 이후 학교들의 제보가 이어졌다. 한 중학교 교장은 직접 회사로 전화를 걸어 학교 실태를 토로, “꼭 필요한 기사, 지방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했다. 결국 기획재정부가 교육 예산 배분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보도 이후 “일부 학교의 얘기”라고 치부하던 강원도교육청도 결국 일선학교의 애로사항을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강원도민일보의 단독 보도 이후 각 지역에서 비슷한 보도들이 쏟아졌다.

오세현 강원도민일보 기자

결국 강원도교육청 예산낭비 논란 연속보도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전면개편 논의의 발판이 됐다. 교육교부금법은 내국세의 20.79%를 교육교부금으로 내려 보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니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에서도 교부금 규모는 점차 늘고 있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학령인구 감소 속 쟁점 제시 뜻깊어

강원도민일보는 ‘강원도교육청 예산낭비 논란’ 연속 보도로 한국기자협회 제375회 이달의 기자상(지역 취재보도부문), 2022 한국신문상(뉴스취재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외면하기 쉬운 학교 현장을 중심으로 교육당국과 일선 학교 현장의 간극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어 낭비성 예산 사용 실태를 고발,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전면 개편 논의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학령인구 감소 속 우리 사회가 논의해야 할 또 다른 쟁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보도가 남다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전면개편에 대한 교육계와 재정당국의 입장 차이는 여전하다. 교육계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온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 학령인구 급감과 예산 배분 간의 접점을 찾고 위기상황을 타개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강원도 일선학교 현장의 혼란이 결국 정부의 정책 기조에 영향을 줬다는 점 역시 지역 일간지 기자로서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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