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붙들고 보고받고 지시… 하루 18시간 항시대기, 시경캡의 일상

[기자 25시] 이승환 뉴스1 사건팀장

지난 12일 오후 5시30분. 을지로의 한 공유오피스 회의실로 기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뉴스1 사건팀 회의와 회식이 있는 날이어서다. 이승환 뉴스1 사건팀장(캡)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이후론 꼭 이렇게 팀원 전체가 모이는 회의를 고집하고 있다.


회의에선 ‘라인’별 주요 이슈 보고, 팀 내 현안 공유, 기획기사 논의 등을 한다. 이날은 사건팀에 새로 합류한 기자들 소개와 다음 달에 들어올 수습기자 교육 준비를 잘 하자는 당부가 더해졌다. 캡이 말할 때마다 기자들은 노트북으로 열심히 받아쳤다.

뉴스1 사건팀이 지난 12일 을지로의 한 공유오피스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이승환 사건팀장은 한 달에 한 번 하는 회의에 꼭 참석해 달라고 기자들에게 당부한다.


회의는 40여분 만에 끝나고, 회식이 이어졌다. 사건팀 기자들의 회식 코스라면 으레 고깃집이거나 횟집이겠거니 했는데 이들을 따라 들어간 곳은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3가의 한 와인바였다. 은은히 조명이 켜진 루프톱에 자리를 잡고 소주와 맥주 대신 와인과 하이볼, 콜라 등 취향껏 고른 잔으로 건배하는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취재를 의식한 것 아니냐’ 물으니 지난번 회식 땐 압구정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재즈바에도 갔다는 답이 돌아왔다. 캡이 자리를 비운 뒤 다시 물어도 기자들은 “우리 캡은 술도 강요 안 하고,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거나 심지어 회식에 빠져도 뭐라 안 한다”고 했다. 이른바 “MZ 느낌”이라나.


의외라는 시선을 던지니 이 팀장이 손사래를 치며 “타사는 1주일에 한 번 하는데 우리는 하루에 몰아서 하니까 좋은 데 갈 수 있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종종 타사 사건팀과도 회식을 같이하는데, 그럴 땐 ‘평범한’ 식당에 간다고 덧붙이면서.

술 강요 NO! 회식은 ‘MZ감성’ 핫플에서

뉴스1 사건팀엔 캡과 바이스(부팀장)를 포함해 10명의 기자가 있다. ‘라인 기자’는 총 8명. 라인 구성은 언론사마다 조금씩 다른데 뉴스1은 서울 시내를 전체 6개로 나눴다. 강남, 광진, 마포, 영등포·관악, 종로·중부, 혜화·도봉 등. 관내 경찰서는 물론 대학,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과 서울중앙지검을 제외한 지방검찰청 및 법원도 주요 출입처다.

이승환 팀장이 지난 15일 서울경찰청 청사로 들어서면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언론사에 기자로 입사하면 경찰서에서 먹고 자며 일을 배우는 ‘하리꼬미’가 통과의례이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많은 수습기자들이 사건팀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 사건기자들의 ‘우두머리’가 바로 캡이다. 캡은 단순히 ‘팀장’이란 보직 이상의 의미를 가진 존재다.(사건팀장이란 직책 대신 캡으로 불리는 것부터가 그렇다) 형식상으론 사회부장 밑에 있는 중간관리자이지만, 여러 명의 기자를 관리하면서 다양한 사건·사고를 총괄하기 때문에 상당한 권위와 권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10년 전만 해도 캡에 대한 인상을 물으면 ‘무섭다’ ‘어렵다’ 같은 대답이 먼저 나오지 않았을까. 특유의 위계질서와 ‘마초적’ 이미지 때문에 ‘금녀’의 영역으로 불리기도 했던 시경 캡들 사이에서도 요즘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여성 캡은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되고, 하리꼬미 폐지 등에 따라 사건기자 교육과 그들이 일하는 방식, 회식 문화까지도 달라지고 있다. 을지로 핫플레이스에서 와인과 하이볼로 회식을 하는 것부터 말 다 했다. 그런 ‘MZ 감성’을 가진 이승환 캡이 일할 땐 어떤 모습일지, 지난 15일 하루를 따라가 봤다.

오전 보고·발제에 긴장…“단독 놓치면 뼈아파”

이승환 팀장의 일과는 오전 6시에서 밤 12시까지다. 사건팀 조근(아침근무)자가 오전 6시부터, 야근자가 밤 12시까지 일하는 동안 언제든 보고가 올라올 수 있으니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오전 6시, 보통은 집이나 시경 기자실에서 기자들이 카카오톡 단체채팅방(단톡방) 등에 올린 오전 보고를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이날은 필자의 취재를 배려해 종각역 사거리에 있는 뉴스1 사무실로 출근했다.


먼저 조근자가 올린 기사와 보고를 확인한 뒤 이 팀장도 따로 챙길만한 기사가 없는지 확인한다. 기자들은 오전과 오후, 하루 두세 차례 업무 보고를 하는데, 오전 7시40분쯤 라인별 보고를 취합하고 발제 거리를 챙겨 사회부장에게 보고하는 게 오전 중 가장 중요한 일과다. 기자들이 올린 보고 중 “똘똘한 기사, 얘기될만한 기사”가 없으면 직접 찾아서 발제해야 한다.

이승환 팀장이 지난 15일 사무실에서 서명훈 사회부장(오른쪽)과 아이템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


슬쩍 단톡방을 엿보니 채팅방 이름에 ‘캡방-대화에 주의’라고 적혀 있다. 부장과의 카톡 등 다른 몇몇 채팅방에도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무슨 의미냐 물으니 “말실수할까 봐”라고 답했다. “제가 평기자 때 말이 거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이제 중간관리자가 됐으니 말조심해야 하잖아요. 생각하는 대로 다 말할 수 없으니 이런 표시를 해놓는 거죠.”


보고를 확인한 뒤엔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취재 지시를 하고, CMS에 ‘사건팀 15일 오전 보고’란 제목으로 출고예정인 기사와 송고된 기사를 구분해서 올린다.


오전 7시50분. ‘딩동’ 호출음이 울리더니 몇몇 부장들이 국장실로 향한다. 오전 회의(8시30분) 전에 열리는 ‘미니회의’다. “발생이나 이슈가 많은 부서끼리만 따로 먼저 회의를 해요. 통신사라 대응을 빨리해줘야 하니까요.” 부장이 회의에 들어가면 나가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오는 게 이 팀장의 루틴이다. “이 시간은 저도 조금 숨돌리는 시간이거든요.”


오전 8시30분, 다시 호출음이 울리고 편집국 부장단 전체 회의가 시작됐다. 그 사이 이 팀장은 네이버 사회 섹션의 사건·사고 뉴스 페이지를 한참 넘겨 가며 놓친 뉴스가 없는지 꼼꼼히 살핀다. 타사 특히 경쟁사인 통신사의 단독 기사를 발견하면 뼈아프다. “제일 분한 건 주요 이슈가 터졌을 때 우리가 놓친 걸 다른 데서 썼을 때죠. 예상하지 못한 각도에서 단독 기사가 나왔거나, 우리도 취재하고 있었는데 타사가 더 빨리 썼을 때요. 전국적 이슈가 터지면 모든 언론사가 달라붙고 매체별로 경쟁력과 수준이 드러나기 때문에 더 신경 쓰게 됩니다.”


그렇다고 기자들을 몰아붙이는 편은 아니다. “사건팀 기자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어야 해서 기를 죽이면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다만 강조하는 것들은 있다. 대표적인 게 취재윤리다. 몇 년 전부터 그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하는 수습기자 교육에서 ‘자살보도와 취재윤리’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팀 단톡방에는 ‘범행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해선 안 된다’, ‘성범죄 기사는 정제해서 써야 한다’ 등 사건기사를 쓸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공지글로 등록해놨다. “저도 기자 생활하며 잘 지켰냐고 하면 아니거든요. 오히려 그래서 후배들에게 시행착오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게 있어요.”

캡 7개월차…“권위와 소통 둘 다 잡기 어렵네요”

“하루종일 핸드폰 붙잡고 있는 게 일”이라고 처음 만난 날 그는 말했다. 실제로 그의 하루를 지켜보니 단톡방 확인-전화통화-기사(타사 포함) 확인의 무한 반복이었다. “수시로 보고받고, 전화하고, 톡 확인하고. 캡마다 일하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이건 다 공감할 거 같네요.”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갑자기 들어온 보고를 확인하느라 대화에 집중하지 못할 때가 많다. 아내가 가장 서운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내 역시 기자인데 그럴 때면 ‘너만 기자냐’ 묻는 것 같다. “그래도 고마운 게 중요한 이슈가 터져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그냥 두더라고요.”


이 팀장은 작은 의류쇼핑몰 등 여러 일을 하다 뒤늦게 영국의 한 대학에 입학해 미술사를 공부했다.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국내 모 주간지 해외 통신원으로 일한 것을 계기로 기자가 되기로 했다. 2013년, 32살의 나이에 늦깎이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2017년 뉴스1으로 옮긴 뒤 6년여의 절반 이상을 사건팀에서 보냈다. 바이스 두 번을 거쳐 지난해 12월 캡이 됐다.


첫 팀장을 맡고 어떤 팀장이 돼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책도 보고, 유튜브도 찾아봤다. ‘캡은 얼굴도 보기 싫게 만들어야 한다’며 세게 하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너무 강압적으로 하면 기자들이 자기 의사를 말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너무 편하게 대해도 긴장감이 안 생겨 안 되고. 딜레마죠.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고,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소통은 해야 하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하루에도 수없이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해 캡은 기사 가치 등을 빠르게 판단하고 정확하게 취재 지시를 해야 한다. 하지만 캡도 사람인지라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가 있다. 그래서 더더욱 후배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라인 기자들의 재량과 판단도 많이 존중하는 편”이라고 했다. “‘캡 무서우니까 말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제 판단이 틀릴 수도 있잖아요. 기자들이 먼저 ‘이런 걸 챙겨야 할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이 자식, 내 권위에 도전하네?’ 이러면 안 돼요. 제 판단이 틀릴 수 있으니까요.” 그는 “아집에 빠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면서 기자들 역시 “시키는 대로 하기보다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그러면서도 유연하게 지적을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자들 성장 위해 기획기사도 독려

사건기자라고 발생 기사만 쓰는 건 아니다. 팀장을 맡은 후 그는 기획기사의 비중도 늘려가고 있다. “타사 사건팀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발생만 챙겨서 과연 경쟁력을 보일 수 있을까 해서 기획 같은 것도 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터졌다’ 그럼 실태잖아요. 더 들어가 구조적 문제 같은 걸 들여다보는 거죠.”


지난 4월 말 암 투병 아내를 간병하던 남편이 살해한 사건을 단독 보도한 뒤, 5월 말부터 돌봄 사각지대 실태를 조명하는 ‘가족 간병의 굴레’ 시리즈를 연속으로 보도했다. 지난 2월부터는 MZ세대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MZ통신’을 연재하고 있다. ‘악플러의 밤’이란 기획도 준비 중이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 후 그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쏟아졌던 악플을 보면서 가졌던 의문에서 출발한 기획이다.


매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발생을 처리하며 기획취재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이 팀장은 기자들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저연차 기자들은 특히 성장 욕구가 강하거든요. 의미 있는 기사를 쓰고 있단 생각을 가져야 해요. 이런 기획기사 같은 걸 써야 나중에 너희들 포트폴리오로 쓸 수 있다고 독려하죠. 발생 기사는 휘발성이 강해 잊힐 수 있지만, 기획성 기사는 본인에게 남거든요. 기자로서 의미 있는 기사를 쓰고 있다,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사건기자는 “끈기 있는 사람”이다. “가끔 ‘현장 체질이에요’ 이런 사람이 있는데, 더운 날 막 6~7시간씩 밖에서 있고 해봐요. 어떤 일이든 반복하면 힘들잖아요. 그걸 참아내는 능력, 그리고 사회적 약자라든가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개선하려고 하는 친구들이 좋은 기사를 쓰는 것 같아요.”

“3개월만에 다시 온 사건팀, 설렜죠”

지난해 초, 약 1년 반을 있었던 사건팀을 떠나 금융증권부에 있을 때였다. 새로운 경험과 공부를 하게 돼 좋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가 “힘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그러다 3개월 만에 다시 사건팀 발령을 받자 “바빠지긴 더 바빠지는데, 거기(사건팀) 있을 때 더 신나 보이니까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했다. 그는 “이런 말 오글거리긴 하는데, 다시 와서 사건기사 쓰니까 설레긴 하더라”고 말했다.


사건기자를 오래 했고 사건팀장을 맡고 있지만, ‘기자의 꽃은 사건기자’란 말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사건기자로 쭉 남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다만 기자 일은 오래 하고 싶다. 어떤 기자가 되고 싶냐 물으니 “업무에 진심이었던 사람, 기자에 진심이었던 사람”이라고, 기자들의 오후 보고를 챙기느라 노트북과 핸드폰 사이 어딘가에 시선을 둔 채로 그는 답했다.

[여기서 잠깐] 시경? 라인? 캡? 바이스?

서울과 같은 특별시나 광역시에 속한 경찰청을 줄여서 시경이라고 한다. 이 기사에서 시경은 서울경찰청을 가리킨다. 서울경찰청 산하의 경찰서들을 행정 구역 등에 따라 나눈 것을 ‘라인’이라 하고 해당 구역을 취재하는 기자를 라인 기자라 한다. 이 라인 기자들을 총괄하는 사람이 바로 캡이다. 캡은 시경 기자실에서 기자들에게 취재 지시를 내리고 이를 사회부장에게 전달하며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캡과 라인 기자 사이엔 바이스가 있다. 바이스는 본청인 경찰청을 출입하면서 기사도 쓰고 라인 기자와 캡 사이의 가교역할도 한다. 서울 시경 기자단엔 현재 34개사가 가입돼 있고, 라인 기자를 포함해 250~280명 정도가 등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기자들이 담당하는 라인은 통상 행정구역 등을 기준으로 나누는데, 라인별 주요 특징이 있다. 뉴스1 사건팀이 나눈 라인을 기준으로 보면, 우선 마포는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와 강력범죄수사대, 금융범죄수사대가 있어 굵직한 이슈가 많다. 종로·중부엔 광화문과 용산 등이 포함돼 있어 집회 취재가 많고, 혜화·도봉은 강력사건 취재 비중이 높은 편이다. 영등포·관악은 강력범죄도 많고 여의도가 관할인 영등포서 중심으로 경제 관련 사건도 많다. 강남은 지역 특성상 유명인사들이 얽힌 사건·사고가 많은 편이며, 광진은 유명인·정치인 관련 대형 사건을 담당하는 동부지검과 동부지법이 있어 주시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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