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취재 형사처벌… 여권법 위헌 여부 묻는다

프리랜서 사진가 벌금 500만원 약식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 청구,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전쟁 현장에서의 취재는 허가받을 일이 아니라 보호받아야 마땅한 일입니다.”(문화연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열흘째 되던 지난해 3월5일, 프리랜서 사진가인 장진영 작가는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수도인 키이우와 르비우 등에서 현장을 취재하고 약 보름 만에 귀국한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기록한 사진들을 월간 ‘워커스’와 시사주간지 ‘시사IN’ 등을 통해 보도했다. 그리고 며칠 뒤인 지난해 4월14일, 경찰은 장 작가를 여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여행금지국가(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13일 지정)를 외교부 장관의 허가 없이 방문해 여권법 제17조를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장 작가는 지난 3월28일 법원으로부터 벌금 500만원 약식명령을 받았다.

이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보도하여 형사처벌을 받은 언론인이 있습니다.” 언론인의 전쟁 취재를 사전 금지하고 정부(외교부)의 허가 아래 두면서, 이를 따르지 않는 언론인은 형사처벌(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하는 것이 대한민국 여권법의 실체다. 다른 나라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제도가 과도하게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국내 언론·시민단체는 물론 해외 언론인·언론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현업 언론단체와 시민단체 등 총 27개 단체가 23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권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계획을 알렸다. 마이크를 든 사람이 장진영 사진작가.

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영상기자협회 등 6개 현업 언론단체와 언론개혁시민연대·온빛다큐멘터리 등 21개 시민단체는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권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장 작가는 법원의 약식명령에 불복해 지난 4월18일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며, 오는 28일 재판이 시작된다.

법률대리인인 김보라미 변호사는 전쟁 국가 등에 대한 취재·보도 목적의 방문을 외교부 장관이 허가할 수 있도록 한 여권법 제17조1항이 헌법 제21조2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금지’ 위반 소지가 있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과잉금지 원칙에 해당할 여지도 있다며 오늘(23일) 중으로 법원(고양지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면 여권법 해당 조항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심판을 받게 된다.

언론·출판 허가 금지 위반 소지, 과잉금지 원칙도 위배

전쟁 국가 등에 대한 ‘예외적 여권사용’을 허가받으려면 외교부령이 정한 절차에 따라 활동계획서 등 관련 서류를 외교부 장관에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 3월18일 외교부는 취재 목적의 우크라이나 입국을 허가하면서 기자들에게 취재 일정과 장소 등에 대한 취재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사실상 “내용 규제 효과를 초래한다”면서 “헌법이 금지한 사전 허가제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소속 없이 일하는 프리랜서 언론인들은 이 ‘예외적 여권사용’에서도 ‘예외’에 속하는데, 김 변호사는 “언론인 보호라는 입법 목적의 효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거대 미디어 회사의 소속이 아닌 프리랜서 기자의 경우에는 아예 갈 방도도 없다는 점에서 기회 자체가 봉쇄되어 있고, 이렇게 된다면 입법 목적의 효과에 비해서 과도하게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지금도 세계의 많은 훌륭한 기자들이 우크라이나에서 활약하고 있고,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하신 기자들도 있지만, 기자들의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지, 종군기자가 거기서 돌아가셨다고 해서 전쟁 지역 취재를 금지하자는 얘기는 어떠한 나라도 하고 있지 않다”면서 “특히 특정 미디어의 정규직원으로 근무하기보다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전쟁에서 민간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세계에 알려오는 역할을 했던 분들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는 일은 정말 한국 이외에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거듭 말했다.

한국선 ‘종군기자’도 옛말…“저널리즘 식민지 될라”

여행금지 제도가 있는 건 우리나라가 유일하며, 우리와 같은 형태로 전쟁이나 분쟁지역의 취재를 금지하는 나라도 OECD 국가 중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글로벌 여권 순위 2위 국가(2023년 1분기 기준)로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나라가 일본 다음으로 많지만, “포토저널리스트에겐 갈 수 없는 데가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장진영 작가)다. “여행금지국가 지정과 여권법 적용으로 한국 국적의 사진기자들은 방문할 수 없는 나라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23일 기자회견에서 분쟁 지역 저널리스트인 김영미 PD가 발언하고 있다.

여행금지와 예외적 여권사용 제도가 도입된 건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의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의 영향이 컸다. 이후 국민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정부는 언론의 취재·보도 목적의 입국까지 제한해왔다. 자연히 국내 언론의 전쟁·내란 등의 취재 경험은 줄었고, 해외 특히 서방 외신에 대한 국제뉴스 의존도는 높아졌다. 장진영 작가는 “십몇 년 동안 여행금지국가랑 여권법으로 모든 취재역량이 다 사라졌다”고 말했다. 분쟁지역 저널리스트인 김영미 PD도 “이러다 저널리즘 식민지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번 전쟁에서도 우크라이나 입국이 막힌 처음 3주 동안 기자들은 여권법을 위반할 수 없었기에 폴란드나 국경 주변만 전전하며 발을 굴러야 했다. 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같이 큰 국제전쟁이 거의 10년만에 일어나 관심도 많았고, 코로나 이후 제한됐던 해외 취재에서 뭔가 이런 새로운 국제적 이슈를 우리 시각으로 보기 위해서 취재를 해보겠다는 열기도 굉장히 강했다”면서 “하지만 국경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튼튼한 방탄조끼와 방탄 모자를 쓰고 새로운 배경에서 뭔가 위기감 있는 스탠드업을 하거나 그런 현장에서 나온 분들을 섭외해서 인터뷰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 때문에 국제적인 조롱도 당하고 국제 보도를 접하는 국내 많은 시민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고 전했다.

심지어 그 방탄조끼조차도 국내 취재진은 무게가 상당한 걸 입었는데, 세계의 다른 기자들은 개량해서 가볍고 더 좋은 소재로 된 걸 입고 다니더라는 것이다. 나 회장은 “우리가 이라크 전쟁 보도할 때 그 수준에서 멈춰섰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 회장은 “주요 언론에서 일하고 있는 저희나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기존의 방송이나 언론사들이 그것들을 깨쳐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우리 언론인과 언론사, 방송사들의 용기 없는, 침묵하는 행동 때문에 시작됐다고 생각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국제 언론단체도 잇달아 연대 성명…“전쟁 지역 취재 제한 철회하라”

그래서 한 프리랜서 언론인이 여권법 위반으로 기소되고 형사처벌 받은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근본적인 제도 개선까지 끌어내기 위해 현업 언론인단체와 시민단체, 프리랜서 언론인 등이 연대하고 나선 것은 의미가 있다. 여기에 국제적인 연대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기자연맹(IFJ)는 지난 16일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내어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장진영 작가의 근거 없는 형사처벌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지지한다”고 밝혔다.

국제언론인협회(IPI)도 22일 ‘한국은 분쟁 지역에서 보도하는 언론인에 대한 제한을 철회해야 한다’는 제목의 연대 성명을 발표했고, 언론인의 법적 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글로벌 비영리 단체인 미디어 디펜스(Media Defence)는 장 작가에 대한 소송비용 지원을 제안했다. 언론연대 등은 유엔 프라이버시 특별보고관에 서한 진정절차를 제출하는 등 국제적인 대응 활동을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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