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지난 4일 오후 5시. 검붉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이곳은 프로축구 K리그1에서 뛰는 FC서울의 홈구장. 두 시간 반 뒤 포항스틸러스와 맞붙는 FC서울을 응원하기 위해 직접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었다.
관람객들이 하나둘 입장하면서 응원 열기는 날씨만큼이나 달아올랐다. FC서울을 상징하는 검붉은 깃발이 펄럭였고, 힘찬 응원가가 경기장을 압도했다. 그 사이에서 조금은 차분한 기운이 감도는 구역이 있었다. 바로 기자석이다. “둘 다 잘하는 팀인데, 지금 포항이 리그 2위고 서울이 3위라서 기자들도 많이 온 것 같은데요?” 이날 현장을 찾은 취재기자 중 최고참인 우충원 OSEN 축구전담 기자는 일찌감치 3층 기자석으로 올라와 경기를 준비했다.
18년째 축구 전담 오랜 경력만큼 ‘아이디’로 유명한 기자
우 기자는 지난 2005년 기자생활을 시작해 이듬해 온라인 스포츠·연예매체 OSEN에 공채 2기로 입사했다. 그길로 지금까지 18년째 축구를 취재하고 있다. “야구도 하고 싶었는데 회사에서 안 된다고 해서요(웃음).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축구만 하고 있네요. 예전엔 이른바 ‘야농축배’라고 여름엔 야구와 농구, 겨울엔 축구와 배구 순서대로 맡는 식이었거든요. 요새는 야구·배구, 축구·농구를 같이 맡아요. 저도 주로 축구와 농구를 담당하고 있고요.”
사실 우 기자는 스포츠 기사 좀 챙겨본다는 사람은 다 알만한 유명 인사다. 오랜 경력만큼 그가 주목받은 이유는 또 있다. 눈길을 끄는 바이라인 ‘10bird@osen.co.kr’ 때문이다. 아이디를 영어로 발음하면 ‘텐 버드’, 굳이 직역하면 ‘새 10마리’다. 그런데 한국어로 읽으면 비속어처럼 들린다. 아이디가 개그 소재로 쓰이면서 덩달아 그도 유명해졌다. “아이디는 입사할 때 정하잖아요. 어리고 철없을 때 생각 없이 지었는데, 이렇게 됐네요. 하하”
우 기자는 보통 평일엔 오전 7시부터 재택근무를 한다. 프로축구나 프로농구 경기는 대부분 금요일이나 주말에 열려서다. 평일엔 K리그뿐 아니라 해외축구 소식을 비중 있게 전하고, 태권도나 씨름, 격투기 등 다양한 종목을 다룬다. 또 주말 중 하루는 꼭 경기장을 찾기 때문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진 못한다고 한다.
“스포츠 기자가 주말에 경기장 가는 건 당연하지만 아빠로서는 안 좋죠. 아내가 늘 그래요. 주말에 놀이터 가면 다 아빠들인데 우리 아이 아빠만 없다고요. 평일에도 집에는 있지만 실시간으로 일해야 하고, 주말에도 못 놀아주니까 딸한테 미안하죠. 가끔 경기장에 데려와도 저는 기사를 써야 해서 같이 못 봐요. ‘경기 끝나고 보자~’ 하는 거예요. 일 때문이니까 죄책감은 갖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래도 미안할 때가 많죠.”
경기시작 전 축구기자에게 중요한 감독 사전회견
경기 시작 한 시간 전, 3층 기자석에 있던 우 기자가 지하 1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양팀 감독의 사전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기자들이 모인 인터뷰실에는 경기를 앞둔 두 팀의 출전선수명단과 대기명단, 선수별 출전·득점·도움 개수, 상대 전적, 스타팅 포메이션 등 기본 정보가 담긴 자료 뭉치가 놓여있었다. 기자들은 이 자료를 살펴보며 연신 키보드를 두드렸다. 자료를 가리키며 우 기자가 말했다. “이것만 봐도 오늘 경기를 미리 알 수 있어요. 누가 선발로 나오는지, 후반에는 어떤 선수가 나올지, 어떤 전술을 짰는지를 파악해 기사로 쓰고 감독에게도 물어보는 거죠.”
먼저 원정팀인 포항 김기동 감독부터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원정팀 감독실로 가는 길, 우 기자가 귀띔했다. “김기동 감독님은 포항에서 데뷔하고 은퇴한 포항의 레전드예요. 선수 생활도 오래 하셨고요. 이 팀 김준호 선수가 감독님 아들이라 주목받곤 해요.” 기자들은 김 감독을 둘러싸고 질문을 쏟아냈다. 이 선수를 왜 선발명단에 넣었고, 대기선수 중에선 누굴 먼저 내보낼 건지, 최근 원정경기 승률이 낮은데 개선책은 무엇인지, 경기 전에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등 수많은 질문에 감독은 일일이 답변했다.
곧바로 홈팀인 서울 안익수 감독의 기자회견이 이어졌다. 우 기자는 안 감독의 이력과 특징을 설명해주다가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까지 예측했다. “안 감독님 별명이 터미네이터예요. K리그 감독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데 지금도 체격이 탄탄하시죠. 항상 축구 문화를 강조하셔서 이따 회견에서도 분명히 문화 이야길 하실 겁니다.” 우 기자의 예언(?)처럼 실제로 안 감독은 며칠 전 열린 파리생제르맹FC와 전북현대모터스의 경기를 언급하며 선진적 문화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리그 2위 포항과 3위 서울(4일 기준)이 맞붙은 이날 경기는 선두권 경쟁에서 중요한 승부처였다. 오후 7시30분, 사전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석에 돌아오자 경기 시작 휘슬이 울렸다. 입장 관중은 1만5016명. 서울의 평균관중 2만2437명보단 적지만 K리그1 전체 구단 평균관중 1만206명을 뛰어넘는 규모다. 우 기자는 “주말이 아닌 금요일 저녁치고는 굉장히 많이 오신 것”이라며 “최근 3~4년 전부터 가족 단위나 여성 팬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0대0 무승부 예상? 빗나간 18년차 축구기자의 촉
경기는 해가 지는 시간에 시작됐지만 한껏 데워진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기자석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흘렀다. 사전기자회견에서 두 감독 역시 날씨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을 정도였다. 온도를 낮추려고 경기장 곳곳에서 인공 안개를 분사했지만, 이런 무더위에는 역부족이었다. 경기 내내 뛰어야 하는 선수들도 초반부터 힘겨워하는 모습이었다.
흠뻑 땀에 젖어 경기를 지켜보던 우 기자에게 경기 승패를 어떻게 전망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오늘 너무 더워서 골이 안 나올 것 같다”며 0대0 무승부를 예상했다. 정말 무더위 때문이었던 걸까. 두 팀 모두 득점 없이 전반을 마쳤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후반전을 맞이했다. 잠잠하던 골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후반 8분 서울 기성용 선수의 패스를 받은 김신진 선수가 다이빙 헤더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경기장을 향하던 우 기자의 시선이 노트북 한편에 켜놓은 생중계 영상으로 옮겨갔다. “기자석에선 전체적인 경기 흐름이나 전술은 한눈에 볼 수 있지만, 세세한 상황은 보이지 않아요. 여기 기자들 다 현장 와서도 생중계 영상을 틀어놓거든요. 누가 패스했는지, 어떻게 골을 넣었는지, 왼발인지 오른발인지 리플레이 영상으로 반드시 확인해야 해요.”
선제골을 허용한 포항은 후반 13분 선수 3명을 한 번에 교체해 반격을 준비했다. “교체 전략이 얼마나 통할지 봐야죠.” 곧이어 포항의 만회골이 터졌다. 오베르단 선수의 슈팅이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골 안 나올 거라고 했는데, 벌써 2골이나 들어갔네요.” 우 기자가 멋쩍어하는 사이 또 골이 나왔다. 이번엔 다시 서울이었다. 후반 22분 팔로세비치 선수가 득점하면서 서울은 2대1, 승리로 향하고 있었다. 우 기자도 작성 중인 기사 첫 줄에 ‘서울 승리’를 넣었다.
후반 31분 포항이 페널티킥 득점 기회를 놓치면서 승기는 서울로 굳어지는 듯했다. 전·후반 90분이 모두 지나고 추가시간 7분이 주어졌다. 골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항은 끝까지 서울을 추격했다. 경기 종료 4분 전, 포항 하창래 선수가 극적인 헤딩골로 또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는 모두 4골이 터진 2대2 무승부로 마무리됐다. “아휴, 1대1 동점이었다가, 2대1 서울 승리였다가, 2대2 동점까지 기사 첫 문단을 두 번이나 바꿨네요.” 우 기자가 쓴 기사 <‘하창래 추가시간 헤더 동점골’ 포항, 서울과 2-2 난타전 끝 무승부>는 경기 종료와 동시에 출고됐다.
“분명히 현장에서만 얻는 것 있어”
경기가 끝나자마자 기자들은 다시 지하 1층 인터뷰실로 향했다. 경기 전후로 양팀 감독은 기자회견을 하고, 경기를 마친 뒤엔 그날 가장 인상적인 플레이를 한 선수가 기자들 앞에 선다. 이번 경기에선 마지막 헤딩골을 장식한 포항 하창래 선수가 자리했다. 하창래는 지난 서울전에서도 헤딩으로 동점골을 터뜨린 선수다. 우 기자는 경기 결과 기사와 마찬가지로, 하창래 선수가 회견을 마친 직후 <‘천금 헤더 동점골’ 하창래, “지난 동점골 기억이 스쳐 지나갔고 결과로 나와 뿌듯”> 기사를 출고했다.
우 기자가 이날 현장에서 쓴 기사는 모두 4개다. 경기 내용과 결과를 다룬 1꼭지, 경기 후 양팀 감독과 하창래 선수 기자회견 발언 등이 3꼭지다. 국가대표 경기가 열리면 하루 만에 스무 개 가까이 쓸 때도 있어서 이 정도는 약과라고 한다. “온라인매체 특성상 빨리, 많이 쓸 수밖에 없어요. 현실적으로 네이버 스포츠 메인에 걸려야 읽히니까요. 오래 해와서 손에 익긴 했지만, 솔직히 현장에서 급히 쓰다 보면 오타를 내거나 실수할 때도 있긴 하죠.”
어찌 보면 현장취재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다. 특히나 지방구단 경기장에 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왕복 교통비와 숙박비만 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가장 인기 있는 야구라면 모를까 매체 차원에서 축구나 농구, 그 외 종목에 기자를 파견할 이유가 약해지는 것이다. 또 해외축구리그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들이 늘면서 외신 인용 보도만으로도 조회수를 기대할 수 있는 환경이 현장취재 약화를 부추기는 셈이다.
“손흥민이나 김민재, 이강인 같은 한국 선수뿐 아니라 유명한 외국 선수 기사도 잘 먹히거든요. 시간 내고 돈 써서 국내리그 현장 취재할 바에 어차피 읽히지도 않으니까, 외신기사를 하나라도 더 쓰라는 거죠. 요즘 업계 인식이 그런 것 같아요.”
우 기자 역시 재택근무하는 평일엔 주로 해외축구 기사를 쓴다. 그래도 주말이 되면 축구나 농구 경기가 열리는 지역으로 현장취재를 가는 이유가 있다. “경기만 다루는 기사는 온라인 생중계로 보는 거나 현장에서 쓰는 거나 별 차이가 없다”지만 분명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접한 정보만으로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분들이 있는데, 현직 감독이나 선수, 선수 출신들을 만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실제로 그런 친구들이 기자가 돼서 현장에 와보니 정말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현장에선 다양한 분들을 직접 마주할 수 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보면 당장 기사로 쓰지 못하는 사안이라도 배경지식이 되고, 나중에 정보가 될 수 있죠.”
우 기자는 지난해 본격적으로 유튜브에 진출해 보폭을 넓히는 중이다. 현재 박문성 축구 해설위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달수네 라이브’에 고정 출연하며 축구팬들과 만나고 있다. 우 기자 표현대로라면 “친한 사람들과 헛소리를 주고받는” 것처럼 가벼운 콘셉트지만 매주 방송 촬영이 쉽지만은 않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시간이 즐거운 건 트렌드를 읽을 수 있고, 축구팬들과 소통하는 재미가 있어서다.
“기자들이 다 그렇지만 스포츠 기자도 욕을 많이 먹거든요. 어떤 구단이나 감독을 칭찬해도 욕을 들어요. 나는 싫어하는데 왜 좋은 기사를 써주냐는 거예요. 지금도 SNS 메시지로 욕이 오긴 하는데 유튜브 출연하고 나서 제 이름의 나무위키 페이지 내용은 깨끗해졌어요. 어떤 오해가 풀렸나 봐요.(웃음)”
스포츠 기자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울-포항전 기사를 모두 출고하고 나니 밤 10시였다. 우 기자는 동료 기자들과 함께 출구 쪽에 있는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으로 이동했다. 경기장을 나서는 선수들을 붙잡고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서였다. 원정팀인 포항 선수들은 이미 떠났을 시간이라 서울 선수들이 나오길 기다렸다. 30분이 지나서야 선수들이 모습을 비쳤다. “이겼어야 할 홈경기에서 비겼으니까 선수들끼리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기자들은 저마다 픽한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우 기자는 오스마르 선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날씨가 더웠는데 어땠는지, 무승부한 기분이 어떤지 등을 물었다. 선수를 보내고 나니 어느덧 밤 11시가 다 됐다. 하나둘 인터뷰를 마치고 흩어지는 기자들 사이에서 그가 말했다. “너무 늦었으니까 먼저 들어가세요. 저는 구단 관계자들 좀 보고 가려고요.” 우 기자의 하루는 그렇게 더 길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