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동남쪽에 위치한 효돈은 감귤의 주산지다. 1960년대 감귤 묘목을 심어 70년대 중반 대량 수확이 시작된 이곳은 한때 감귤로 대한민국 국민소득 1위를 기록한 마을이었다. 강경민 전 한라일보 기자는 이곳, 효돈에서 나고 자랐다. 따뜻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으로 달고 맛있는 감귤이 생산되는 이 마을에서, 그는 감귤 농사를 짓는 부모님 아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지난 2018년부터 강 전 기자는 다시 이곳, 효돈으로 돌아와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의 기자 생활을 뒤로 하고 가업을 이어받은 셈이다.
강 전 기자가 처음부터 농사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지난 2001년 한라일보에 입사해 2018년까지 쭉 사진기자로 근무했던 그는 이달의 기자상을 수 차례 수상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은 기자였다. 스스로도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했다”고 말할 정도로 기자라는 직업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면서 그렇게 재밌던 일이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연로해지고 어머니가 인공관절 수술을 받게 되자 농사를 도와드려야 한다는 고민도 생겼다. 그러던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더 이상 고민을 미룰 수 없었다. 아버지가 작고한 그 해 4월, 기자직을 그만두고 다시 효돈으로 돌아왔다.
다만 농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감귤 농사를 지었다곤 하지만 “초등학생 때 농약 줄이나 잡아준 적 있지” 왜 농약을 쳐야 하는지, 언제 농약을 쳐야 하는지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기자 일 하면서 여기 와서 일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맨날 물어보고 그랬어요. 근데 그것도 어느 정도지, 안되겠다 싶어가지고 일단 교육 같은 게 있으면 시간 내서 받고, 계속 따라다니고 그랬어요.”
그는 제주농업기술센터 등 농업관련 기관의 교육을 적극 활용했다. 감귤 기초과정부터 농기계 교육까지 틈날 때마다 수업을 듣고 이를 과수원에 적용했다. 최근엔 농협대학서 감귤 교육 과정도 이수했다. 강 전 기자는 “교육을 받으면 도움이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지만 일단 하나라도 더 배우자는 마음으로 무조건 다니려고 한다”며 “잘 하는 분들 얘기만 들어선 안 된다. 기본이 없으면 이해도 못할뿐더러 밭의 상태도 다르기 때문에 교육 과정을 통해 습득한 이론을 내 밭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1000평 비닐하우스와 3000평 밭에서 각각 한라봉과 노지 감귤을 재배하고 있다. 나무 수만 두 작목을 합쳐 2000그루가 넘고, 출하되는 과실만 1000평당 18.5톤가량이다. 일이 바쁠 땐 사람을 쓰지만 대부분 혼자서 작업을 하기에 1년 내내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낸다. “정지 전정할 때부터가 감귤 농사 한 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감류 시설하우스 같은 경우는 2월부터 작업을 시작해요. 감귤은 4월 말에서 5월 초에 꽃이 피면 보통 6개월에서 7개월이 됐을 때 수확하고, 한라봉은 구정 대목을 맞춰 출하합니다.”
혼자서, 게다가 초보 농부가 감당하기엔 버거울 작업량이지만 그는 기자 시절 때 길렀던 꾸준함과 성실함을 무기로 이 일을 감내하고 있다. “식물은 주인의 발자취를 따라 간다”는 문구를 마음에 새기며 요행 부리지 않고 매일같이 밭에 출근한다. 한편으론 그만의 욕심도 있다. 당도를 올리기 위해 제초제를 쓰지 않는 게 단적인 예다. “제초제를 쓰면 잔뿌리가 다쳐요. 잔뿌리가 과일을 키우고 영양분을 공급하고 당을 올리는데, 제초제를 쓰면 0.5 이상 당도가 떨어지거든요. 비닐하우스 같은 경우에도 화학비료를 많이 쓰면 토양염류장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영양제를 줄 때도 막걸리나 GCM 같은 미생물을 씁니다. 그래야 토양염류농도가 줄고 땅이 건강해진다고 믿어요.”
그 노력 덕분일까. 그는 지난해 사단법인 제주국제감귤박람회조직위원회가 주최한 ‘2022년 감귤품평회’ 한라봉 품목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출품 농가 숫자가 금상 수상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상 가장 좋은 점수를 받은 셈이다. “사실 품평회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농협유통센터에 가니 제 한라봉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출품하라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한라봉 5kg짜리 한 박스를 보내봤는데 현장 방문을 한다고 연락이 왔죠. 그때만 해도 기대를 안 했는데 거기서 귀띔을 받았어요. 물건으로는 1등인데 출품 농가 기준이 안 맞아서 금상을 줄 수 있는지 고민 중이라고. 결국 은상을 받게 됐는데 어머니도 좋아하고 우리 가족 다 좋아했죠. 언제 그런 거 받아 봐요.”
다만 강 전 기자는 “아직도 모자라고 끝이 없다”고 했다. 객관적으로 품질을 인정받았으니 자신감이 생길 법도 한데 아직도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날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소비자들 입맛을 맞추기 위해, 또 서서히 변해가는 제주도의 기후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옛날에 기자할 땐 기자하다가 농사나 짓지 하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해보니까 진짜 아무나 하는 게 아닌데, 이젠 누가 그렇게 말하면 그 사람 혼내주고 싶어요. 휴일도 없고 과정이 다 어려워요. 슬럼프도 오고 잠도 안 오고 스트레스도 엄청나게 받고. 하지만 한라봉으로 치면 300일, 그 출산의 성취감이 있으니 계속 버텨볼 생각입니다. 아직도 배우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그의 목표라면 바로 ‘게으른 농부’가 되는 것이다. 게으른 농부란 나름의 기술력으로 매년 적정 품질과 중량의 과실을 수확해 지금처럼 농사에 매몰되지 않고 다른 일까지 하는 농부다. “이 단계를 넘어서면 여유가 있어요. 아직은 과감하게 쉴 수 있는 농사를 못 하고, 겁이 나서 매일 나와 보는데 노심초사하는 이 단계를 벗어나야죠. 제 사진들로 개인전도 열고 근심, 걱정 없이 여유 있는 농사를 짓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