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장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해임은 시작에 불과했다. 2023년 8월 권력은 공영방송 이사장과 이사들을 강제 해임했고, 그 결과 공영방송 이사회는 친여 구도 재편됐다. 권력의 야욕은 이제 KBS 사장과 MBC 사장 교체로 향하고 있다. 기자협회보는 남영진 전 KBS 이사장과 권태선 전 방문진 이사장을 인터뷰했다. 현재 심경과 해임 과정의 문제점, 노골적인 언론장악의 종착점이 어디로 향하는지 물었다. <편집자 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오후 남영진 KBS 이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재가했다. 이날 오전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과 이상인 위원이 야당 추천 김현 위원을 배제하고 방통위 전체회의를 열어 남 이사장 해임건의안 의결을 강행한 직후였다.
방통위는 해임 사유로 △KBS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 해태 △법인카드 사용 논란으로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가 진행 중인 점 등을 들었지만, 남 전 이사장은 “해임 사유와 절차 모두 위법”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지난 21일 윤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고 22일 해임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서를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지난 24일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만난 남영진 전 이사장은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을 면직하고 나를 해임한 건 KBS 사장을 해임하기 위한 수순으로 본다. 사장 해임은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합의 정신을 어기고 재적 위원 3명 중 2명의 참여와 의결만으로 결정했다는 게 심각한 문제”라며 “김효재 대행도 언젠가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아래는 남영진 전 이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지난 14일 해임되고 2주가 흘렀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 해임 당시 심경은 어땠는지.
“날 해임하려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나보다는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이렇게 빨리 해임될지 몰라서 진짜 충격이었다. 해임되고 나서는 변호사와 소장 만드는 게 제일 큰일이었다. 지난 21일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22일 집행정지 신청서도 냈다. 권익위원회 조사(청탁금지법 위반 의혹)가 남아 있었는데 결국 법을 위반했다고 결론 내렸더라.”
-지난 22일 권익위는 남 전 이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조사한 결과 청탁금지법 위반 소지 35건(720만원), KBS 내규 위반 소지 22건(600만원 상당), 기타 법령 위반 의심 사안 41건(600만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대검찰청과 방송통신위원회에 수사·조사도 의뢰했다. 결과를 두고 “망신주기”라고 반발했는데.
“발표 내용이 너무 황당하더라. 조사 기간 권익위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KBS 이사회 사무국을 통해 자료를 전달했을 뿐이지 직접 만나서 소명하지도 못했다. 이사장으로 일한 2년간 법인카드로 결제한 횟수가 약 240건, 2000만원정도다. 업무추진비 한도가 매달 240만원인데 평균적으로 절반을 썼다. 업무추진비 사용 규정을 보면 인문·문화·체육·학술 등 관련분야와 지자체, 공공기관 관계자 면담·회의·간담회, 정보수집, 여론청취, 직원격려, 내방객 식사제공 등에 쓸 수 있다. 내가 업무추진비로 밥을 산 대부분은 전·현직 언론인과 KBS 사람들이다.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사용한 것뿐이다. 업무추진비를 과도하게 썼다고 하는데, 집행금액 50만원 이상은 10건뿐이다. 40명이 넘게 참석한 이사회 송년회, 명절 선물로 산 3~5만원짜리 곶감세트 구매 등이었다. KBS 이사장의 카드사용 내역은 모두 공개되기 때문에 이걸로 문제 되거나 해임까지 될 걸로 생각지도 못했다. 대검 수사나 방통위 조사가 곧 시작될 테니 전부 세세하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방통위가 제시한 해임사유는 과도한 카드 사용으로 인한 권익위 조사, KBS의 방만경영 방치, KBS 이사의 해임안건 부결 등이다. 근거와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해왔는데,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라.
“방통위는 권익위 조사가 진행 중인데도 KBS노동조합(보수성향)이 주장한 것만으로 ‘과도한’이라는 표현을 써서 해임사유에 넣었다. 해임되고 나서 보니까 권익위는 내가 사용한 업무추진비 전체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금액을 맞춘 것 같더라. 방만경영은 이미 지난 5월 감사원에서 문제없다고 결정한 사안을 나에게 적용한 것이다. 윤석년 전 KBS 이사 해임안건 부결의 경우 이사회가 동료 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 규정이나 권한 자체가 없는데, 여권 이사들이 안건 상정을 주장해 표결을 거쳤다. 결과적으로 부결됐다. 방통위는 이사장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을 마치 내가 부결시킨 것처럼 문제 삼아 해임했다.”
-방통위의 해임 건의안 의결 과정을 위법하다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방통위 해임 청문에는 왜 참석하지 않았나.
“방통위는 해임제청 처분 사전통지서를 KBS 이사회 사무국에 유치송달했기 때문에 해임 근거가 있다는 건데, KBS 이사(장)는 상근이 아니어서 사무국에 유치송달한 걸로 내가 통지서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그 사이 방통위가 따로 자료를 요청한 것도 없었다. 청문에 불응한 이유는 내가 휴가 중이기도 했고 법적으로 반드시 청문에 참석하지 않아도 돼서다. 또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임기 만료(8월23일) 전에 날 해임하려는 게 뻔히 보이는데 청문에 참석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청문에 불응했는데도 해임하지 않았나.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김효재 대행도 이렇게 몰아붙인 거 언젠가 후회할 거다.”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과 해임 취소 소송 결과는 어떻게 전망하나.
“집행정지는 기각되지 않겠나. 앞선 사례를 볼 때 이런 경우 법원이 받아들인 적이 거의 없다. 2008년 해임된 정연주 전 KBS 사장, 2017년 강규형 전 KBS 이사, 지난 5월 면직된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도 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소송 결과는 지금으로선 쉽게 장담할 수 없지만, 정 전 사장이나 강 전 이사는 승소했는데도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지난 23일 KBS 이사회 여야 구도가 기존 4대7에서 6대5로 역전되고 열린 첫 회의에서, 언론 경험이 없는 서기석 이사가 보궐로 임명된 지 2주만에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됐다. 여권 우위 이사회에서 김의철 KBS 사장을 해임할 거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인데.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을 면직하고 나를 해임한 건 사장을 해임하기 위한 수순으로 본다. 당장 30일 이사회에서 사장 해임 제청안이 상정될 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28일 KBS 여권 이사 5인은 김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30일 이사회에 안건으로 제출했다). 사장 해임은 멀지 않았다.”
-KBS 내부는 사장 퇴진 찬성 쪽에 조금 더 기울어있는 것 같다. 지난 6월 기술, 경영, 아나운서, 영상제작 등 직능단체들이 사장 퇴진 요구 성명을 냈고 PD협회에선 65%, 기자협회에선 52%가 사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왜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보나.
“정부가 KBS에 가장 타격이 큰 수신료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동안 수신료 분리징수는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더구나 헌법이나 법령도 아니고, 그 아래인 시행령을 고쳐서 당장 시행할 생각을 누가 했겠나. 정부가 공영방송을 이렇게 망가뜨리려고 하니 사장이 책임을 져라, 사장이 나간다고 하면 좀 봐주지 않을까 하는 인식이 있을 거다. 작년에 적자라든지 여러 가지로 책임을 묻기 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새 사장이 온다고 해도 달라진 방송 지형에서, KBS가 여러 규제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획기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세우기 어려울 거다. 물론 사장이 바뀌면 정부가 수신료 분리징수를 유예하거나 뒤엎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 2년간 이사장으로서 직접 들여다본 공영방송 KBS는 어땠나.
“언론계에 오래 몸담아왔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KBS가 사회적으로 큰일을 하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대북, 국제, 재난, 장애인 방송에 18개 지역국 운영까지 중요한 업무가 많다. 수신료가 그런 역할에 쓰이는 거다. 세계적인 공영방송 BBC에 준할 만큼 잘 만들어진 조직이다. 보도 측면에선 정권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이나 중립이라는 기본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정권은 자기편 만들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말썽이 자꾸 생기는 거다.”
-‘언론장악 주도자’로 비판받는 이동관 방통위원장 체제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한다면.
“이명박 정부 때 이동관(당시 청와대 대변인·홍보수석)씨가 한 일 중 최고는 종합편성채널 탄생이다. 그때 언론계에선 저게 될까 했는데, 정말로 되더라. 보수성향 종편들이 출범하면서 방송 지형이 완전히 바뀐 걸 보면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다고 본다. 이제 공영방송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게 시즌2다. 시나리오는 이미 알려지지 않았나. KBS 수신료 분리징수부터 올 연말 KBS2 재허가 탈락, MBC 사영화처럼 더한 충격요법을 쓰겠다는 거다.”
-해임되면서 임기 3년 중 1년을 남기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사장으로서 이루지 못한 것이 있다면.
“KBS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규제를 풀어야 한다. MBC만 해도 건물을 지어서 임대사업으로 수익을 내기도 하는데 KBS는 방송법에 가로막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물론 수신료가 가장 중요한 재정적 기반이지만 누가 사장으로 와도 흔들리지 않도록 더욱 안정적인 재원이 필요한데 지금으로선 어렵다. 국회에서도 규제 완화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실제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됐는데 중단돼버렸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KBS 이사 해임, 사장 해임 수순이 몇 차례 반복돼왔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업무추진비 부정 사용으로 해임됐던 강규형 이사와 그 여파로 해임된 고대영 전 KBS 사장 모두 해고무효 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때의 해임과 지금 해임, 같은가 다른가.
“법인카드로 잘렸으니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해임돼서 억울하기는 한데 결국 칼 쥔 사람이 자기편을 만들려고, 자의적으로 결정해온 역사가 반복되는 거다. 다만 내 경우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가 합의 정신을 어기고 재적 위원 3명 중 2명의 참여와 의결(정부·여당 추천 김효재, 이상인 위원 해임제청안 찬성, 야당 추천 김현 위원 표결 불참)만으로 결정했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이런 불행한 역사를 어떻게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이 발의되고 그랬는데, 정부와 여야가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는 구조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원칙대로라면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곳이니까 공영방송 이사나 방통위 위원도 추천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자기들이 집권하면 장악하려고 하고 이용하려고 하고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니까 이런 사달이 나는 거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3월 최민희 전 의원을 방통위원 후보로 추천했지만 대통령이 지금까지 임명을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끝까지 싸우거나 대안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손 놓고 있다가 이렇게 된 거다. 국회의 의지가 부족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