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검찰 특활비 샅샅이… 언론사 협업, 공익을 낳다

[인터뷰] 검찰 예산 공동 검증한 뉴스타파·부산MBC·경남도민일보

검찰의 특수활동비는 성역 중의 성역이었다. 그간 예산 심의 권한을 가진 국회도, 검찰의 감독권을 쥔 법무부도 접근하지 못했고, 수사 기밀을 핑계로 수십 년 동안 세부 내역이 공개된 적도 없었다. 이른바 ‘무소불위’의 예산이었던 검찰 특활비. 그런데 그 빗장을 최근 언론사들이 풀었다. 바로 뉴스타파, 부산MBC, 경남도민일보, 뉴스민, 뉴스하다 등 5개 언론사로 이뤄진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이다. 이들은 뉴스타파가 행정소송을 통해 검찰로부터 받은 자료를 토대로 지난해부터 검찰 특활비의 부정사용과 오남용 실태를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아직 보도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달의 기자상, 한국방송기자대상 등 수상 소식도 잇따른다.

지난해 6월 뉴스타파와 3개 시민단체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쓴 특수활동비 자료 8000여쪽을 받아내 5주 연속 검증 보도했다. 사진은 함께하는 시민행동 활동가와 뉴스타파 기자들이 특활비 등 예산 자료를 파란 박스에 담아 검찰청사 밖으로 나오고 있는 모습. /뉴스타파 제공


취재의 시작은 무려 4년 3개월 전인 2019년 10월이었다. 앞서 2017년, 3개 시민단체와 함께 국회 예산을 치밀하게 검증했던 뉴스타파는 그 연장선에서 이번엔 검찰 예산을 감시하기로 했다. 박중석 뉴스타파 탐사1팀장은 “기밀 수사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그간 검찰이 특활비 공개를 거부해왔는데, 어떻게 쓰이는지 한 번 검증해보고 싶었다”며 “3개 시민단체와 2019년 10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공개를 거부하자 그 다음 달인 11월 바로 행정소송에 들어갔다. 소송에만 3년 5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00회 이달의 기자상 시상식에서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이 수상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됐지만 뉴스타파는 2022년 1월 1심에서 승소하고 그해 12월 2심에서도 승소했다. 지난해 4월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며 드디어 베일에 싸여있던 검찰 예산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검찰이 공개한 예산은 2017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이 쓴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의 집행 내역과 지출 증빙서류였다. A4 용지 기준으로 1만7000여장에 달했다. 뉴스타파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검증의 대상을 전체 67개 검찰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확정 판결문을 첨부해 일제히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협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공동취재단을 꾸렸다.


지난해 7월 출범한 취재단은 지역을 나눠 각 검찰청으로부터 자료를 수령해 검증을 진행했다. 이렇게 받은 자료가 10만장, 정보공개청구 수수료만 1600만원에 달했다. 그런데 자료가 엉망이었다. ‘파일’이 아니라 ‘복사본’ 형태로 주는 탓에 이를 스캔하고 엑셀로 입력하는 데만 2개월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게다가 수령인, 집행사유 등을 먹칠로 지워 검찰이 특활비를 기밀수사에 썼는지 규명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승환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장은 “경남 지역 검찰청에서 받은 문서만 3만장 정도 됐는데 그걸 다시 전산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며 “먹칠이 돼서 한 공정 덜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방대한 작업이었다. 다만 주요 내용이 가려져 있더라도 7년 치 자료를 입력하다 보니 뭐랄까 특징들이 조금씩 잡혔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전국 65개 지방검찰청이 쓴 특수활동비 자료를 검증하기 위해 지난해 6월 중순 독립언론·공영방송 등과 함께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을 꾸렸다. 사진은 지난해 7월1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 리영희홀에서 공동취재단 1차 회의가 열린 모습. /뉴스타파 제공


공동 검증 결과, 실제 특활비의 부정사용과 오남용은 심각했다. 기밀수사에 써야 할 특활비가 검사 포상금과 격려금으로 지급되는가 하면 검사실 공기청정기 월 임대료나 휴대폰 요금, 회식비 등으로 지출되고 있었다. 지검장 퇴임 전 ‘셀프 수령’이나 연말 몰아쓰기 관행, 또 특활비를 전액 현금화한 뒤 이른바 ‘현금 저수지’에 보관하면서 국회에는 다 쓴 것처럼 허위로 보고하는 실태 역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박중석 팀장은 “개별적인 오남용도 문제였지만 특활비가 갖고 있는 특권들이 더욱 문제였다”며 “영수증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도 되고, 감사원의 감사를 받지 않아도 되며 국회에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주의가 그랬다. 그런 것들을 허물어야만 진정한 검찰 개혁이 이뤄진다고 봤다”고 말했다.


검증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검찰이 ‘김만배 녹취록’을 보도한 뉴스타파를 압수수색하며 협업이 중단될 위기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공동취재단이 2개월간의 취재 결과를 기자회견 형식으로 처음 발표하는 날이었다. 걱정이 된 박중석 팀장은 혹시 다른 언론사에도 압수수색을 벌일까, 언제든 취재단에서 빠져도 된다고 공지했다. 그러나 힘든 취재를 거쳐 의지를 다진 언론사들은 아무도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검증 과정에 참여하게 된 데 감사했다.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지난해 9월14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67개 검찰청의 특수활동비 검증 내역을 공개했다. 공교롭게도 검찰은 이날 뉴스타파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뉴시스


류제민 부산MBC 기자는 “한 주제로 각자 다른 지역에서 목소리를 내며 제도를 바꿔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진짜 협업의 힘이라는 걸 느꼈다”며 “보도가 나가면 나갈수록 주제와 내용, 취재와 보도 방식이 정말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더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승환 부장도 “뉴스타파가 중심을 정말 잘 잡아줬기 때문에 지금까지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며 “협업이 쉽지 않은데, 자율성은 자율성대로 살리면서 큰 맥락에선 어떤 흐름으로 갈 건지 조정을 정말 잘 해주셨다”고 했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대표 하승수(오른쪽) 변호사가 충주지청 업무추진비, 특정업무경비 영수증 사본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왼쪽은 박중석 뉴스타파 탐사1팀장. /뉴시스


그 덕분일까.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나온 보도는 개수로만 따져도 160건이 훌쩍 넘는다. 지면·방송·인터넷을 넘나들며 다양한 형식의 보도물이 나오고, 공동 기자회견만 7번을 했다. 박중석 팀장은 “경쟁은 사익을 낳지만 협업은 공익을 낳는다는 말처럼 시민단체, 또 언론사들과 협업을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많은 기사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어떻게 보면 이번 프로젝트에서 협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게 굉장히 잘 구현된 것이고, 앞으로도 권력기관의 성역을 무너뜨리는 감시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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