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회 구조와 사장 선임 절차를 바꾸는 이른바 ‘방송3법’ 개정안 처리 등을 두고 여야의 강대강 대치가 계속되고 있다. 민주당 주도로 발의 3주 만에 상임위와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한 법안은 본회의 처리를 위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태다. 그러나 본회의를 통과한다 해도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게 거의 확실하며, 재표결에서 가결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현업단체와 이른바 ‘진보진영’에 속하는 시민사회진영은 이 법이 “공영방송 정치독립법”이라며 조속한 통과를 주장하고 있지만, 비교적 진보성향으로 평가되던 언론학자들 사이에서도 방송3법에 대해서만큼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의 내용뿐 아니라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처리 과정에도 문제가 있고, 일방적인 처리가 남길 부작용이 더 클 거란 지적이다.
6월28일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22대 국회의 언론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만약 정부 입법이라면 이렇게 공론화 없이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민주당과 시민단체가 뭐라고 했을지 생각해보자”고 꼬집었다. 강 교수는 “지금 이렇게 밀고 나가는 건 당장 MBC 사장 (교체) 문제와도 무관하다. 어차피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할 거고, 그럼 면피만 되는 거 아니냐”면서 “좋은 선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조항제 부산대 교수도 “가장 낮은 수준의 합의라도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 교수는 “최소한의 공감대 갖고 합의할 수 있는 논의의 테이블을 주장하는 걸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갈망하는 언론현장의 절실함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동원 한예종 영상원 강사는 “민주당은 개혁이 아닌 선명성 경쟁으로 무리하게 입법을 추진하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선 승리를 위한 언론장악법’이란 대립 구도를 짜며 적대적 관계들끼리 정치적으로 ‘윈윈’하는 게임이 됐다”면서 “이 경쟁에서 희생되는 건 공영방송 시스템의 해체와 그 종사자, 시청자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가장 선두에서 방송3법 처리를 주장하고 있는 언론노조의 윤창현 위원장은 “우리도 이 법이 100점짜리라고 생각지 않는다”면서도 “현장 언론인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구명정은 던져주지 않고 수영을 배우라고 하는 것 같다”며 갑갑함을 호소했다. 윤 위원장은 “MB 이후 그 끔찍한 세월을 다시 겪을지 모른다는 현장의 절박감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크다”면서 당장 필요한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조항제 교수는 문재인 정부 집권 직전 민주당이 제안했던 이른바 ‘박홍근안’을 예로 들었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를 여야 7대6으로 바꾸고, 사장 선임이나 해임 시 3분의2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특별다수제 도입을 골자로 한 법안이었다. 그러나 이 법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나”라는 문 대통령 발언이 알려진 뒤 좌초됐다.
조 교수는 “어떤 안이 기초가 되느냐가 아니라 협상 테이블을 만들 수 있느냐, 어떤 안을 갖고 얘기할 때 국민의힘이 테이블로 나오겠느냐, 이게 훨씬 중요하다”면서 “어떤 법이든 일방적으로 통과되면 국회가 바뀐 뒤 재개정되거나 무효가 될 수 있다. 이런 보복의 정치를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논의 테이블을 만들자”고 말했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방송3법 개정안이 공영방송 이사 수를 현행 9~11명에서 3사 공통 21명으로 늘린 데 반대했다. 이 교수는 “9인 위원회면 충분할 것 같다”며 “3분의 1 이상은 중립지대 이사 혹은 양쪽에서 교섭단체를 가진 정당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이사로 합의적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는 잔여임기 보장만으로도 정치적 후견주의 문제를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공영방송 이사를 해임하면 보궐 이사는 잔여임기만 수행하게 되는데, 보통 다른 위원회들은 그렇지 않고 보궐이 되어도 3년 임기를 다 준다. 공영방송은 그런 제도를 운용하지 않고 한날한시에 다 바꿔서 엄청난 사단이 난다”면서 “잔여임기 보장만 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