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대통령을 풍자했다고 '수사 중'이란 소식은 없다

[언론 다시보기]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제33회 파리 올림픽의 개막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프랑스에서 ‘6월23일 센강에서 똥을 싸자(#JeChieDansLaSeine Le23Juin)’ 캠페인이 광범위하게 벌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올림픽 경기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급여는 물론 제대로 된 병원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미관상의 이유로 노숙자들이 파리 외곽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프랑스 정부가 올림픽 개최를 위해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으면서 파리 시민들의 실질적인 삶을 개선하는 데는 무관심하자, 시민들의 분노가 캠페인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프랑스 파리 시민들의 성난 민심은 마크롱 대통령이 센강에서 오물을 뒤집어쓴 AI 합성사진으로 표출했고, 우리나라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다. 이 같은 마크롱 합성사진을 본 동료가 말했다. “이거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아닙니까? 수사해야죠.”


한국에서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최초 제작자는 물론 퍼 나른 시민들까지 수사기관에 의해 그야말로 탈탈 털릴 거라고 확신한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합성사진은 한국 사회에서 논란인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 영상’ 사건과 닮았기 때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실제 발언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낮은 패러디였으나, 후과는 컸다.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 영상’은 지난해 11월 유튜브에 최초 업로드됐지만, 공교롭게도 4·10총선을 앞둔 시점에 논란이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회 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정보”라며 해당 영상을 접속 차단(<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8조)했다. 국민의힘은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고, 서울경찰청은 ‘정보통신망법’ 상 명예훼손에 더해 ‘공직선거법’ 제82조의8(딥페이크영상등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적용하겠다고 벼렸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일찌감치 딥페이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경찰청은 “윤석열 대통령도 딥페이크에 당했다”라는 프레임으로 심각성을 가중시켰다. 경찰청은 본투표를 코앞에 두고 원본 제작자가 특정 정당 소속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 진행을 보면서 궁금해졌다. 과연, 선거에 개입하려 했던 자는 누구인가.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 영상’을 제작했고 유포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시민들은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이들은 압수수색을 받아야 했고, 출국이 금지됐다. 공당의 고발에 의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서를 오가며 조사받고 있다. 반면, 프랑스 사회는 조용하다. 프랑스에서는 되레 ‘6월23일 센강에서 똥을 싸자’ 캠페인을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사이트가 개설돼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 영상’을 제작했거나 유포한 마음이 성난 파리 시민들과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상황을 보라.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최근 아리셀 공장 화재를 비롯해 하루가 멀다고 노동자들의 사망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정부는 어떠한 안전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국회를 어렵게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대통령의 거부권에 의해 폐기됐으며, 정부·여당은 꾸준히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채 상병 사망 수사외압에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정황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시민들의 안전과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과 소득 감소에 대해 정부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안타까운 건, 마크롱 대통령의 합성사진과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영상을 다른 잣대로 다룬 한국 언론매체들이다. 단순히 하나는 풍자로 보고 또 다른 하나는 명예훼손 사건으로 다뤘다고만 얘기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시선이다. 프랑스에서 벌어진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조롱 캠페인은 ‘정책 실패에 따른 시민들의 분노’에 쏠려 있던 한국 언론의 눈이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을 보도할 때는 어땠나. 우리나라 언론이 어느 곳에서 어느 방향을 바라보며 보도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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