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언론인들을 수사해온 검찰이 정치·언론계 인사들의 통신 정보를 대규모 조회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가운데, 취재원 정보 등 민감한 연결망을 무더기로 수집한 것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수사기관의 통신조회가 사법부의 통제를 받도록 법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5일 성명을 내고 검찰의 이번 통신조회에 대해 “대상자가 3000여 명에 이르고, 정치인·언론인에 일반 시민까지 그 규모와 범위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무차별적 조회이자 정보 수집”이라며 “취재원 등 기자의 연결망이 노출돼 언론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매우 크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통신조회를 악용한 언론통제와 인권침해를 즉각 사과하고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날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언론노동조합 등 6개 언론현업단체도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신정보 조회는 이전부터 벌어져 온 일이지만 언론계와 정치권, 시민사회, 일반인들까지 망라한 3000여 명이라는 숫자는 국가 권력 기관에 의한 유례없는 민간인 사찰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며 “초유의 사태란 이럴 때 쓰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통신조회 사실을 알리는 사후통보 문자 메시지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수에게 2일부터 전송되고 있다. 검찰은 “사건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통화 상대방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수사대상에서 제외했다”면서도 이렇게 조회한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뉴스토마토는 사후통보를 받은 익명의 취재원이 검찰에 물었더니 “통신조회 인원은 3000명이라는 식으로 말해서 너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고 3일 보도했다.
검찰은 7개월 전인 1월 김만배씨와 뉴스타파 기자들 등 피고인 4명뿐만 아니라 다수 참고인과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언론노조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는 다수 언론인에게 사후통보가 발송돼 검찰이 몇 단계씩 연결망을 확장해 가며 수사하지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2022년 3월 대선 사흘 전 나온 뉴스타파 보도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과 연관됐는지 배후를 밝히는 데 집중해 왔다.
검찰은 수집한 통신자료를 언제 어떻게 삭제하는지 혹은 어떻게 보관하고 활용하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자유언론실천재단과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등 6개 원로언론단체는 4일 공동성명을 내고 “통신이용자 정보에 포함된 주민등록번호 등 언론인의 개인정보를 DB화해 불순한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아닌가”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언론단체는 수사기관이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는 통신조회를 하지 못하게 전기통신사업법 개정도 요구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와 언론인권센터, 오픈넷 등 16개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21조넷’은 5일 성명을 내고 “오랫동안 시민사회단체는 검찰·경찰·국정원 등의 통신자료 제출 관련 법 제도에 큰 허점이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통신자료 조회에 법원 영장이 필요하다며 법령 개정을 요구했지만, 여야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월 결정문에서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또한 2015년 대한민국 국가보고서 최종견해를 통해 영장절차 없이 이용자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통신자료 제공제도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법률 개정을 권고”했다며 “영장 없이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하고 취득하는 것은 당사자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지난해 12월 개정됐지만 인권위 권고의 일부만 받아들여 사후통지만 신설됐을 뿐 영장주의는 도입되지 않았다. 앞서 2022년 7월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사가 통신조회에 협조해 줄 의무가 없고 불이익도 없는 임의수사에 불과해 영장주의 도입은 불필요하다고 결정했다.
통신조회는 수사기관이 확보한 전화번호를 통신사에 보내 요청하면 해당 번호를 쓰는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신원을 영장 없이 알아내는 수사 방법이다. 통화내용은 알 수 없다. 통신사의 협조 없이 영장을 통한 강제 수사로는 특정인과 연락을 주고받은 전화번호와 통화 시간, 기지국 위치 정보까지만 알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