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에 검찰이 정치·언론계 인사들의 통신정보를 대규모 조회한 사실이 드러난 가운데, 합법의 외피를 쓴 무분별한 수사관행을 근절해야 한다고 시민단체들이 요구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노조 등 5개 시민사회단체는 8일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이번 대규모 통신조회를 합법적 수사관행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어 심각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대표는 "검찰이 '가입자 조회'가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여러 자료가 분석되면 관계망을 보여주는 소셜네트워크, 혹은 소셜그래프가 만들어진다"며 "대량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내밀한 상호작용을 파악할 수 있어 침해 정도가 (통신기록 조회보다)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통신조회는 확보한 전화번호를 누가 쓰는지 통신사에 요청해 신원을 확보하는 수사방법이다.
검찰의 이번 통신조회는 규모 때문에 논란도 크다. 조회 대상이 3000여 명이라는 보도도 있었지만 검찰은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특히 조회 대상 다수가 언론인과 정치인이어서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오 대표는 "언론인이나 정치인은 일반인 비해 수많은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고 취재원, 제보자, 내부고발자 등을 보호해야 한다"며 "가입자 조회로 주민등록번호도 받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민번호로 다양한 정보를 엮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도 "가입자 조회를 대규모로 해서 얻은 정보를 분석하면 그 자체로 다른 정보와 연결될 수 있는 키 데이터(Key data)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이런 정보를 계속 축적해 가고 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며 "획득한 정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자체 지침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 부소장은 또 "명예훼손 혐의 수사에 이렇게 대규모 수사팀을 꾸린 사례 자체가 이례적"이라며 "피해자 1명의 명예훼손 수사를 위해서 3000명을 조회했다는 것은 형사법의 대원칙인 비례성을 어겨도 한참 어긴 것"이라고 짚었다.
전대식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명예훼손 수사에 3000여 명 수사가 왜 필요한가"라며 "명예훼손 수사를 빙자한 간첩 수사로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은 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2022년 3월 뉴스타파 보도가 더불어민주당 등 정치권에 배후가 있는지 수사를 집중해 왔다.
언론노조는 뉴스타파와 함께 통신조회 사후통지 문자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의 제보를 받고 있다. 5일부터 이날까지 100여 건이 접수됐는데 절반 이상이 언론인이었고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는 언론학자들과 민주노총 산하의 다른 노조 간부, 일반인도 다수 있었다. 언론노조는 이들의 관계도를 확인해 검찰이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통신조회를 했는지 역으로 추정해보겠다는 구상이다.
김은진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변호사는 "애초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제공 요청을 통제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현행제도로는 그저 수사 목적이라면 어떤 사건이든 가입자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며 "수사 중인 혐의가 중범죄인지 경범죄인지에 따라 통신조회 필요성도 달라진다고 본다"고 말했다.
검찰의 대규모 통신조회 사실은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수에게 2일 사후통지 문자 메시지가 발송되기 시작하며 드러났다. 검찰은 7개월 전인 올해 1월 피고인과 다수 참고인들의 통신기록을 바탕으로 가입자 조회를 했는데, 사후통지 제도는 지난해 말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올해 처음 시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