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15일은 KBS 사사(社史)에 부끄러운 날,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 기미가요, 좌우가 뒤집힌 태극기,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했다는 논란의 다큐 영화 ‘기적의 시작’. 모두 공영방송 KBS가 광복절 당일에 방송으로 내보낸 것들이다. 이를 두고 ‘친일, 역사 왜곡 3종 세트’란 비판과 함께 KBS가 어느 나라 방송이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 가운데, 언론·시민단체들은 그 책임자로 박민 KBS 사장과 윤석열 대통령을 지목하며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해 92개 단체로 구성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16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땡윤방송을 만들던 낙하산 박민 사장은 이제 KBS를 극우친일방송으로까지 만들고 있다”며 박민 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 사태의 뿌리를 보면 박민 사장 1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며 “KBS에서 벌어지는 치욕적인 일들, 친일·극우 방송의 주범은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해석 광복회 이사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광복절이란 굉장한 기쁨과 환희를 갖는 날”이라며 “그럼에도 0시 땡 하고 기미가요를 내보낸 박민 사장을 비롯한 모든 집행부를 성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언론은 국민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바로 알리는 게 도리이기에 KBS에 바로 살아있으라, 깨어있으라고 말하고 싶다”면서 “박민 사장은 내려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오늘부터 KBS는 ‘Korean Broadcasting System’이 아니라 ‘기미가요 Broadcasting System’이 됐다”며 “이제 내년 3·1절엔 유관순 열사 대신 세일러문이 방송될 것이고, 5·18엔 전두환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 감수성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친일로 무장한 사람들이 용산부터 여의도까지 줄줄이”라면서 “KBS 사장과 편성 책임자를 불러서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공영방송이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 왜곡의 수단이 됐다”며 “너무도 참담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오늘 KBS 구성원들이 출근하는 사장을 향해 사퇴 목소리를 높이고 점심시간에도 피켓을 들고 잘못되고 있는 KBS를 우리가 지키자고 호소했다”면서 “책임 있는 임원진을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만이 아니라 법정에 세워 공영방송 장악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호찬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어제(15일) KBS 상황을 보면서 정신이 바짝 들었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든 윤석열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이유가 이거구나 싶었다. ‘MBC도 장악되면 망가진다, 극우방송 될 거다’라고 말은 많이 했는데, 어제 KBS를 보면서 반드시 MBC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 본부장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 선임 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심리를 담당하는 법원을 향해서도 호소했다. 그는 “어제 KBS에서 벌어진 일을 살펴보라. 같은 상황이 MBC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양대 공영방송이 친일·극우방송 역할을 하면 어떻게 되나.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이건 막아야 한다. 정말 상식적인 판단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달라”고 말했다. 또한, 시민사회에도 “MBC를 지키고 KBS를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KBS “박민 사장 사과…부사장 주재 TF 발족”
한편 KBS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박민 사장이 오전 임원회의에서 “국가적으로 중요한 날에 국민들께 불쾌감을 드린 데 대해 집행부를 대표해서 진심으로 국민들께 사과드린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KBS는 또 “이번에 드러난 당면 문제점들을 시급히 개선하기 위해 부사장 주재의 ‘태스크포스’를 즉각 발족해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고 밝히며 “태스크포스는 보도, 제작, 편성, 기술, 인사, 심의 등 분야별 국장급 기구로 구성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