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YTN지부가 윤석열 정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2인 체제’에서 이뤄진 유진그룹 인수 과정이 불법과 졸속으로 점철됐다며 증거들을 공개하고 나섰다. 방통위가 자문위원 의견에 반해 YTN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 폐지에 나서고, 공영언론 최대주주 변경을 판단하는 공문서가 수준 이하였음에도 통과시키는 등 여러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법원이 윤석열 정부 방송통신위원회의 ‘2인 체제’ 의결에 제동을 건 판결을 낸 가운데 이런 절차를 거친 ‘YTN 민영화’가 원천 무효란 비판이 나오는 한편 차후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을 파악하고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문의원 의견 무시하고 방통위가 ‘YTN 사장추천위원회 폐기’ 앞장 섰나?
YTN지부는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날치기‧짜깁기’ 유진그룹 적격심사 불법 증거들’ 기자회견을 열고 ‘YTN 사영화’ 위법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공개했다. 공적 소유 구조를 지닌 YTN은 지난 2월 방통위가 최다액출자자 변경을 승인하며 민간자본인 유진그룹 소유가 됐다. 5인 상임위원의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등 2인 체제에서 이 같은 의결을 했고 언론계 반발을 맞은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2인 체제란 형식 뿐 아니라 이를 심사하는 과정 자체가 졸속, 부실에 가가까웠다는 의혹 제기가 주를 이뤘다. 우선 방통위가 ‘YTN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 폐기’를 반대한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묵살하고 보도자료 등에서도 아예 누락했다는 근거가 공개됐다. 이날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1월 말 방통위는 유진이엔티(유진그룹)에 대한 최대주주 변경승인이 적절하다는 취지로 조건부 승인 이후 같은 심사위원들로 자문위원회를 꾸렸다. 유진그룹은 당초 사추위 유지에서 폐기로 입장을 바꿨고 이에 대해 8명 자문위원 중 6명이 반대 취지 의견(찬성 1명, 의견없음 1명)을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의견은 무시됐고 “경영진의 합리적인 경영 전략 수립을 저해하는 기존 사장선임제도는 이사회 중심의 선진 거버넌스 체제를 반영하여 개선이 필요함. 대표이사는 방송전문가로 이사회를 통해 선임”이라는 유진그룹 측 제출자료만 반영해 지난 2월 방통위의 YTN 최다액출자자 변경이 승인됐다는 요지다. 실제 이날 공개된 의견서를 보면 자문위원들은 ‘기존 노사 합의한 제도 폐지가 노사 갈등을 유발할 우려’(A‧D 자문위원), ‘보도전문채널에서 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이사회의 사장 선임은 방송사업자 공적책임에 우려’(B 자문위원), '구성원 의사존중 및 노사 간 자주적 해결이 합리적'(E 자문위원), '독립성과 공공성에 영향'(G자문위원), ‘정작 전문 경영진 공모절차 및 자격요건에 대한 설명은 부족’(H 자문위원)라는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이상인 당시 방통위 부위원장이 자문위원들에게 사추위 구성에 노조가 들어가는 것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는 정황도 나왔다. YTN 사추위는 사장 후보자를 공모를 통해 지원받고 노사와 시청자위원 등이 자격을 검증하는 노사 협약으로 보장된 제도다. 달리 말하면 이는 방통위가 2인 체제 상태에서 자문의원의 의견을 거스른 채 YTN 사추위 폐기에 앞장 섰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지난 2월2일 방통위가 연 심사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한 익명의 한 위원은 “일단 사추위에 노조가 들어가는 거에 대해서는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식이 (논의가) 약간 있었다. 이상인 부위원장이 그런 건 강하게 인정 안한다고 이야기했다”라고 증언했다.
YTN지부는 당초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이 기존 협약에 대한 존중 의사를 밝혔지만 2023년 11월 방통위의 조건부 승인 후 입장을 번복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를 기점으로 방통위의 수차례 자료요청, 보정자료 요구 공문 등을 거쳐 명확한 사추위 폐기를 약속받고서야 방통위가 최다액출자자 변경을 승인했다는 주장이다.
공개된 2023년 11월24일 진행된 YTN 최다액출자자 사업자 의견청취 속기록에 따르면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은 “역시 제일 중요한 것들은 지금 현재 운영하고 있는 YTN 구성원들과의 아주 좋은 협약이라든지 약속을 통해서 하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 2023년 11월29일 조건부 승인 후 방통위는 12월12일 유진그룹 측에 “방송 전문경영진 제도 등 YTN 방송 전문성 확보 계획”이 포함된 자료요청을 했고, 2024년 1월15일 유진그룹이 방통위에 제출한 자료엔 처음으로 사추위 폐기 의사가 담겼다.
이후 방통위는 1월26일 한 차례 더 자료보정 요청서를 보냈고 1월29일 유진그룹은 “사추위를 통한 사장 선임 절차는 경영 환경과 노사 관계의 변화 발생 시 경영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움”, “사장에 대한 선임의 권한은 원칙적으로 이사회에 있으며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들은 노동조합과의 교섭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이사회 중심의 합리적인 체제로의 전환 필요”란 내용을 담은 추가자료를 제출한 이후 방통위 허가를 받았다.
고한석 언론노조 YTN지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과정을 보면 방통위가 YTN 사추위 폐지에 집착을 했다는 게 고스란히 드러난다. 애초 유진그룹은 사추위를 폐지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방통위가 수차례 보정 요구를 했고 유진그룹으로 하여금 폐지를 하도록 유도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사 간 자율적으로 맺은 협약에 왜 방통위가 집착하나. 이런 정황은 방통위가 사추위 폐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걸 보여주고 있고 결국 YTN 민영화의 목적이 YTN 장악이고, 장악을 하려면 결국 사장을 내리꽂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라고 저희는 본다. 민영화 목적이 공기업 자산 효율화 이런 게 아니라 언론장악이란 걸 보여주는 증거란 것”이라고 부연했다.
◇책‧기사 ‘복붙’, 폐지 프로그램 ‘확대’ 약속한 신청서 어떻게 통과됐나
유진그룹이 2023년 11월15일 방통위에 제출한 최다액출자자 변경 신청서 자체가 문제 소지가 많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1.5쪽 분량의 신청서 개요 중 60~70%가 기존 도서와 기사 원문 거의 그대로를 ‘복붙’해 인용했다는 사례가 대표적으로 거론됐다. 실제 이날 공개된 신청서 개요 부분을 보면 <공영방송의 민영화>란 책에서 “유례없는”을 “보기 드문”으로, “추세다”를 “추세이며”처럼 일부 구절만 고치고 대다수를 그대로 쓴 내용이 확인된다.
일부 문장은 발언 당사자가 애초 쓴 맥락과 전혀 다른 식으로 왜곡되기도 했다. 개요엔 “민간 자본이 방송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란 문장이 있는데 이는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의 발언이 담긴 시사IN 기사 중 일부만 따다 쓴 경우로 지목됐다. 애초 기사는 앞선 문장 후 YTN 매각에서 검증 과정이 생략됐다는 지적을 하며 “방통위가 방송사 최초 승인심사에 준하는 심사를 실시해야 한다” “공적 소유를 가진 보도전문채널을 민간 소유로 전환하는 첫 사례인 만큼 ‘엄청난 특혜’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란 구절로 이어지는데 이를 빼고 썼다는 것이다.
이미 폐지된 프로그램에 대해 확대 운영을 약속한 내용이 신청서에 담기기도 했다. 방통위에 제출한 신청서에서 유진그룹 측은 시청자 옴부즈맨 프로그램 ‘시시콜콜’을 확대 운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는 2022년 12월 폐지된 프로그램이었고, 결국 이 내용이 담긴 신청서가 통과된 것이다. 아울러 지난 3월 김백 사장 취임 후 YTN은 시청자위원회 월간 회의 모습을 촬영, 편집해 보여주던 프로그램 ‘시민데스크’도 시청자위원들과 합의 없이 지난 5월 일방적으로 폐지하며 “시청자 평가 프로그램 제작 확대”라 밝힌 신청서 내용이 거짓이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동오 언론노조 YTN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은 “없어진 프로그램, 앞으로 없어진 프로그램을 유진그룹은 홍보하는 데 활용을 했다”면서 “시청자위원 중에선 돌발영상 불방이나 삭제 등에 대해 꾸준히 상식적인 목소리를 내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시민데스크’ 폐지 등과 관련해) 그런 분들에 대해 (사측이)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는 사측이 현재 활동 중인 시청자위원을 교체하기 위해 새로 모집 중이라고 설명하면서 “원래 1년 임기에 1차례 연임이 가능하지만 지난해 선임돼 올해 연임할 수 있는 시청자위원 5인조차 모두 교체할 것으로 전해진다”고도 부연했다. 그러면서 “모든 시청자위원을 교체해서 입맛에 맞는 위원을 선별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며 “그게 아니라면 애초 2차례 연임할 수 있었던 위원 임기를 1차례로 바꾸거나 위원 연임을 안 받겠다고 할 필요가 없다. 유진그룹이 방통위에 약속한 시청자 프로그램 확대, 시청자 권익 보호가 전부 허울 뿐인 공언이라는 걸 드러내고 있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남산타워 매각도 못 막아...“국정조사 통해 진상파악과 책임 물어야”
YTN이 민간기업에 인수된다는 설이 돌 때부터 우려가 나왔던 ‘알짜자산’ 매각에 대해서도 언급이 나왔다. 유진그룹은 최다액출자자 심사, 자문 과정에서 YTN이 소유한 남산타워와 상암동 사옥을 팔지 않겠다고 수차례 공언해왔다. 실제 2023년 11월 김진구 유진이엔티 대표가 방통위에 제출한 확약서를 보면 “YTN의 최대주주가 된 이후 YTN이 현재 보유 중인 서울타워 및 뉴스퀘어(상암 YTN 사옥)를 YTN의 경영진의 의사에 반하여 임의로 매각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적시돼 있다. 이후 2024년 2월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이 방통위 승인 직전 제출한 이행각서엔 “현재 보유 중인 서울타워 및 뉴스퀘어를 임의로 매각 추진하지 않을 것”이란 문구가 포함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YTN 지부는 “YTN 경영진 의사와 일치하면 남산타워와 YTN뉴스퀘어를 팔 수 있다는 여지를 열어둔 꼼수. 절대 매각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명확했다면 애초에 조건부 문구를 넣지 않”았을 것이라 보고 있다. “YTN 사장과 전무 등 경영진은 유진이엔티 이사회에서 임명”하는 만큼 “문구만으로 해석하면 유진은 본인들이 임명한 YTN 사장, 전무 의사에 따라 언제든지” 매각을 할 수 있고, “임의로 매각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란 구절 역시 여러 여지를 열어놨다고 보는 시선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심사 과정 전반을 비판하며 국정조사를 진행하고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국민의 공적자산인 보도전문채널을 인수하는, 유진그룹 입장에선 약 3200억원을 투자하는 중대형 사업인데 신청서를 이런 수준으로 작성했다는 게 뭘 말해줄까. 저는 왜 보도채널을 민영화하고 유진그룹이 왜 인수해야하는지 그 이유조차 스스로 작성하지 못할 정도로 방송 경영에 무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YTN 민영화를 되돌리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언론이 투기자본의 시장매물로 전락하도록 하는 이런 부실한 심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2인 체제의 위법성과 심사절차의 적법성을 다루는 본안 소송에서 법원이 엄격한 심사와 판결을 하도록 촉구해야 하고,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과정의 문제처럼 역시 국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며, 궁극적으로는 졸속 심사 뿐 아니라 특혜 매각 의혹, 나아가 강제 매각 의혹에 대해 반드시 국정조사가 실시돼 방통위가 잘못을 결자해지 하도록 해야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미 폐지된 옴부즈맨 프로그램을 시청자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내세우며 승인을 받은 과정을 단순 실수로 보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폐지된 프로그램조차 검증하지 못한 건 졸속 심사가 아니라 아예 무심사 아니었나란 의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면서 “이런 절차로 이뤄진 YTN 심사는 그 자체로 원천무효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방통위는 최대주주를 변경하며 한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가도 감시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다. 지금 그 의무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시청자위원회는 방송사업자나 친정권 사업자를 위한 들러리가 아니다”라며 YTN의 시청자위원 교체를 우려했다. 그러면서 “유진그룹, YTN 경영진, 방통위에 경고한다. 시청자 이름을 참칭해서 허위로 인용하고 악용하는 행태를 용납하지 않겠다. 민언련을 비롯해 전현직 시청자위원들이 방안을 모색해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국회 국정조사 등을 통해 행태를 낱낱이 밝혀내고 불법행위에 가담하거나 불법을 기획한 자들에 대해 엄정한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흔히 방통위 2인 체제의 불법성이 MBC나 KBS 이사 선임 과정에만 국한된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1년이 넘은 이 체제에서 내려진 결정이 무수히 많다. YTN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도 본질적으론 같은 뿌리를 가진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자산인 공적 소유 구조의 방송사 매각 결정을 하면서 제대로 된 검증이 없었다. 결국 특정 사업자에게 매각할 것을 결론 내려놓고 거꾸로 심의와 심사과정을 졸속으로 불법적으로 끼워 맞춘 사례가 명백하다”고 했다. 이어 “계속 변함없이 싸워서 YTN 졸속 불법 매각의 실체를 드러내고 국민의 자산을 온전히 국민의 것으로 되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