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말, 미국 오픈AI사가 출시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챗봇 챗GPT(ChatGPT)의 등장에 세계가 놀랐다. 마치 대화하듯 질문에 척척 답을 내놓는 이 똘똘한 AI에 사람들이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몰려들었고, 불과 두 달 만에 이용자 1억명을 가뿐히 넘어섰다. 더 놀라운 건 성장 속도였다. 이제 생성형 AI는 간단한 명령어만으로 몇 초 만에 이미지와 영상을 뚝딱 만들어내고, 채팅창이 아닌 ‘목소리’로 실제 사람처럼 ‘보고 듣고 대화’한다.
이런 AI를 우리 삶의 어느 영역까지 받아들이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많은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하게 될 신기술 앞에서 우리는 충분히 준비하고 대응하고 있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언론 보도를 확인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언론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보도하는지는 그 사회의 현재를 반영하며, 그런 언론 보도는 다시 사회 공론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경제산업부 빅테크팀장을 지낸 임지선 한겨레 기자가 석사학위 논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디지털저널리즘학과) 주제로 ‘생성형 인공지능에 관한 언론 보도 연구’를 정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임 기자는 빅테크팀을 이끌던 당시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까. 모든 기업이 AI를 말하는데, 소스(취재자료)를 어디서 누구로부터 얻어야 할까.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데,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보고서가 연이어 나오는데 이 정도의 보도로 될까’라는 절박한 고민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에 그는 생성형 AI 열풍 초기 1년간 한국 언론의 취재방식과 보도 프레임을 분석해 한국 사회의 생성형 AI 논의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살폈다. 그 결과 AI 관련 보도는 양적으로 크게 늘었지만, 국내외 기업이나 정부 기관의 발표자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사 전반의 전문성과 다양성 부족으로 이어졌다. 우리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칠 획기적인 신기술의 부상에도 한국 언론은 ‘발표저널리즘’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보도량 10배 이상 급증…‘발표저널리즘’ 관행은 그대로
분석 대상으로 삼은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2023년 한 해 동안 생성형 AI 관련해 쓴 지면 기사는 총 646건으로 2022년(62건) 대비 10.4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챗GPT 등장 이후 생성형 AI 열풍이 실로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신문 지면에서 생성형 AI 기사가 주요하게 다뤄지는 빈도수도 높아졌다. 2022년만 해도 통상 신문의 앞쪽을 차지하는 종합면에서 AI 기사를 거의 볼 수 없었는데, 2023년엔 기사 10건 중 1건꼴로(9.4%) 종합면에 배치됐다. 임 기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부서에서 올라온 기사 중 중요하고 의미 있는 기사들만 모아 종합면에 배치”하는데 “생성형 인공지능 기사가 종합면에 배치됐다는 것은 해당 이슈의 파급력이 그만큼 크다고 뉴스룸이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깊이 있는 취재가 이뤄진 보도는 많지 않았다. 취재방식을 분석해보니 국내외 기업의 보도자료나 발표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36.7%)을 포함해 국내외 기업·정부 발표에 따른 보도가 전체의 절반(49.1%)을 차지했다. 복수의 발표를 종합한 기사까지 합하면 발표 중심 취재방식은 57.1%에 달했다. 외신 인용 보도(7.1%)까지 더하면 그 의존은 더 높아졌다. 임 기자는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 신드롬의 경우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출시 경쟁이 지속되면서 기업발 보도와 외신 의존 비율도 높았다”고 전했다. 반면 기자가 직접 기획하거나 현장 취재한 기사는 7.3%, 인터뷰 보도는 5.1%에 그쳤다.
보도 프레임도 기업 등 발표자료 영향
이처럼 기업과 정부의 발표에 기댄 취재 행태는 기사의 틀, 즉 프레임에도 영향을 미쳤다. 임 기자는 두 신문의 생성형 AI 기사 프레임을 ①기술 개발 주목 ②투자·주가 상승 주목 ③국가간 패권경쟁 ④국외 규제 동향 주목 ⑤국내 규제 논의 촉구 ⑥위험성 강조 등 6개로 나눴는데, 크게는 ‘산업진흥 프레임’(①,②,③)과 ‘규제 촉구 프레임’(④,⑤,⑥) 두 갈래로 구분됐다.
두 프레임 중 더 많은 쪽은 산업진흥 프레임이었다. 생성형 AI 산업에서의 경쟁을 중계하고 개발·성능·활용에 주목하는 프레임의 기사가 59.4%로 AI 관련 규제를 촉구하거나 위험성을 강조하는 프레임의 기사(33.9%)보다 많았다. 하위 6개 프레임으로 보면 ‘기술 개발 주목 프레임’(45.8%)이 가장 많이 등장하며 주류를 이뤘다.
임 기자는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출시 경쟁 중계에 몰두하는 기사가 늘어나면 대중이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은 좋은 것이고 개발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며 “기업발 발표자료를 근간으로 하는 취재 활동,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에 대한 기업들의 기술력 경쟁을 중계하는 프레임의 보도 활동이 한국 언론의 주류가 된다면 이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이야기할 자리는 좁아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1~2년 사이 유럽을 중심으로 생성형 AI의 위험성과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논의가 이어졌고, 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침해 논란부터 생성형 AI를 활용한 딥페이크 범죄까지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선 인공지능 기본법은 물론 명확한 컨트롤타워조차 없는 상태다.
출입처 중심 관행도 한계로 지적…“뉴스룸 차원 고민 필요”
이런 상황에서 비록 2023년 보도만을 분석 대상으로 했으나 “한국 언론사들이 보다 주도적인 취재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기업 발표나 외신 보도를 따라가는 양태”를 보인다는 점, 그리고 이것이 “직접 현장 취재에 나서거나 문제의식을 갖고 검증이나 실태조사에 착수하기에는 접근할 수 있는 취재원과 과학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걸 방증한다는 지적은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과학기술 보도에 관한 선행 연구들에서 공통되게 지적된 사항이기도 하다. 김춘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도 지난해 <신문과 방송> 8월호에 쓴 글에서 “인공지능이 무엇이고, 어떤 형태의 정치를 전파하며,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부족하다”고 언론 보도의 한계를 지적하며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지 않는다면 취재원의 관점과 해석 틀 내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 바 있다.
임 기자는 “통상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으로 부서를 나눠 일하던 기존의 체계에서 갑자기 떠오른 인공지능 이슈는 출입처를 나누기 어려운 대상이기도 하다”면서도 “향후 ‘인공지능 시대’가 펼쳐질 정도로 전 사회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크게 일어난다면 생성형 인공지능 이슈를 뉴스룸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좀 더 심도 있는 고민과 고찰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