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심의민원 사주’ 정황이 나타난 지 1년 가까이 지난 가운데 류 위원장의 통화기록을 경찰이 어서 확보해야 한다고 언론단체들이 요구했다. 통신사의 통화기록 보존기간은 1년이다. 경찰은 민원사주 의혹 제기에 맞서 류 위원장이 의뢰한 민원인 정보유출 수사에는 방심위 직원과 기자 등 최소 16명을 통신조회했다.
90여 개 언론·시민단체들로 이뤄진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30일 서울시 양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발 내용이 사실인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류희림씨의 통화기록을 확보하고, 통화 대상자들과의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통신조회가 필수”라며 “통화기록 조회가 불가능해지는 1년이 경과하기를 기다려온 것이라면 적극적인 증거인멸의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새언론포럼, 전국언론노조, 문화연대 등 언론단체들은 1월 류 위원장을 고발했다. 류 위원장의 가족과 지인 등 민원을 제기할 뜻이 없던 이들을 시켜 ‘가짜 민원’을 넣게 해 방심위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뉴스타파가 방송사가 아니어서 심의가 어려운데도 법령을 무리하게 적용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고발 후 7개월 동안 피고발인 조사조차 하지 않고 무엇을 했는지 양천경찰서가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준희 방심위 노조위원장은 “류희림씨가 작년 이맘때 민원을 넣은 가족들과 통화했는지 확인하면 그만”이라며 “이 간단한 걸 안 했는지, 못 했는지 외압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방심위에는 지난해 9월4일부터 18일까지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을 인용보호한 KBS와 MBC 등 방송을 심의해 달라는 오탈자까지 찍어낸 듯 같은 민원이 270여건 접수됐다. 이 가운데 가족과 과거 직장 동료, 함께 일한 시민단체 관계자 등 류 위원장과 관련된 사람들이 제기한 민원이 120여건이었다. 이런 내용은 수개월이 지나 지난해 12월 뉴스타파와 MBC 보도로 알려졌다.
방심위 노조는 류 위원장이 의뢰한 수사는 대조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돼 방심위 직원 중 최소 12명이 경찰의 통신조회 사후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의혹을 처음 보도한 기자 2명과 류 위원장의 비위 신고를 맡은 변호사도 통신조회 대상이 됐다. 방심위 직원의 가족 등 이번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 사후통지를 받았는데 알림을 받은 사람의 수는 더 확인될 수도 있다.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은 “도둑이 들었다고 소리쳤더니 소리친 사람을 고성방가한다며 거꾸로 수사하는 경찰은 어느 나라 경찰이냐”며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썩은 권력의 몽둥이 노릇을 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류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의혹이 제기된 지 이틀 만에 민원인 정보를 언론에 유출한 직원을 찾아 처벌해 달라며 수사를 의뢰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이후 보름 만에 민원인 정보 유출을 수사하려 방심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