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통행과 취재를 경찰이 부당하게 막아 세웠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제기된 가운데 국방부가 민원실은 군사보호구역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애초 경찰은 민원실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촬영이 불가능하다며 취재를 막았다. 국방부 부지 안에 있는 대통령실 때문에 주변에서 과잉경호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자협회보가 사실확인을 요청한 결과 국방부는 서울시 용산구 국방부 종합민원실은 “군사보호구역과 밀접해 있는 일반시설구역”이라고 8월27일 최종 답변했다. 용산 국방부 청사와 일대는 군사보호구역이지만 민원실은 여기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사실관계를 질의한 뒤 내부검토를 거쳐 닷새 만에 답변을 내놓았다.
앞서 8월5일 서울경찰청 202경비단과 용산경찰서 경비과는 국방부 민원실에서 250m 떨어진 곳에 바리케이드를 쳐 2시간 가까이 기자들을 막아 세웠다. 민원실이 군사기지법에 따라 촬영이나 묘사 등을 통한 시설 노출이 금지된 군사보호구역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같은 달 22일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와 언론개혁시민연대, 전국언론노조는 “중앙행정부처의 민원실이 출입과 행동에 제한이 있는 군사보호시설이라는 설명은 어불성설”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국방부 민원실에서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서명서 제출과 취재, 민원실 앞 인도에서 기자회견도 이뤄져 왔다. 당시 현장을 지휘한 이재성 202경비단장은 “이전에도 군사기지법상 촬영을 허가하진 않았고 시설이 드러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제한적으로 촬영이 이뤄졌던 것”이라며 “이번엔 군인권센터가 취재진 수십 명과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해 막은 것”이라고 말했다.
군인권센터와 언론단체들은 군사기지법은 겉으로 내세운 이유일 뿐 경찰이 과도한 대통령 경호를 벌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202경비단은 대통령 경호구역에서 활동하는 경찰부대다. 같은 서울경찰청 소속 101경비단은 대통령실이 있는 국방부 영내를, 202경비단은 바깥을 맡는다.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대통령경호처장은 경호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 구체적인 범위와 도면은 공개되지 않지만 경호구역 안에서는 대통령경호처나 경찰, 군이 검문과 검색, 출입 통제 등을 할 수 있다.
2022년 대선 직후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해 가면서 경호 부담은 커진 상태다. 국방부 민원실은 안쪽 전자식 보안 출입문을 지나 대통령실이 있는 국방부 부지로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다. 올해 1월에는 대학생진보연합 20명이 ‘쌍특검’을 요구하며 대통령실과 가까운 국방부 서문으로 진입을 시도하다 체포된 뒤 경비가 더 강화되기도 했다.
현장에서 통행을 제지당한 한 기자는 “질서유지를 위해서였다면 경찰이 중간에서 조정을 해줘야 하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만 했다”며 “민원을 제출하는 현장일 뿐인데 왜 이렇게 심하게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나서기 전 국방부 민원실은 서명서 제출 장면을 기자들이 촬영해도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기자는 “택시를 타고 국방부 민원실 앞에서 내렸는데 누구냐고 물어 기자라고 했더니 사복 차림의 5~6명이 일제히 둘러섰다”며 “대통령실 인근 기자회견이나 집회에 가면 통행을 막는 등 지난해보다 올해 더 과잉대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과도한 경호라는 지적은 국회에서도 나왔다. 8월27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명서를 갖고 있던 사람들이 위해 상황을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느냐”는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안경호 대통령경호처 기획관리실장은 “기자회견이 집단행동이나 집단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치안질서와 경호 부분까지 고려해서 경호·경비 책임자가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임태훈 소장과 김형남 사무국장 2명만 있었다.
안 실장은 또 국방부 민원실은 대통령 경호구역 안에 있다며 경호구역에서 취재는 "국방부나 대통령실에 미리 협조한 상태에서 허용한다"고 말했다. 군사보호구역과 달리 경호구역에서는 촬영과 취재가 법에서 금지돼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경호법에 따라 경호구역에서 통행을 막는 등 강제적인 조치는 “목적상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할 수 있다. 일률적이지 않고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다.
2021년 헌법재판소는 대통령경호법상 ‘불가피’한 범위를 비교적 넓게 해석했다. “경호 과정에는 돌발적으로 생길 수 있는 어떤 경미한 변수도 직간접적인 위해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과잉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경호의 특수성이 고려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9년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를 타고 광화문 앞을 지날 때만 시위를 제지한 건 과도한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는 결정이었다.
이번과 비슷한 상황에서 경찰이 과도한 경호를 했다고 판결한 사례도 있다. 2015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기자회견 뒤 청와대 민원실에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10만명의 서명서를 제출하려는 유족을 4시간 동안 막은 종로경찰서장과 경비과장에 대해 국가와 함께 100만원씩 12명에게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세월호 유족이 소송을 제기한 사건 당시 경호구역에서 국가행사가 있었거나 대통령이 이동하는 등 사정은 없었다. 이 판결은 2021년 대법원에 가서야 위법한 경호인 건 맞지만 경찰이 불법성을 충분히 알면서도 계속한 중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위자료 배상이 면책됐다.
군인권센터와 언론단체들은 이번 일을 국경없는기자회와 유엔 표현의자유특별보고관 등에게도 알리겠다며 준비 중이다. 이들은 인권위 조사 결과를 보고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경찰을 고발할지도 검토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