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압수수색, 야권위원 해촉… '민원사주' 의혹 1년

부인·반론 않던 류 위원장, 청문회 예고에 "이해관계 결부 없다" 첫 입장
'지인 이름 민원넣은 직원 파면 정당' 2019년 판례… 사유는 '공정성 훼손'

시작은 지난해 9월4일이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회의에 나와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를 두고 “중대범죄”라며 엄정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사흘 전 검찰은 신학림 전 뉴스타파 전문위원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을 공식화했다.


엄정대응 발언은 오전이었다. 이에 부응하듯 당장 오후부터 녹취록을 인용한 방송사들을 징계하라는 민원이 방심위에 밀려들었다. 심의 제재는 방심위가 의결하고 방통위가 집행하는 이원적 구조다. 방심위는 바로 다음 날 민원을 근거로 심의 절차를 시작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연임 이후 서울시 양천구 방심위 앞 인도에 류 위원장을 위원장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박성동 기자

◇오탈자도 베낀 40명… 해촉 사유될 수도
오탈자까지 같은 민원은 모두 40명이 냈다. 내부고발자는 이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단서로 인터넷을 뒤져 쌍둥이 동생 류희목씨 등 류 위원장의 가족과 친척, 전 직장 동료 등 21명을 비교적 쉽게 확인했다.


민원을 베낀 나머지 절반의 류 위원장과 관련은 알아내지 못했다. 방송 사업자를 상대하는 기관인 방심위는 일반 시민에는 기능과 역할이 잘 알려지지 않아 이번 대규모 민원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었다.


이해충돌 회피가 필요하다며 류 위원장에게 보고자료가 만들어졌고, 내부전산망에는 가족의 민원 사실을 비판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공직자가 이해충돌 상황을 알게 됐으면서 이를 알리지 않으면 2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방심위는 명목상 민간기관이지만 위원장은 장관급 공직자다. 민원을 사주했다는 이해충돌 의혹이 사실이라면 처벌 자체는 무겁지 않아도 전례에 비춰보면 류 위원장의 해촉 사유는 될 수 있다.

◇민원사주 뿌리 ‘수사무마’ 진실 아직도
방심위는 11월 MBC 등 4개 방송사를 합해 1억 4000만원의 과징금을 결정했다. 2008년 방심위 출범 뒤 보도부문에 서 나온 가장 수위 높은 징계다. 뉴스타파는 TV 방송사가 아닌 인터넷 언론이어서 법령상 한계로 제재하지 못했다.


결국 이 사건의 출발점에는 이 전 방통위원장이 ‘가짜뉴스’라며 격분한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즉 윤석열 대통령의 검사 시절 부산저축은행 수사무마 의혹이 있다. 이 의혹 자체가 허위인지, 그래서 방송사들이 실제 대거 오보를 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방송사들이 제재를 받은 건 대장동 대출브로커를 ‘봐줬다’는 주어를 윤석열 전 검사로 부풀려 편집한 녹취록을 검증 없이 따라 썼다는 이유에서였다. 수사무마 의혹의 실체는 뉴스타파 기자들의 재판에서 지금도 검찰이 진위 공방을 벌이고 있다.

민원사주 의혹이 제기된 뒤 올해 초부터 매일 전국언론노조 방심위지부 노조원들이 방심위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박성동 기자

◇의혹 제기에는 압색·해촉으로
방심위 직원은 지난해 12월23일 류희림 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고 이를 MBC·뉴스타파가 보도했다. 류 위원장은 언론에 정보를 흘린 직원을 찾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해 달라고 수사를 의뢰했다. 기자들은 국회를 통해 제보받았을 뿐 신고자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였다.


서울경찰청은 단 보름여 만인 올해 1월 방심위를 압수수색했다. 부패·공익신고를 한 내부고발자는 불이익을 받지 않게 법의 보호를 받지만 사법절차인 수사는 예외다. 신고 과정에서의 위법도 면책되지만 일단 재판에까지 넘겨진 뒤 따질 수 있다.


류 위원장은 신고자 색출을 위한 감사자료를 압수수색 전 경찰에 줬다는 의심을 받는다. 이런 부당한 감사를 벌였다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 혐의로 류 위원장을 고발했지만 서울 양천경찰서는 여태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시기 류 위원장은 문제를 제기하는 야권 위원들을 해촉하라고 윤 대통령에게 건의해 재가받기도 했다. 김유진 위원은 진상규명을 반복적으로 요구해 회의를 방해한다며, 옥시찬 위원은 김 위원을 제지하는 류 위원장에게 한 차례 욕설했다며 해촉됐다.


김 위원은 “의혹 제기가 오히려 공익적”이라는 법원 결정으로 한 달 만에 복귀했지만 옥 위원은 그렇지 못했다. 야권 위원들은 정족수 3명이 되지 않아 더는 진상규명 안건을 제의하지 못했다.

◇“이해충돌 아냐” 1년 만에 첫 반박
권익위는 7월 신고 건을 알아서 처리하라며 류 위원장에게 맡겼다. 류 위원장은 권익위 결정에 곧이어 연임했다. 9월 경찰은 두 번째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번엔 정보 유출 피의자를 특정해 내 직원들의 집까지 찾아왔다.


더 기대할 곳이 없어지자 방심위 직원인 탁동삼 연구위원은 내부고발자임을 스스로 밝혔다. 그는 자신이 신원을 드러낸 만큼 주변 직원들은 그만 괴롭히고 류 위원장도 똑같이 수사해 달라고 호소했다. 언론단체들은 민원사주가 방심위의 공정한 업무를 방해한 행위라며 1월 류 위원장을 고발한 상태다. 이 또한 눈에 띄는 수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류 위원장은 지금껏 민원인 정보유출이 본질이라며 관심을 돌리려 했을 뿐 한 번도 의혹을 부인하거나 반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가 청문회까지 예고하자 9월25일 민원사주가 있었더라도 문제없다는 취지로 처음 입장을 냈다. 위원장은 심의 제재를 할 뿐 그 민원을 제기한 사람이 가족이나 누가 됐든 “어떤 경제적 이익이나 사적 이해관계에 결부될 소지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심위에는 지인 3명의 이름을 빌려 민원 17건을 넣은 직원을 파면해고한 처분이 정당하다는 2019년 판례도 있다. 이 직원이 사적 이익을 취한 건 아니지만 방심위 업무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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