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 실현을 위한 심의로 경제적 이익이나 사적 이해관계에 결부될 소지 자체가 없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단순한 이해충돌 사안이 아니라 방심위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방해했다고 봐야 한다.”
-호루라기재단·참여연대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민원사주’ 의혹 제기 1년여 만에 사실상 처음으로 이해충돌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을 내놓았지만 문제 제기는 업무방해 혐의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류 위원장은 지난 대선을 앞둔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인용 보도에 대한 과징금 1억 4000만원 제재는 공익에 부합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인데 이와는 별개로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
류 위원장은 국회 청문회 출석을 거부하며 9월25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방심위원이 심의에 참여해 얻을 이해관계는 없다며 국민 누구나 심의민원을 신청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류 위원장의 가족이나 친척, 지인 등이 민원을 넣어 겉으로는 이해충돌로 보여도 사익 추구가 없었으니 심의 결과가 공익적인 이상 비난받을 점도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
문제는 민원사주 의혹이 사실이라면 방심위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법원은 업무방해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상대를 속여 자기 뜻대로 업무를 왜곡하면 업무방해가 되는데 아예 일을 못 하게 막을 필요까지는 없고 그럴 위험이 있었거나 업무의 적정성, 공정성을 저해하는 정도만 해도 넉넉히 혐의가 인정된다.
대법원은 논문 내용에는 전혀 허위가 없더라도 집필 과정에서 초고를 누군가 대신 써준 사실을 숨기면 학위를 준 대학원에 대한 업무방해가 되고, 배달업자가 배달 서류 안에 특정 종교를 비방하는 전단지를 끼워 넣으면 배달을 맡긴 업체의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업무방해죄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호루라기재단과 참여연대는 2일 서울경찰청에 제출한 고발장에서 “사정을 모르는 다른 위원들로 하여금 (류 위원장 1인의 의사인데도) 마치 ‘다수’의 민원이 제기된 것처럼 착각 또는 오인하게 만들어 신속심의를 결정하게 했다”며 방심위 업무가 방해받았다고 주장했다. 방심위에는 안건이 적체돼 있어 처리까지 1년 넘게 걸리지만 사안이 중대하다며 신속심의가 결정되면 순서를 제치고 먼저 심의한다.
류 위원장 주장대로 공익적인 심의로 그 결과가 공정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업무방해가 될 수 있다. 업무방해죄는 과정이 적절했는지도 평가하기 때문이다. 지인 4명의 명의를 빌려 정치적으로 민감한 보도 심의 등 민원 22건을 넣었다가 적발돼 2018년 파면된 방심위 직원도 자신이 제기한 민원은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에 적합했다고 항변했다. 결과적으로 방심위에 피해를 준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 직원이 해친 방심위의 공정성은 심의 결과보다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정된 안건이 민원에 터잡았는지 사무처로부터 (모니터링으로) 접수됐는지에 따라 심의 과정에서 위원들 간 의견 대립이 격화됐고, 외부에서도 자체 안건 상정에 비판이 컸다”며 이 직원의 잘못은 “일반 국민의 민원처럼 꾸며냈다는 것”이라고 명확히 해 해고는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심의 절차 전반에서 공정성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직원이 오히려 이를 해쳤다며 “징계를 가볍게 한다면 앞으로 같은 비위가 반복될 염려가 매우 크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직원을 해고할 당시 위원장을 맡았던 강상현 연세대 명예교수는 “직원 한 명의 비위인데도 파면 조치를 결정했었다”며 “바로 이런 일을 막아야 할 류 위원장이 스스로 민원사주를 했다면 이전과 비교할 바가 아니라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