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으로 노벨상 발표를 지켜보면서도 한강이라는 이름이 불리는 순간, 정말 그 한강인가? 한강이 맞나? 한참을 멍한 기분이었습니다.”(전혼잎 한국일보 문학 담당 기자)
10일 저녁, 신문사 문화부 문학 담당 기자들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호명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 이름이, 한글로 된, 한국 작가의 것일 줄 누가 알았을까. ‘언젠가는’이라고 막연히 기대했던 그 순간이 어제저녁, 자정을 고작 4시간 앞두고 찾아왔다. 지면 제작 마감이 코앞이던 신문사 편집국엔 비상이 걸렸다.
“소식 듣고 처음엔 멘붕이었죠. 큰일 났다 싶었어요.”(이한수 조선일보 문화부장)
오후 8시, 갑작스러운 낭보에 시민과 독자들은 “와!” 탄성을 질렀겠지만, ‘신문쟁이’들에겐 말 그대로 ‘큰일’이 난 셈이었다. 올해 한국 작가가 받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수상자가 결정되면 문화면 주요기사로 처리한다는 정도만 대체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명된 수상자는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인 한강 작가였다. 11일자 주요 일간신문들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1면 머리기사뿐 아니라 2~4개 면을 통으로 할애해 다뤘다.
이한수 부장은 “오후 8시에 (지면 제작을) 새로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1면과 사설 외 3개 면을 관련 소식으로 채웠다. 이광호 문학평론가의 기고까지 받아서 넣었다. 오후 8시부터 최종판을 마감한 11시까지, 3시간 만에 모든 게 이뤄졌다. 이 부장은 “훌륭하고 민첩한 기자들 덕분에 가능했다”면서 “고생했지만,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신문 편집국도 마찬가지로 바쁘게 돌아갔다. 문학 담당 기자가 수상 소식과 작가의 작품 세계 등을 기사로 쓰면, 사회부는 서점 등에 나가서 시민들 반응을 취재하고, 전국부 기자는 작가의 고향인 광주에서 시민들 반응을 듣고, 국제부는 외신 반응을 종합하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대형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에 유기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이 암묵적으로, 경험적으로 갖춰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기사를 써야 했지만, 한국 작가이고 특히나 한강 작가여서 기사를 쓰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백승찬 경향신문 선임기자는 “소식 자체는 급작스러웠지만, 일반적으로 국내에 번역이 안 된 해외 작가가 받는다거나 시나 희곡 등 마이너한 장르면 기사를 쓰기가 쉽지 않은데, 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는 문학 기자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어 외국 작가에 비해 어렵진 않았다”고 전했다.
수상 소식을 타전한 뒤에도 담당 기자들은 쉴 틈이 없다. 한강 작가는 물론 한강 작가의 아버지인 한승원 원로작가 인터뷰 등 취재 경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1일자 신문 1면에 ‘광주의 딸 한강’의 수상 소식을 전한 광주전남 지역 신문 무등일보는 이날 새벽같이 한승원 작가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최소원 문화부 기자는 이날 오전 5시 광주를 출발, 전남 장흥에 있는 한승원 작가 작업실을 찾아 아침 산책을 같이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 기자는 “저희가 오전 6시40분인가부터 30~40분간 인터뷰를 했는데 끝날 때쯤 중앙지 기자들이 오더라”고 했다. 그는 “수상자 발표하는 걸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원래 팬이었다”고도 했다.
후속 취재와 기사가 많아지면서 문학 담당 기자들은 한동안 바쁠 예정이다. 전혼잎 한국일보 기자는 “외국 작가는 보통 당일에 속보/스트레이트/해설을 쓰고 끝나는데 한강 작가의 경우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어서 끝없이 기사를 써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 기자는 자신이 담당하는 문학 뉴스레터(‘무낙’) 다음 주 월요일자(14일) 역시 한강 특집으로 바꿔서 다룰 예정이다.
이렇게 바빠지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닐 터. 백승찬 기자는 “일이 많아져 바쁘고 힘들면서도 이게 비극적인 일이 아니라 기쁜 소식이고 한강 작가에 대한 경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분 좋은 바쁜 나날들이 이어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