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국 위기에 몰린 TBS 사태가 1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물론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6월 이른바 ‘폐지 조례안’ 시행에 이어 9월11일 서울시 출연기관 지정에서 해제되며 위기에 몰린 TBS 문제를 두고 여당 의원들은 편파방송에 시민 혈세를 지원할 수 없으며, 예산 지원 중단은 독립 경영 취지에도 맞다고 서울시와 시의회 결정을 옹호했다. 반면 야당 의원들은 TBS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있다며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오세훈 시장은 앞서 공식 석상 등에서 여러 차례 “TBS 지원 폐지나 폐국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TBS 직원들을 어떻게든 돕고 싶은데 시의회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행안위 국감에서도 오 시장은 “일련의 일들이 시의회 의견이지 시장 뜻이 아니라는 거냐”는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의에 “제 의견과는 많이 달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 시장의 과거 언론 인터뷰가 이를 반박하는 증거로 불려 나왔다. 행안위와 과방위 국감에 똑같이 등장한 이 인터뷰는 박원순 전 시장 사후 치러진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진행된 것이었다. 당시 오 시장은 편파방송을 이유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출연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해 2월21일 나온 신동아 인터뷰에서 오 시장은 “시장이 되면 바로잡을 건 잡아야 한다. TBS에 예산 지원을 안 하는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언론답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TBS에 예산 지원을 안 하는 형태”는 오 시장 입에서 먼저 나왔다는 게 민주당 의원들 지적이다. 이정헌 민주당 의원은 “모든 것은 오세훈 시장 입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오 시장은 취임한 그해 2022년도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TBS 출연금을 전년 대비 약 33%에 달하는 123억원을 삭감했다. 당시 민주당이 다수였던 서울시의회가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일부 증액하며 결과적으로 55억원만 삭감됐지만, 2023년도에 다시 88억원이 줄었다. 송원섭 전 TBS 라디오본부장은 15일 참고인으로 출석한 과방위 국감에서 “88억원은 딱 저희 제작비 수준이었다. 인건비와 기본운영비를 제외한 제작비를 모두 삭감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액 출연료’ 논란이 많았던 김어준과 <신장식의 신장개업> 진행자였던 신장식 변호사(현 조국혁신당 의원)는 2022년 12월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TBS를 떠났다. 그런데도 TBS는 2023년 3월부터 제작비가 사실상 바닥났다. 외부 진행자는 대부분 하차시키고 내부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고, PD나 작가 없이 1인 체제로 방송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TBS지부장 “가장 큰 책임, 오 시장과 국민의힘 시의원”
그러나 그마저도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9월부터 임금을 한 푼도 줄 수 없게 되면서 TBS 직원 상당수가 무급휴직에 들어갔고, “FM(95.1㎒)의 경우 현시점 하루 단 세 개 프로그램만 방송 중이며, 나머지 시간은 음악만 트는 BGM 방송”으로 송출하고 있다. 김별희 TBS PD는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보니 1년 전만 해도 실 제작 PD가 21명이었는데, 지금은 8명이 근무 중이며 11월이 되면 몇 명이 남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날 행안위와 과방위에 각각 참고인으로 출석한 송지연 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장은 이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는 질문에 “오세훈 서울시장과 76명의 국민의힘 시의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TBS가 편파방송을 했기 때문에 시민 혈세를 여기 투여할 수 없다고, 시민의 명령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저는 시민들이 정치권에 그런 방송사를 없앨 권한을 줬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정치인으로 함량 미달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지부장은 오 시장을 향해서도 “TBS는 누구의 것도 아닌 서울시민의 것이다. 시민의 재산을 없앨 권리가 시장에 있는지 묻고 싶다”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나. 어떻게 하면 TBS를 살릴 수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장전결사항이란 방통위 설명에 희망고문만…”
9월11일 서울시 출연기관 지정이 해제된 TBS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신청한 정관변경이 반려되면서 출연·기부 등을 받을 수 있는 민간 재단으로의 전환이 어려워졌다. 이날 행안위 국감에선 서울시가 방통위가 정관변경을 승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연기관 지정 해제를 서두른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성회 의원은 “방통위 승인을 받아야 정관 개정의 효력이 발생하는데 그냥 (이사회에서) 정관 개정만 해놓고 (방통위에) 요청했다는 것”이라며 “시장이 모르고 했으면 무능하고, 알고 했으면 사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은 “출연기관 지정해제 요청은 법에 의한 것”이라며 “그때까지는 방통위에서 그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방통위의 정관변경 승인 반려 결정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선 과방위 국감에서도 이야기가 오갔다. 김현 민주당 의원은 “(정관변경은) 과장 전결 사항이라는 내용이 6월경 TBS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TBS가 방통위에 구두로 문의한 결과 과장 전결 사항이란 회신을 받고 빠르게 처리될 거란 믿음에 8월27일 이사회에서 정관을 개정한 다음 날 방통위에 정관변경을 신청했으나 한 달 뒤 돌아온 답변은 “위원회 심의·의결사항”이란 설명과 반려 결정이었다는 거다. 김현 의원은 “방통위 과장 전결 사항이라 200억원 투자를 받을 수 있다고 희망고문을 당한 게 석 달 동안이었다”고 말했다.
부영이 200억 기부? “정해진 게 없는데 왜 이런 소문이…”
이 ‘200억원 투자설’의 주인공은 부영그룹으로 알려졌다. 오세훈 시장이 행안위 국감에서 “빨리 지정해제가 돼야 당시 원매자에 협상이 진행될 수 있다는 판단이 전제돼 있었다”고 말했는데, 이 ‘원매자’ 역시 부영을 가리킨다는 해석이 있다. 과방위 이훈기 민주당 의원은 “오늘(15일) 부영이 대주주인 신문사 한 사람이 ‘우리가 우선협상 대상자에 선정됐다’며 전화를 해왔다”면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오 시장에 책임을 물었다.
한편 TBS는 10월8일 홈페이지에 기부 내역을 공개하도록 하는 정관변경을 방통위에 신청한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공익법인 지정을 받기 위한 사전 조치다. 10일 국세청에도 공익법인 지정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TBS가 공익법인에 지정되고 소문대로 특정 기업이 200억원을 기부한다면 사실상 대주주가 되는 셈이어서 지배구조 변경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도 나와 방통위가 정관변경을 승인할지는 미지수다. 이훈기 의원은 “사실상 꼼수 민영화”이며 “가장 악질적 민영화”라고 반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