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을 다루는 기자의 지속가능성은?

[이슈 인사이드 | 환경] 박상욱 JTBC 정책부 기자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해 11월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및 제4차 계획기간 배출권 할당계획' 등과 관련 정책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CO2 배출량을 제한하는 국제협약을 체결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어 우리나라도 적극 대처해야 한다.” (1990년 10월)


“에너지와 환경의 문제를 별개로 다룰 수 없다. 에너지 관련 환경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1990년 10월)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위해 국가적 대책이 시급하다.” (1992년 2월)


“미국, 일본, EU 등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시장인 선진국 그룹이 화석연료에 탄소세를 부과할 경우, 자동차, 석유·섬유, 전자제품 등 15개 주력상품의 수출은 연간 16억3000만 달러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1994년 7월)


“정부는 기후변화협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재정경제부 등 10개 부처로 구성된 범정부 대책기구를 구성키로 했다. 대책기구는 온실가스 배출 저감 계획을 수립해 본격적으로 청정에너지 보급 확대,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로의 전환 등의 추진에 나선다.” (1998년 4월)


“우리나라가 30개 OECD 회원국 가운데 지난 80년 이후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 17개국은 오히려 배출량이 줄었다. 이는 개발 위주의 산업구조 하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고효율 에너지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한 탓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01년 5월)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에 한참 앞서 한국 언론은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과 무대응의 비용을 지적했다. 쟁점의 제기와 구체화, 공중의제의 정책화로 이어지는 모든 단계에서 관찰과 분석, 그리고 환류라는 언론의 본령을 따른 일이다. 문제는, 정작 보도 자체에 대한 환류엔 우리가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1994년, 유럽의 탄소세 영향을 경고했음에도 30년 후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다루며 ‘날벼락’이란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2001년, “주요 OECD 회원국이 CO₂감소세로 돌아섰다”며 시급한 감축을 강조했음에도 20년 후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강화에 “급격하다”는 비판적인 보도도 다수 쏟아졌다.


이러한 환류의 부족은 익숙하다. 해마다 국정감사 전후로 단독 보도가 쏟아진다. 매서운 관점으로 정책의 빈틈을 꿰뚫고, 대안도 제시한다. 그러나 국감이 끝나면 비판했던 정책이 개선됐는지엔 무관심하다. 매일 새로운 문제가, 상상을 초월하는 이슈가 쏟아지는 우리의 다이내믹한 삶 속에선 어쩔 수 없다고 넋두리할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지속성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부서나 팀, 혹은 출입처가 바뀌며 1~2년 전 다뤘던 주제는 더 이상 ‘내 일’이 아닌 것이 되기 십상이기에.

박상욱 JTBC 정책부 기자.

30년 날씨의 평균인 기후를 다루는 데엔 지속성과 일관성 있는 관심이 특히 더 필요하다. 그런데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기자 스스로의 지속가능성은 어떠한가. 잦은 인사이동의 불가피함만 탓하기엔 기후변화는 경제, 문화, 산업, 무역, 외교, 안보 등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의 지속가능함 없이는 올해도 기후변화는 3월 산불, 6월 장마, 7~8월 폭염 스케치 말미에 “기후변화 때문”, “기후변화로 더 빈번해질 것” 같은 한 두 문장으로 소비되고 지나갈 것이다. 우리가 30년 전 기사는 잊고 ‘화들짝’, ‘충격’ 등의 표현과 함께 남 탓에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30년 후의 후배 세대 또한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 모른다.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는 아직 ‘최악은 면할 기회’가 있지만, 그들은 그럴 기회조차 뺏긴 상태라는 것. 그저 ‘나는 지속가능한가?’ 묻기엔 지금의 순간은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어떻게 지속가능할까?’ 함께 하는 고민이 절실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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