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인터넷의 발전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늘어났지만, 허위정보가 함께 확산하며 사회가 혼란해지는 ‘풍요의 역설’이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계 기자들은 이로 인해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며, 언론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권력에 대한 감시와 함께 시민사회·동료 기자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30일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2026 세계기자대회’ 첫 번째 컨퍼런스 주제는 ‘민주주의와 저널리즘: 위기의 시대, 언론의 역할’이었다. 이주희 코리아헤럴드 편집국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컨퍼런스에서 기자들은 현재 민주주의가 처한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언론의 다양한 역할을 주제로 토론했다.
기자들은 언론이 ‘저항과 연대’를 통해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프랑스 쿠리에 인터내셔널의 다니엘 바스타르 아시아·태평양 담당 디렉터는 “저널리즘은 권력에 저항하고, 시민 그리고 다른 언론과 연대하며, 서로 만나지 못했을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다”면서 “이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저널리즘의 핵심 요소”라고 했다.
바스타르 기자는 2005년부터 약 7년간 베이징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중국의 민주주의 정신을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염된 하천을 기록하던 환경 운동가들과 토지 수용 피해자를 변호하던 ‘맨발의 변호사’들을 취재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누구도 자신을 민주주의자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권력을 감시하고 수평적인 연대를 만들어내는 민주주의의 본질 그 자체였다”면서 “(중국의 동료 기자들과 함께) 제가 했던 일은 그들의 목소리를 더 크게, 더 멀리 전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날 컨퍼런스에선 2024년 12·3 불법계엄 당시 한국 언론이 시민과의 연대를 통해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사례도 소개됐다. 김은지 시사IN 정치팀장은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기자들은 국회에서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고 전했다. 또한 “언론 뉴스를 보고 많은 시민들이 모였고, 언론은 국회에 들어가는 국회의원들의 모습, 이를 돕는 시민의 모습을 기록했다. 언론이 시민과 함께 계엄군에 저항해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김 기자는 “이날 언론은 단순한 상황 중계나 기계적인 중립에 그치지 않고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보도를 이어갔다”고 전했다. 그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순간 이것이 위헌적이고, 위법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저널리즘이다. 때로는 정파적이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지만, 기자라면 다름과 틀림을 구분해 보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언론 간의 국제적인 협력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해외 뉴스가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세계 각국의 국내 사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 데일리뉴스의 팟트라폰 빠이분신 국제부장은 “잘못된 정보와 정치적 압력, 디지털 조작과 같은 언론의 과제들은 이미 국경을 넘어서는 문제”라면서 “기자들은 검증 방법을 공유하는 등 국경을 넘는 협력을 강화해 저널리즘 전체의 신뢰를 지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빠이분신 기자는 태국 데일리뉴스가 팩트 체크를 위해 협력하고 있는 사례도 소개했다. 보도 전 뉴스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데일리뉴스는 AFP, 로이터통신 등 방콕에 지부가 위치한 뉴스 기관과 소통한다. 뉴스룸 간 소통을 통해 ‘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어도 괜찮은지’를 판단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술이 변화하고 플랫폼이 진화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진실에 대한 대중의 필요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기자들은 역사의 첫 번째 초안을 써내려가는 사람들로서, 용기와 정직성 그리고 진실에 대한 흔들림없는 헌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가 나날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언론을 만들기 위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펠릭스 릴 독일편집네트워크 특파원은 젊은 세대는 뉴스를 소셜미디어 콘텐츠로 소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을 언급하며 “인플루언서를 뉴스룸에 영입하기 위한 시도 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정치 유튜버 ‘레조(Rezo)’가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에서 음악가로 활동하던 그는 2019년 유럽 의회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당의 정치적인 입장을 분석한 콘텐츠를 올렸고, 이 영상을 통해 수많은 청년이 투표에 참여하며 ‘레조 효과’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이후 레조는 독일의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에서 온라인 칼럼을 연재했다. 릴 특파원은 “그를 칼럼니스트로 영입한 결과 젊은 독자를 영입할 수 있었다”면서 “뉴스룸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방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