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에 가려진 '자치'의 실종

[언론 다시보기] 박누리 농촌 기록 활동가(전 월간옥이네 편집장)

박누리 농촌 기록 활동가.

충청북도가 ‘특별’해지려 한다. 3월 발의된 ‘충청북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가균형발전 혁신성장 거점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 이야기다. 도는 타 시도와의 경쟁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임을 강조한다. 현 정부의 ‘5극 3특’ 재편 구도 속에 충북만 공백 상태로 남을 수 없다는 조급함이 법안의 동력이다. ‘광역시를 포함하지 못한 충북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으며 국가 균형발전 예산 배분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는, 이른바 ‘역차별론’도 법안 추진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법안 발의 이후 도내 시·군을 순회하며 연 공청회에서 터져 나온 주민들의 목소리는, 이 거대한 담론이 현장의 삶과는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3월19일 옥천에서 열린 충북 남부권 공청회 역시 그 현장이었다.


특별자치도 논의의 핵심은 언제나 권한 이양, 규제 완화, 재정 확보라는 세 기둥으로 요약된다. 충북도가 내세우는 청사진 역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농업진흥지역 해제, 수질 규제 완화 등 ‘개발의 빗장을 푸는 것’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물어야 한다. 규제가 풀리고 SOC 사업이 예타 없이 통과되면, 옥천과 영동·보은의 지역 문제가 해결되는가? 이미 우리 사회는 수많은 특별법과 특례가 국토를 조각내며 누더기로 만드는 과정을 목격해 왔다. ‘특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보편적인 국토 관리의 원칙은 힘을 잃고 각자도생의 개발 경쟁이 시작된다. 환경과 생태를 담보로 한 규제 완화가 가져올 장기적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의 몫이지만, 그 혜택인 ‘대규모 예산 지원’과 ‘민자 유치’는 대단히 불투명하고 모호한 수사에 머문다.


더 심각한 문제는 ‘특별’이라는 글자에 가려진 ‘자치’의 실종이다. 이번 법안은 주민들의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관(官) 주도로 급하게 설계됐다. 겉으로는 ‘중앙에서 지역으로’의 분권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도지사에게로의 권한 집중’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승인 없이 농업진흥지역을 직접 해제하고, 환경부 환경영향평가 협의권도 도지사 손에 쥐어진다. 옥천·영동·보은이 40년 넘게 상수원 보호(대청호)를 위해 감내해 온 중첩 규제의 무게는 무겁다. 그 희생에 상응하는 보상을 요구하는 것 또한 정당하다. 그러나 대청호는 충북만의 물이 아니다. 하류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 없이 규제 완화 권한이 특정 광역 행정에 집중되는 것은, 중앙집권이 청주로 주소를 옮긴 또 다른 독점, 또 다른 관치(官治)에 불과하다.


법안이 발의된 뒤에야 열린 공청회는 그 자체로 이 과정의 성격을 드러낸다. 이는 의견 수렴이 아니라 사실상의 추인 절차에 가깝다. 주민을 주체가 아닌 동원의 대상으로 보는 행정 편의주의의 산물이다.


진정한 자치는 광역 행정 권한의 비대가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그곳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의 특별자치도법안 어디에도 주민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거나 시·군의 자치권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도지사에 집중된 강력한 권한이 기초자치단체의 자립성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충북도는 “우리가 소외될까 봐” 이 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 시도가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한다는 식의 ‘모방형 특별법’은 결국 지역의 개성과 고유성을 지우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지금 충북에 필요한 것은 특별자치도라는 거창한 명패가 아니다. 규제 완화로 인해 훼손될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개발 이익이 토건 세력이 아닌 지역 공동체로 흘러 들어가는 구체적인 방법 설계다.


언론은 이 ‘특별’한 움직임을 감시해야 한다. ‘특별자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민주적 절차의 생략과 환경 파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 역시 언론의 숙명이다. 행정이 장밋빛 수치를 제시할 때, 그것이 실제 주민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집요하게 묻고 추적해야 한다.


‘특별이니 광역이니’ 하는 통합·집권 논의가 벌어질 때마다 같은 지적이 반복되지만, 이면을 끝까지 파고드는 언론은 드물다. 그 공백이 행정의 오만을 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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