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TV 채널을 돌리며 쉬다가 한동안 정말 많이 듣던 노래의 가수가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멈췄다. 그는 최근 그동안과는 달리 파격적인 복장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아마 그 일환으로 예능까지 출연을 했나보다. 스타일리스트 역할을 하는 친구들도 함께 출연했는데, 그들의 50년이 넘은 우정과 열려있는 태도를 즐겁게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부터 즐거움이 아닌 불편함으로 영상을 보게 됐다. 제작진이 친구들에게 ‘전공이 뭐냐’고 질문하고 나서부터다. 제작진은 그들이 유수의 명문대학을 나온 이들이라는 걸 중요하게 다루고 싶었나 보다. 배운 적도 없는 코디와 스타일링을 친구를 위해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 전공을 물었을 수 있지만, 사실 이 물음은 대학을 나왔다는 것을 깔고 하는 질문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질문에 바로 이어 “여기서 더 놀라운 건 전공이 아닌 학교”라는 자막을 화면에 커다랗게 박았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들이 아주 유명한 명문대학 출신임이 함께 소개됐다. 씁쓸했다. 학교를 졸업한 지 40년 가까이 되었을 이들에게도 따라붙는 이 학벌주의를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게 영향력이 큰 예능PD가 진행하는 유튜브 콘텐츠에 카이스트 출신 뮤지션이 수능 수리 문제를 얼마나 잘 푸는지가 비중 있게 나온 것을 봤던 것도 기억났다. 밥친구처럼 즐겨보는 예능퀴즈 콘텐츠였는데, 마침 명문대 출신 뮤지션이 나오자 일부러 수능 문제 풀이를 들고 온 것이다. 뮤지션이니 음악에 대한 퀴즈를 내도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이처럼 미디어에서는 ‘○○대학교 출신’, ‘○○학번 동기 사이’ 등 명문대를 나온 이들의 학벌이 심심치 않게 언급된다. 이는 방송만의 일이 아니다. 언론 기사 역시 일부 연예인들의 출신학교를 마치 훈장처럼 제목에 배치한다. 유튜브 콘텐츠는 더 심하다. ‘서울대 나온 연예인 TOP 10’, ‘한예종 출신 스타 모음’, ‘의외의 명문대 출신 셀럽’과 같은 조회수를 노린 제목들이 알고리즘을 타고 퍼지고 있다.
물론 학력을 전달하는 행위 자체를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그 학력이 특정 대학 이름일 때만 뉴스가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학력 언급이 소위 명문대 중심으로만 다뤄진다는 점이다. 방송에 나오는 사람 중에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이들도 숱하게 많고,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이들 역시 숱하게 많다. 하지만 학력이 다뤄지는 건 일부 특정 대학을 졸업한 이들에 대해서만이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예술 분야라면 한예종과 서울예대. 이 몇 개의 이름만이 반복적으로 소환된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거나 졸업했더라도 명문대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다뤄진다. 내가 주말에 본 그 예능 방송에서도 함께 출연한 한 명은 출신학교도 전공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그가 ‘고졸’이라는 것이 이후에 잠시 언급되었을 뿐이다.
미디어와 언론이 출신학교를 보도할 때 그것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서열을 의식하게 하는 행위이다. 독자와 시청자에게 “이 학교가 좋은 학교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하기 때문이다. 특정 대학 이름이 반복적으로 긍정적 맥락에서 소비될 때, 이를 보는 시청자와 독자는 그 대학의 우월성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게 된다. 의도든 아니든, 언론은 학벌 서열을 공고히 하는 주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물론 출신학교는 개인 이력의 일부이고, 그것을 내보내는 것은 사실 전달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실을 선택해 어떤 맥락에서 반복하느냐가 언론과 미디어의 역할이다. 취업 기사에서 특정 학교 출신의 성공 사례만 반복하면 그것을 중립적 보도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의 선택은 이미 가치 판단의 결과물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학벌 서열을 강화하려는 게 아니라, 관행이 관행을 낳고, 클릭이 클릭을 부르는 구조 속에서 학벌주의는 저절로 재생산된다. 이 구조를 바꾸는 것은 개인의 의지와 더불어 콘텐츠 선별 기준으로 풀어야 한다. 인권 보호를 위한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이 곳곳에 만들어지고 보완되어야 하는 이유다. 방송과 언론의 콘텐츠는 흥미뿐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살펴야 한다. 그것이 미디어의 책무다. 콘텐츠에 언급되는 이가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보다 어떤 작업을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해왔느냐가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기준이고 원칙이어야 한다.
나는 이제 그 대학 출신 연예인이 누구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다. 수능을 본 지 20년은 족히 지난 그 뮤지션들이 수능 문제를 풀고 있는 것보다, 지금 그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음악과 연주를 보고 싶다. 유명 대학을 나온 이들이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를 한다는 사실보다, 50년이 넘도록 서로를 응원하며 이어지는 친구들의 진심 어린 우정에 감동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