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지 부족 사태 후폭풍… '잠실 시위' 성격 두고 혼란도 가중

[핫 이슈] 기자들, 시위 정의·판단 혼란
시민들 "투표권 침해 규탄" 목소리
부정선거론자 주장도 뒤섞여 혼재
조선일보 '잠실 참정권 시위' 명명

6·3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다. 마지막 개표가 이뤄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선 5일부터 투표권 침해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선거일 기준 일주일째 접어들며 사회 전반 쟁점으로 떠오른 이번 사태를 두고 언론은 장기화되고 있는 개표소 봉쇄 시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혁 방안, 정치권 반응에 연일 주목하고 있다. 이런 와중 개표소 시위 현장을 기록하는 기자들은 예상치 못한 혼란을 맞닥뜨리고 있는 중이다. 과격 시위대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등 위협을 겪거나 또다시 부상한 부정선거 음모론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관리 부실에서 비롯된 참정권 침해를 규탄하는 시민의 목소리와 부정선거론자의 주장이 혼재된 이번 시위를 어떻게 보도해야 할지를 두고 기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가 5일부터 이어지며 이번 사태는 사회 전반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위를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은 현장에서 과격 시위대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등 예상치 못한 혼란을 맞닥뜨리고 있는 중이다. 사진은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구 앞에서 시위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일어난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 4일 투표함 반출을 막아서며 시작된 시위는 투표함이 이송된 5일부터 개표가 이뤄진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으로 이동해 개표소 봉쇄 시위로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개표 상황과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시위 참가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폭언을 듣는 일이 발생했다.


5일 한국기자협회 JTBC지회 성명에 따르면 이날 개표 상황을 취재하다 출입구가 막혀 창문으로 빠져나오던 JTBC 취재진은 시위대에 에워싸인 채 “선관위 직원이 아님을 증명하라”는 신원검증을 당하고, 폭행 피해를 입었다. 같은 날 현장을 취재하던 KBS 기자들도 일부 과격 시위대에 의해 폭행, 폭언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자협회는 8일 성명을 내고 “취재진 대상 폭력 사태를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 신문과 방송은 초반 극우·음모론적 성격이 짙었던 시위가 주말인 6~7일 2030세대 청년들을 주축으로 정치화에 선 긋는 분위기로 변화한 현상에 주목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지면을 통해 시위 현장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이번 시위를 ‘개표소 봉쇄 시위’ ‘투표용지 부족 규탄 시위’ 등으로 쓰고 있는 주요 신문들과 달리 ‘잠실 참정권 시위’라 명명하기도 했다. 다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평일로 접어든 8일부터 시위 양상은 다시 과격해지고 있으며 재선거만을 구호로 삼던 분위기도 다시 부정선거론자들의 주도로 변화하고 있다.


시위 분위기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는 건데 그만큼 현장 기자들로선 이번 시위 성격과 시위 참가자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판단해야 할지 혼란이 클 수밖에 없다. 6일 올림픽공원 일대 시위를 취재한 유지영 오마이뉴스 기자는 “현장에 가기 전까지는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 부족으로 재선거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합리적인 주장인지, 청년층이 많다는데 이들이 기존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이들과 얼마나 다른가 하는 물음을 갖고 있었다”며 “실제 당시 현장에선 ‘재선거’ 외엔 구호를 외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명확한 탈정치성을 요구하는 흐름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주말 시위 현장을 주도했던 2030세대 청년들을 다르게 봤다. 그는 “기존 정치 진영에 부합하지 않게 발생한 시위라 기자들은 어떻게 보도해야 할지, 시위에 참여한 2030 청년의 성격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라면서 “다만 퀴어 퍼레이드 참여자들의 당사자 여부를 일일이 캐묻지 않는 것처럼 일단 초기 단계에선 집회에서 공식적으로 내거는 구호 자체에 집중하는 게 맞다 생각해 보도했지만 계속 고민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실제 인터뷰를 해보고 느낀 건 극우적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본인이 정상적 시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이었다. 청년들의 집회 결집 중심이 된 SNS 스레드를 보면 이번 시위 자체를 민주화 항쟁에 빗대거나 잠실7동 2투표소에서 쓰러진 분을 제2의 이한열 열사라고 표현한다. 현장에선 ‘스타벅스가 이 사태보다 중요하냐’ 식의 표현들이 나왔다”며 “시위에 온 2030을 올려치기(과대평가) 할 건 아니라고 본다. 결과적으로 이 집회에선 다시 부정선거 구호가 터져 나왔고 시위 참여자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갖고 있었던 게 근본 원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3일 투표소 스케치를 하거나 국회에서 각 당 분위기를 체크하던 기자들은 투표용지 부족이란 초유의 사태에 잠실 투표소, 선관위 앞 시위 현장에 급파되기도 했다. 이후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는 이번 시위 현장에 던져진 기자들에겐 정확하고 다각적인 현상 분석이 숙제로 남아있다. 기자들은 이번 사태를 촉발한 선관위에 1차 책임이 있다는 데엔 이견이 없었지만, 부정선거 음모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지점에 대해선 우려가 컸다.


3일 처음으로 투표용지 부족 문제가 드러났던 잠일 초등학교 앞 투표소 혼란상을 포착하고,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진 잠실7동 제2투표소 시위 현장을 취재했던 양수연 연합뉴스 사건팀 기자는 “이런 사태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고 기자들도 현장에서 판단하고 움직였어야 했기에 혼란스러웠을 것”이라며 “선거 기간 모스탄 등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인사들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취재는 계속 해오고 있었는데, 이번 사태로 부정선거 의혹이 더 확산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선관위 관련 수사 상황을 챙기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됐는지 면밀히 확인하는 보도를 해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유지영 기자도 “부정선거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반복하며 설득과 의견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사회가 보다 단호하게 선을 긋되 선관위 개혁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또한 봉쇄 시위 참가자들이 마치 2030을 대표한다는 식의 어설픈 세대론으로 분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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