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을 이유 없던데요”…2030 서울 여성은 왜 정원오를 외면했나>
<‘열성 지지층’ 아닌 ‘심판자’였다…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불신’ 드러낸 20·30 여성들>
<“부동산 민감 서울30대女 등돌려” 여당의 패배 분석>
<서울 30대 여성, 진보진영 이탈…‘이대남’ 75%도 오세훈에 몰표>
<서울 ‘이대녀’도 우클릭 늘어…“청년층, 2년 뒤 총선 캐스팅보터”>
<서울 30대 여성은 오세훈 선택…전국 2030 여심과 달랐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나고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선거 패배 원인을 분석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많은 언론, 그리고 정치권이 주목한 건 30대 여성 유권자의 ‘변심’이었다.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가 3일 발표한 심층 출구조사 결과, 30대 여성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2030 남성의 보수정당 지지세가 공고해진 점과 더불어 2030 여성‘마저’ 민주당에 등을 돌린 점에 주목하며 2030 전반의 ‘보수화’를 진단하거나 우려하는 글이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도 줄을 이었다.
2030 여성이 보수화? 알고보니 반전이…
그런데 이런 분석의 근거가 된 데이터 자체가 잘못됐다는 사실이, 선거가 끝나고 1주일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지상파 3사와 한국방송협회가 공동으로 구성한 방송사공동예측조사위원회(KEP)가 11일 서울 등 일부 지역의 성·연령별 유권자 성향 분석 데이터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KEP는 이날 “자체 조사 결과, 한국리서치가 담당한 4개 지역(서울·대구·울산·충북)의 성·연령별 유권자 분석에서 사전투표자 예측 데이터가 누락된 채 당일 출구조사 결과만 반영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로 인해 해당 지역의 유권자 성향 분석 보도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전투표자 예측 데이터를 반영해 재계산한 데이터를 공개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의 경우 20대 여성의 정원오 민주당 후보 득표율(이하 추정치)이 48.5%에서 56.7%로 오르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득표율이 41.4%에서 31.7%로 떨어지면서 두 후보 간 격차가 7.1%p에서 25%p까지 벌어진 것이다.
30대 여성에선 아예 1,2위가 바뀐 결과가 나왔다. 정원오 후보가 42.8%에서 51.3%로, 오세훈 후보가 53.6%에서 45.3%로 바뀌면서 과반 득표자가 달라졌다. 물론 정원오 후보 득표율이 절반을 겨우 넘겼기에 압도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서울 30대 여성이 오세훈을 선택했다’거나 ‘정원오를 외면했다’고 보긴 어려운 결과였다.
20대 여성의 과반이 정원오 후보를 찍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이대녀 우클릭’이라 진단한 분석도 틀렸다. 사전투표자 예측 데이터까지 합산해 보니 20대 여성 유권자의 56.7%가 정원오 후보를 지지, 지난해 대선 출구조사 당시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58.1%)과 격차가 크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20대 여성에서 유지혜 서울시장 여성의당 후보 득표율이 6.1%, 권영국 정의당 후보가 4.9%로 두 후보 합산 10%를 넘었다는 것이다. 서울에 사는 20대 여성 유권자 10명 중 1명은 거대 정당인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찍지 않고 진보 색채가 강한 소수 정당에 표를 줬다는 의미다. 출구조사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정원오 후보와 진보정당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합산 67.7%로 지난해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와 권영국 후보가 얻은 득표율 64.0%보다 높았다. 20대 여성의 ‘우클릭’이나 보수화를 논할 상황은 아닌 셈이다.
출구조사 ‘실패’ 지적하면서도 2030 분석은 받아쓴 언론
물론 이런 비평도 KEP가 다시 계산해 내놓은 데이터 역시 신뢰할 만하다고 전제할 때 가능하다. 서울 등 4개 지역의 성·연령별 분석만 오류가 있었을 뿐, 최종 당선자 예측 등 전체 결과 산출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하지만, 이미 이번 출구조사는 신뢰를 크게 잃은 뒤다. 서울과 경남 등에서 광역단체장 당선자 예측에 실패하고, ‘경합’으로 분류한 지역에서 당선자가 2위 후보를 8~9%p의 큰 격차로 따돌리는 등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언론이 지상파 출구조사의 ‘실패’를 지적했고, 이럴 거면 안 하는 게 낫다는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면서도 성·연령별 표심 등 심층 출구조사 내용은 신뢰할 만한 것인 양 2030 여성의 ‘변심’을 민주당의 패인과 연결 지어 분석하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선거가 끝난 뒤 그 결과를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작업은 정당은 물론 언론에도 필요하다. 투표를 통해 나타난 ‘민심’을 읽고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논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다. 지상파의 심층 출구조사 데이터는 그런 점에서 그간 귀한 자료가 되어줬다. 비밀투표로 진행되는 선거에서 성과 연령 등 유권자 특성별 표심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는 지상파가 선거 당일 진행하는 심층 출구조사가 사실상 유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출구조사가 최근 몇 년간 높은 사전투표율과 ‘샤이 보수’ 등의 영향으로 정확도가 떨어지더니, 이번 선거에선 그 정도가 더 심해지고, 심지어 데이터 오류라는 치명적인 잘못을 드러냈다. 대처도 늦었다. 이번 출구조사 데이터에 의문을 가진 노종면 민주당 의원 등이 거듭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야 뒤늦게 오류를 발견하고 정정한 것이다. 노 의원은 10일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방송 3사와 조사기관 3사를 향해 성·연령별 수치와 관련해 사전투표 반영 여부 등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데이터와 근거들이 최소한의 명확성을 가져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주장했다. 전날(9일)엔 “민주당을 긴장시킨 데이터에 문제가 있으니 긴장 풀자는 게 아니다. 긴장을 제대로 하고 접근을 제대로 하려면 데이터부터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도 썼다.
방송협회 KEP는 사과했고, 지상파 3사도 당일 저녁 메인뉴스를 통해 이런 사실을 전했지만, 잘못된 데이터에 기반해 쓰인 기사와 SNS 글 등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다. 일부 기사가 내용을 ‘정정’하는 대신 조용히 삭제됐을 뿐이다. 이미 만들어진 프레임 안에서 2030에 대한 특정 인식을 강화하는 방향의 기획 기사 등도 나오고 있다. 오류에서 비롯된 ‘오해’는 현실을 오판하게 하고, 이는 다시 여론을 왜곡하는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태를 지상파 한정이 아니라 언론 전반이 심각하게 보고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