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운 좋아 16강도 가능할 거라 봤는데, 아…"

북중미 월드컵 현장 기자들 후일담

2026 북중미 월드컵 취재기자들이 6월25일(이하 현지 시각)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과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질문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26 북중미 월드컵을 48개국 중 34위이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으로 마무리하고 6월 말부터 순차 귀국했다. 대표팀과 함께 현장을 누볐던 취재기자들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귀국길에 올랐다. 15시간의 시차를 견디며 밤낮없이 일했던 기자들은 이번 월드컵을 두고 “보람과 뿌듯함보다는 아쉬움과 허탈함이 많이 남았던 출장”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자들은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결과에 허무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른바 ‘역대급 꿀조’라고 여겨질 만큼 대진운이 좋았기에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를 품었던 탓이다. 이준희 KBS 기자는 “토너먼트 경기 특성상 선수들의 기세가 오르면 16강 이상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면서 “취재가 길어지면 몸은 힘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몸이 힘들어도 결과가 좋았으면 보람을 느꼈을 텐데 아쉬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박성국 서울신문 기자가 6월22일 멕시코 몬테레이에서 콜롬비아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성국 제공

미국 취재비자까지 준비했던 기자들은 이를 꺼내보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박성국 서울신문 기자는 “오전 6시부터 미국 대사관 앞에서 2시간30분을 기다려 비자를 발급받았다. 조 2위로 32강에 진출하면 미국 LA에서 경기가 열리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것”이라며 “막상 미국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여권에 비자만 기념품처럼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이화섭 매일신문 기자 역시 “약 40만원을 들여 사비로 비자를 받았는데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며 씁쓸해했다.


가장 아쉬움이 컸던 순간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예선 3차전이었다. 당시 현장을 지켜봤던 기자들은 선수들의 움직임이 꼭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고 전했다. 이화섭 기자는 “경기 내내 공격 루트를 뚫는 과정이 전혀 안 보였다. 이를 지켜보던 프레스석에서도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며 “전문가 해설을 듣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있었는데도 다른 기자들의 한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현장 분위기가 가라앉았다”고 회상했다.


결국 조 3위로 예선을 마무리하며 32강전 자력 진출이 무산되면서, 현지 취재 일정에도 큰 혼란이 일었다. 다음 행선지가 불투명해지자 일부 기자들은 선수단 베이스캠프가 있는 과달라하라로 복귀하거나, 마지막 경기가 열린 몬테레이에 남아 현지 르포 기사를 쓰며 다른 팀들의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이준희 KBS 기자가 6월27일 멕시코 몬테레이에 위치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훈련장 앞에서 리포팅을 하고 있다.

당시 축구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KBS의 <“졸전 이유 못 찾겠다” 해서 직접 답을 찾으러 가봤습니다> 리포트도 이러한 혼란 속에서 탄생했다. 해당 기사를 보도한 이준희 기자는 “매일 리포트를 제작해야 하는데 32강 진출 여부가 정해지지 않아 상대 팀 분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이 와중에 감독이 ‘졸전 이유를 모르겠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아 직접 그 이유를 찾아보자는 취지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품이 많이 드는 기사라 발제를 해야하나 망설였지만, 감독의 무책임한 발언에 분노가 일었다. 시청자들 역시 이러한 분노에 공감했던 것 같다”면서도 “선수들이 받았어야 할 관심을 제가 가져간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홍명보 감독을 비롯한 선수팀의 귀국길을 취재한 기자들 역시 축구팬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꼈다. 홍 감독이 한국으로 복귀하던 6월30일 오전 2시부터 인천공항 현장을 지켰다는 김진엽 뉴시스 기자는 “2015년에 기자가 된 이후 모든 월드컵 귀국길을 챙겼지만 이렇게 분노가 가득한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면서 “홍 감독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새벽부터 모인 사람들이 50명이 넘었다. 입에 담기도 어려운 욕설이 쏟아지면서 기사에 담긴 것보다 현장 분위기가 훨씬 험악했다”고 전했다.

남정훈 세계일보 기자가 6월12일 대한민국과 체코의 조별예선 1차전이 끝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한국은 체코에 2-1로 승리했다. /남정훈 제공

이처럼 여론이 싸늘한 만큼, 한국 축구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는 기획 보도도 발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6월30일 오전 5시 한국에 도착한 남정훈 세계일보 기자는 같은 날 <한국축구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제목으로 기획 기사를 냈다. 남 기자는 “구체적인 내용은 비행기 안에서 구상했고, 도착하자마자 기사를 썼다”면서 “상황이 엄중한 만큼 빠르게 기사를 내는 것이 좋겠다는 데스크의 판단이 있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정몽규 회장과 홍 감독이 사퇴한 만큼, 지금이 대한축구협회(KFA)를 개혁할 적기라고 평가했다. 박성국 기자는 “‘1월 아시안컵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혼란을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면서 “여론과 정치권의 불이 당겨졌을 때 떠밀리듯 개혁하기보다는, 어디서부터 한국 축구가 무너지기 시작했는지를 진단하는 것부터 차분히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월드컵은 현장 취재기자단에게도 깊은 자성의 계기를 남겼다. 대회 초반 대표팀 훈련 과정에서 일부 기자가 손흥민 선수의 병역 특례를 비하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이 오디오가 방송사 중계를 통해 그대로 송출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후 치러진 체코와의 1차전 이후 손 선수는 인터뷰 없이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빠져나갔다. 다른 선수들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를 최소화하면서 기자들 사이에선 현장 취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화섭 매일신문 기자(맨 왼쪽)가 현지 취재도중 만난 멕시코 축구 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화섭 제공

이화섭 기자는 “욕설을 한 당사자가 먼저 나서 사과를 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선수단과 기본적인 라포르(상호신뢰)가 형성돼있는 스포츠 기자들과 달리 지역 기자들은 월드컵 취재를 가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현장 인터뷰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는데 그 기회를 날리게 된 것”이라면서 “오현규 선수에게 ‘대구FC 에드가 선수와 헤딩 연습을 했는지’를 묻고 싶었는데 결국 못 했다. 사실을 확인해서 보도했다면 대구에선 분명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남정훈 기자 역시 “초반에는 선수 취재가 전혀 안 되니 매일 과달라하라 광장에 나갔다. 취재를 하다가 문득 ‘내가 멕시코 현지 르포를 쓰려고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기자단 사이의 배타적인 분위기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남 기자는 “축구협회에서 나서서 오래 출입한 기자에게만 취재 소스를 더 주고, 대우를 해주는 경우가 있으니 격차를 느낄 수밖에 없다”면서 “오래 일하지 않으면 배타적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결국 2~3년마다 출입처를 옮기는 종합지 기자들의 경우 스포츠부서를 기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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