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무턱대고 받아들일 게 아니라, 조직 차원 숙의부터

[AI와 노동] (下) 뉴스룸이 AI를 받아들이는 자세

“처음엔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복제한 목소리라 그런지 끝 음 처리도 어색하게 들렸고, 데스크나 서울 본사가 내 기사를 마음대로 수정하면 어쩌지 걱정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수정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일일이 동의를 받기도 하고, 막상 급할 때 쓰기 좋아서 오히려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요즘엔 ‘어, 내 목소리 AI랑 비슷하네?’ 생각할 때도 종종 있어요.”

MBC는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참여를 원하는 지역MBC 기자 30명을 대상으로 보이스 클로닝 시범사업을 벌였다. MBC의 AI 전략 자회사 도스트11이 관련 기술을 개발했고, 6개월간 40여건의 기사 수정 및 11건의 방송 사고를 막으며 구성원들의 긍정적 평가를 얻었다. 그 결과 최근 시작한 2차 시범사업엔 전 지역, 100여명의 기자가 참여를 신청했다. /강아영 기자

이선영 MBC경남 기자는 현재 MBC가 진행하고 있는 ‘AI 보이스 클로닝(Voice Cloning·음성 복제)’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MBC는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참여를 원하는 지역MBC 기자 30명을 대상으로 보이스 클로닝 시범사업을 벌였다. MBC의 AI 전략 자회사 도스트11이 관련 기술을 개발했고, 6개월간 40여건의 기사 수정 및 11건의 방송 사고를 막으며 구성원들의 긍정적 평가를 얻었다. 그 결과 최근 시작한 2차 시범사업엔 전 지역에서 100여명의 기자가 참여를 신청했다.


초반엔 구성원들 우려가 컸다. 음성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발 목소리가 나왔고 악용 가능성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용 경험을 쌓으며 우려는 곧 기대로 바뀌었다. 재난 상황이나 목 상태가 안 좋을 때 질 좋은 녹음이 가능해졌고, 오디오를 재녹음 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30분에서 1분 이내로 단축됐다. 특히 취재 권역이 넓은 지역의 경우 퇴근 이후 재녹음을 위해 복귀해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됐다.


이선영 기자는 “이동할 때 2시간 넘게 걸리는 곳도 있을 정도로 저희 취재 권역이 굉장히 크다”며 “회사는 예전 마산 쪽이고 대부분 출입처는 창원에 있는데, 술자리를 하다 오탈자나 내용 수정 때문에 택시 타고 1시간가량 오고 간 적이 몇 번 있다. 이제 그런 수고는 덜 수 있게 됐고, 서울 본사에서 갑자기 기사가 바뀌는 경우에도 제 동의를 얻어 원고 수정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AI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고 있다. 남은 숙제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 시대를 맞이할 것 인지다. 향후 AI가 노동권과 저널리즘의 근간을 흔드는 상황이 오면 뉴스룸 내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기술 도입이 좌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무작정 AI를 받아들일 게 아니라 조직 내부의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사진은 구글 '나노 바나나 프로'로 만든 이미지. /강아영 기자

설명하되 설득하지 않는다

AI가 고도화되는 시대, 목소리를 복제하는 기술 자체는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주목할 건 MBC가 이 기술을 내재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 하는 점이다. 사업 초기 MBC는 지역사를 상대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희망자만을 대상으로 기술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구성원들 우려를 불식시켰다. 본사와 지역MBC 간의 협력 및 편성을 총괄하는 MBC 네트워크팀의 김세진 팀장은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AI가 기자 목소리를 복제한다는 데 구성원들 반감이 진짜 컸다”며 “기술을 만드는 덴 일주일밖에 안 걸렸는데 설명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 생체정보를 다루는 문제라 그만큼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아마 억지로 시작했다면 갈등이 커져 좌초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도입 과정에서의 제1원칙은 ‘설명하되 설득하지 않는다’였다. 김세진 팀장은 “무서워할 것만이 아니라 나를 편하게 해주고 시청자의 편익을 올려주는 기술이라는 걸 기자들이 스스로 인지해야 했다”며 “옆에서 하라마라 얘기할 순 없었다. 그나마 지역은 인력 문제 등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시범 운용을 할 수 있었고, 본사의 경우 특파원이나 해외 출장자로 확대할 생각은 있지만 이 사업을 확정 추진하는 건 아직도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기술 도입 과정에선 노동조합도 역할을 했다. 기존 계약서를 새롭게 정비해 음성권이 기자들에게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의 조의명 보도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는 “AI가 학습을 하게 되면 원래 음성의 주인은 이후 아무 권리가 없어지는 것이 업계 표준계약서 내용”이라며 “이 사업 계약서도 처음에 그런 내용이었는데 큰일 난다 싶어 조항을 다시 정리했다. 기자가 음성권을 가져야 하고 원하지 않을 경우엔 쓰지 말아야 한다, 이런 내용을 반영시키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MBC는 AI 음성을 사용할 기본 원칙들을 정비했다. AI 사용은 오탈자나 내용상 오류, 시제를 고치는 등의 부분적 수정 용도로 제한하고, 수정 사항이 생길 때마다 데스크와 담당 기자에게 허락을 받는 등 남용 방지와 책임 절차를 만든 것이다. 조의명 간사는 “수정된 기사를 못 읽겠다고 저항한 것이 최후의 보루였던, 엄혹한 시절을 겪었기에 이런 합의점들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그러나 그보다 근본적인 우려는 신뢰나 진정성 문제다. 기자가 리포트를 읽는 이유는 직접 현장을 취재한 사람이 그 내용을 전달한다는 의미인데, AI가 음성을 대체하면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내부에서 여러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뉴스룸에 AI 도구가 다양하게 들어와 있지만 기자들은 아직 보조 수단으로서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별도의 AI 전략이나 방향성 없이 벌써부터 기자들에게 이전보다 높은 품질 혹은 더 많은 양의 기사를 요구하는 조직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은 구글 '나노 바나나 프로'로 만든 이미지. /강아영 기자

조직 차원의 전략과 방향성 필요

AI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고 있다. 발제부터 송고까지, 기자 업무 전반에 AI를 활용한 다양한 작업들이 시도되고 있으며, 개인을 넘어 조직 차원에서 이 흐름에 적극 대응하는 언론사도 늘어나고 있다. 남은 숙제는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 시대를 맞이할 것인지다. 향후 AI가 노동권과 저널리즘의 근간을 흔드는 상황이 오면 뉴스룸 내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기술 도입이 좌초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이 때문에 무작정 AI를 받아들일 게 아니라 조직 내부의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출발점은 기본적인 노동권을 지키는 작업들이다. 6월 SBS 노사는 AI와 관련해 고용 안정과 노동조건을 보장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AI로 인한 고용 불안이 심화하는 가운데 국내에선 처음으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단협에 마련한 것이다. SBS는 ‘AI 도입으로 직무가 변경되는 조합원에게 필요한 직무 교육을 실시하고, 적절한 재배치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조항을 비롯해 음성이나 초상 등 AI 생성물을 만들 경우 반드시 당사자 동의를 받도록 하고, 직원 퇴직 후엔 이 생성물을 회사가 임의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못 박았다.


다만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노조의 역할에도 한계가 생기고 있다. 조의명 간사는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클로드만 해도 이틀에 한 번씩 업데이트가 되는데 이건 따라갈 수 없는 속도”라며 “과연 규범이 이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하루 종일 조항만 만들고 있을 게 아니라면 변화 속도에 맞춰 완벽한 규범을 만들어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조직 차원에서 먼저 명확한 방향성을 정하고 이를 구성원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AI 도입이 일자리를 줄이려는 목적이 아니라 업무 효율성과 독자·시청자의 권익을 강화하는 방향이란 점을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의 경우 ‘AI는 기자의 제작 활동을 보조하는 수단’이란 점을 준칙에서 명확히 하고 회사의 전략과 방향도 그에 맞추고 있다.


이광빈 연합뉴스 AI콘텐츠부장은 “AI 시대 언론사가 생존하기 위해선 결국 저널리즘 본령을 더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며 “저희 회사는 취재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기자들이 남는 시간에 추가 취재를 해 사회적 효용을 높이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저희 목표고, 회사의 AI 전략과 방향도 그 철학에 맞춰 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직 차원에서 먼저 명확한 방향성을 정하고 이를 구성원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AI 도입이 일자리를 줄이려는 목적이 아니라 업무 효율성과 독자·시청자의 권익을 강화하는 방향이란 점을 구성원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의 경우 ‘AI는 기자의 제작 활동을 보조하는 수단’이란 점을 준칙에서 명확히 하고 회사의 전략과 방향도 그에 맞추고 있다. /강아영 기자

AI로 아낀 시간·자원 재투자로 선순환을

한편 기자 스스로도 업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AI로 인해 아낄 수 있게 된 시간과 자원을 저널리즘 본령에 재투자하는 선순환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양효걸 도스트11 대표는 “사실 기사 작성을 AI와 경쟁하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 초벌 기사를 AI가 보냈을 때 그걸 어떻게 데스킹 할 것인지, 어떻게 방향을 잡고 사실관계를 확인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인간 기자만 할 수 있는 것들은 대면·현장 취재, 라이브 등이다. 단신 작성이나 기사의 초벌 혹은 데이터 분석은 과감히 AI에게 위임하고 남은 자원을 현장 취재에 쏟아 붓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자를 뜻풀이하면 쓰는 사람”이라며 “과연 초기 집필을 AI에게 위임할 수 있는지는 심정적으로든 기능적으로든 장벽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 뉴스룸에 AI 도구가 다양하게 들어와 있지만 기자들은 아직 보조 수단으로서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기사 작성 같은 핵심 업무는 자료 분석·분류, 번역, 교정 등보다 그 사용 빈도가 낮고, 기사의 완성도 역시 인간 기자를 따라오지 못해 초고 정도만 AI에 맡길 수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별도의 AI 전략이나 방향성 없이 벌써부터 기자들에게 이전보다 높은 품질 혹은 더 많은 양의 기사를 요구하는 조직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업무 시간이 극적으로 줄어들지 않은 과도기에 이는 기자들에게 이중의 부담이 되고 있고, 또 다른 혼란과 갈등을 유발시킬 잠재 요소가 되고 있다.


김민성 한국일보 미디어전략부문장은 “콘텐츠라는 상품 자체는 굉장히 학습이 어렵다”며 “창의적이고 감정에 많이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도제식으로 학습시키기도 어렵고, 균일한 상품도 안 나온다. 그런데 AI 기술로 명확한 것부터 시키게 되면 결국 비용 절감이나 생산성 향상 이런 얘기들만 남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AI 혁신이 다가온 시대에 중요한 것은 이 기술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며 “무엇을 위해 이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그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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