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위한 여행과 사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여행 모두가 마찬가지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돈다는 건 새로운 사람과 음식을 마주하는 일에 다름없다. 지난 30여 년.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오세아니아를 여행하며 기억에 남을 몇몇 사람을 만났고, 독특한 요리를 맛봤다. 그 여정을 더듬어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편집자주
라제 파마코스키.
알렉산더 몰코스키.
지코 스파세스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55년 3개월을 살아온 내가 기꺼이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외국인들의 이름이다. 그들 모두의 국적은 마케도니아.(지금은 공식 국명이 북마케도니아로 바뀌었다)
오흐리드(Ohrid)는 북마케도니아 남부에 있는 크지 않은 도시다. 생성된 지 500만년에 육박한다는 커다란 호숫가에 소박하게 자리 잡았다.
불가리아에서 버스를 2번 갈아타며 알바니아를 거쳐 도착한 오흐리드는 적지 않은 여행자를 단숨에 사로잡을 여러 매력을 가졌다.
정교회 성당과 이슬람 모스크가 마주 보고 서있는 풍경은 이채롭고, 깨끗한 공기와 높고 짙푸른 하늘은 갑갑한 회색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의 숨통을 틔워준다.
게다가 투명한 호수 위에 조그만 배를 띄우고 노래라도 한 곡 부를라치면 “그래, 이런 게 살아가는 재미지”라는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다양한 종류의 민물고기를 재료로 만든 요리도 비린내와 흙냄새 하나 없이 맛있다.
거기에 과거 어느 한때 지구의 1/3을 자신의 말발굽 아래 굴복시킨 정복자 알렉산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진 잘생기고 품성 좋은 사람들까지 친구가 돼준다면 오흐리드를 싫어할 방법이 없을 터.
라제 파마코스키는 북마케도니아 수도인 스코페는 물론, 때때로 세르비아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에 가서 발군의 연주 실력을 보여주는 록 밴드의 기타리스트. 단지 주야로 술을 즐긴다는 이유만으로 2~3일 만에 막역지우(莫逆之友)가 됐다.
자기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전통주 라키야(Rakija·알코올 도수 50% 안팎의 독주)와 치즈를 매일 같이 가져와서는 호숫가 지척에 자리한 호스텔 정원에서 잔을 마주했다.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여자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자고 청하기도 했다.
오흐리드 맑은 물에서 헤엄치던 송어를 오븐에 구워 싱싱한 채소와 감자튀김을 곁들인 요리도 일품이었지만, 낯선 외국인 여행자를 대하는 라제 커플의 친절함과 선량한 웃음이 송어구이보다 더 좋았다.
북마케도니아는 포도주로도 유명하다. 알렉산더 몰코스키는 조그만 와이너리(winery)를 운영한다.
겨우 한두 번 얼굴을 본 내게 즐기는 영화 취향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멧돼지의 피’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레드 와인을 선물하며 씨익 웃었다. 그는 올리버 스톤이 연출한 영화 <알렉산더>의 주연 배우 콜린 파렐을 닮은 미남이었고.
지코 스파세스키는 한 달 가까이 묵었던 써니레이크 호스텔의 젊은 주인. 크로아티아로 떠나던 날 소박한 파티를 열어준 것은 물론 숙박비를 30%나 할인해 줬다.
“왜 이렇게 많이 깎아주느냐”는 물음에 “우린 친군데, 왜 그렇게 하면 한 되느냐?”라고 되묻던 지코의 바리톤 음성이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당신이 여행을 하는 이유는 뭔가?”
누군가 질문한다면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새로운 풍광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그 새로운 풍광이 일상 속 공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매혹하고, 집을 떠나 길 위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이 속내를 터놓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여행은 거기에 사용되는 돈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게 아닐지.
라제 파마코스키와 저물녘 호숫가를 거닐었다. 무슨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백조 몇 마리가 석양을 배경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라제가 물었다.
“한국에도 라키야처럼 맛있는 술이 있냐?”
“그럼. 안동 소주와 진도 홍주는 라키야 못지않아. 언젠가 다시 오흐리드로 오게 된다면 그것들을 가져올게. 그땐 우리만 마시지 말고 백조들에게도 한 잔 주자.”
“좋지. 기다릴게.”
그날로부터 1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얼결에 한 북마케도니아 주당과 한국 주당의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못했다.
여름 한 철을 오흐리드에서 친구들과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 라제와의 약속이 지켜지는 날은 언제쯤일까?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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