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유람선 위에서 크로아티아 흐바르섬을 떠올리다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12)

취재를 위한 여행과 사적인 이유에서 선택한 여행 모두가 마찬가지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곳을 떠돈다는 건 새로운 사람과 음식을 마주하는 일에 다름없다. 지난 30여 년.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오세아니아를 여행하며 기억에 남을 몇몇 사람을 만났고, 독특한 요리를 맛봤다. 그 여정을 더듬어 <지구촌 사람들과 추억을 먹다> 연재를 이어가고자 한다. /편집자주


15년 전 크로아티아 여행 중에 만난 환상적인 석양.

폭염과 폭우가 지루하게 반복되는 2026년 여름. 나를 포함 20세기 문학청년들을 매료시켰던 아르튀르 랭보의 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다시 꺼내 읽다가 무더위를 피해 저 먼 남쪽 섬으로 짧은 휴가를 다녀왔다.


홍도에선 끝물에 이른 노오란 원추리가 여행자를 반겨줬고, 시커멓게 눈 앞을 가리며 쏟아지던 흑산도에서의 소나기는 그 섬에서 ‘지옥의 시절’을 견뎠던 다산의 형 손암(巽庵) 정약전(丁若銓·1758~1816)의 유배 시절이 얼마나 쓰라렸을지 상상하게 만들었다.

잘 손질된 흑산의 홍어. 미식 중의 미식이다.

30년 가까이 알아 온 지인은 흑산도가 고향이다. 그 선배의 호의 아래 홍도와 흑산도에서 맛있다는 건 거의 다 먹었다.


몸값 비싼 홍도 돌돔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껍질이 기가 막혔고, 얼마 전 금어기가 풀렸다는 흑산 홍어의 싱싱한 생간(生肝)은 네덜란드 치즈를 능가하는 풍미로 혀를 농락했다.


식탁 위에 함께 차려진 빛깔 좋은 전복, 해삼, 뿔소라, 살짝 말려서 구운 우럭 역시 평소엔 접하기 어려운 것들임에도 거기론 젓가락이 갈 시간이 없을 정도.

홍도의 하늘빛 물빛.

사람과 짐승, 세상의 사물과 꼭 빼닮은 기암괴석이 즐비하다는 홍도. 느린 속도로 섬을 한 바퀴 도는 유람선에 올랐다.


쉰여섯인 내가 30여 명 승선자 가운데 최연소가 아니었을까? 금실 좋은 노부부들이 20대 젊은 연인처럼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주름진 얼굴 펴고 환하게 웃었다. 청록색 비단을 펼친 듯 파도가 잦아든 잔잔한 바다가 보기에 좋았다.


유람선 근처로 조그만 고깃배가 다가왔다. 방금 잡았다는 광어와 숭어 따위를 번개 같은 속도로 썰어내 뚝딱 회 한 접시를 만들었다. 여러 차례 TV와 신문에 소개돼 적지 않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홍도 선상 회 파티’가 열렸다.


가격이 담배 한 보루 값에도 미치지 못하니 부담 없고, 홍도 어민들의 가계에도 보탬이 된다니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일회용 접시 그득하게 담긴 광어·숭어회를 들고 유람선 평상에 앉았다. 이어서 달게 들이켠 이름도 예쁜 ‘잎새주’(전라남도 지역 소주) 서너 잔.

크로아티아 흐바르섬의 저물 무렵.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면 지나가던 여행객들이 춤을 추던 낭만적인 풍경.

미미한 취기와 함께 흔들리는 배 위에서 기억의 회로가 15년 전 과거를 향해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엔 크로아티아를 여행 중이었다.


로마 황제의 별궁(別宮)이 있는 스플리트에서 작은 여객선을 타고 흐바르(Hvar)로 갔고, 그 섬의 에메랄드 물빛에 매혹돼 사흘을 머물렀다.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고, 루비 빛 해가 떨어지는 석양의 광장에서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꼬마들이 재잘거리며 뛰어다녔다. 어른들은 레몬과 동유럽 허브로 장식된 식기 위에 놓인 구운 도미의 가시를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 우아하게 발라내고.

도미구이. /언스플래쉬

인간의 부러움이란 미지(未知) 앞에서 생겨나는 게 아닐지. 그래서였을 것이다. 흐바르에서도 홍도에서도 섬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일생 도시에서만 살아왔기에 섬에서의 삶을 알지 못하는 나는 거듭해 우매한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살면 재밌고 즐겁지요?”


약속이나 한 듯 흐바르 주민과 홍도 어민의 답변은 동일했다.


“그럴 것 같나요? 그럼 바꿔서 살아볼래요?”

사람살이에 영속되는 행복은 없다. 그건 불행도 마찬가지. 눈물과 웃음이 불연속적으로 반복되는 삶은 섬과 육지, 어촌과 도시가 다를 바 없을 터.


그럼에도 청옥 빛 바다 가운데 떠 있는 섬의 평화로운 적요가 선물하는 크낙한 위로의 힘을 부정하긴 힘들다. 이는 사람들이 수십 수백 년을 이어가며 끊임없이 홍도와 흐바르를 찾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 소개] 홍성식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중·고교 시절.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라는 교사의 권유를 거부하고, 김지하와 이성부의 시를 읽으며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러 극장에 드나들었다. 그 기질이 지금도 여전해 아직도 스스로를 ‘보편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착각하며 산다. 노동일보와 오마이뉴스를 거쳐 현재는 경북매일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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