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에 대한 보도는 언론 역할의 핵심 중 하나이지만 불분명한 공인 개념과 기준으로 현장에 혼란을 낳고, 이에 따라 소송 등까지 이어져온 상황에서 언론사·기자가 고려할 실질적 기준으로서 ‘공인 보도준칙’이 제정을 앞뒀다. 11월쯤 배포가 예정된 준칙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율규범이지만 모호한 공인 관련 개념이나 보도 범위·원칙을 일정 부분 명확히 해 언론이 참고할 최소한의 기준으로 의의를 지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7일 서울 중구 미디어교육원에서 <‘공인 보도준칙’ 제정을 위한 논의와 향후 과제>란 공청회를 열어 그간 준칙 제정 경과와 내용 등을 소개하고, 현장 기자와 언론단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의견수렴을 진행했다. 대법관을 지낸 김재형 서울대 법학전문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전담팀이 6월부터 마련한 준칙 제정엔 언론재단 외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가 참여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 교수는 공인 관련 명예훼손 소송에 대한 실증적 분석과 주요 판례를 소개하며 준칙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 알 권리 차원에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에 대해 언론의 역할은 폭넓게 인정돼 왔지만, 공인의 유형이나 보도 내용에 따라 법원이 달리 판단하는 등 사생활의 영역, 즉 인격권 보호 차원에서 긴장감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요지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사례로 2021~2023년 공인 유형별 명예훼손 소송에서 정치인 승소율은 27.8%이지만 연예인은 90%에 달하는 현실을 전했다.
현행 언론 자율 규범에 공인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인격권 보호에 대해 제한적인 서술만 하고 있는 점을 거론한 김 교수는 ‘공인’ 판단의 큰 틀로 ‘자발성’, ‘비자발성’을 제시했다. 자발적인 공인의 영역으로 공직자와 연예인, 재벌 등을 포함하되 보도의 공공성과 대상의 유명성, 영향력, 대중의 관심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범죄나 재난 피해자, 유명인의 가족 등 비자발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사람에 대해선 공공성과 대중의 관심을 고려하되 좀 더 신중히 보호해야 한다는 견해다.
이에 따라 마련된 준칙은 공직자나 공직후보자 외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일반에 널리 알려진 자로서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거나 대중의 관심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단체”로 ‘유명인’을 공인으로 규정했다. 또 표현의 자유가 인격권 보호에 우선하는 공인 보도 영역으로 ‘공인의 공적 지위나 활동에 대해 대중이 아는 것이 사회 이익이 될 경우’, ‘유명인의 영향력이 크고 그에 대한 평가 자료로서 공개 필요가 있는 경우’, ‘유명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 충족을 위한 것으로 공중의 정당한 관심 대상의 보도’를 꼽았다.
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공인이라 해도 허용되지 않는 영역도 규정했다. ‘신체적·정신적 질병과 치료 이력’, ‘성적 지향 또는 성관계’, ‘주거지의 위치·주소, 병원 등 체류 장소’ 등 사적이고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사항이 대표적이다. 보도 방법이 건전한 상식을 벗어나서 안 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특히 비자발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범죄 혐의자와 피해자, 재난·사고 관련자와 피해자, 공직(후보)자나 유명인의 가족·친척·연인 등에 대한 보도는 공인 보도에 해당하지 않고, 피해 최소화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인격권 보호를 재차 강조하는 차원에서 언론이 보도 전 당사자에게 서면, 전화, 이메일, 면담 등 방법으로 반론 기회를 주고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제 시작… 보완과 추후 사례집 발행 등으로 우려 해소해야”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현장 기자, 언론단체 관계자들은 준칙이 너무 모호해 실효성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는 우려를 내놨다. 남용희 더팩트 기자는 “사진기자로서 자발적으로 공적 지위를 취득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보도 부분에 대해 준칙상 조건으론 공인에 해당되는지 기준이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했다.
‘공판에 출석하는 국무위원의 부인’이나 ‘일반인이었지만 지속 언론보도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얻고 경찰에 출석도 한 인물’ 등을 두고 사진에 모자이크·블러 처리를 해야 할지 고민이 있었는데 준칙 내용상으론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는 “공인이 아닌 공인 관련자들에 대한 부분에 대해 공인으로 접근을 해야 될지 비공인으로 접근을 해야 될지 이번 준칙을 제정하며 구분이 더 명확하게 정립됐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이윤석 JTBC 기자는 탐사부 기자로서 공인 검증 보도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전하며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나온 것에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고 했다. 다만 그는 “후배 기자 몇 명한테 준칙을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봤는데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너무 추상적이지 않냐, 좋은 말 다 들어 있는 거 아닌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란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정도까지 만들어져야 된다. 그래서 준칙 이후가 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BBC 가이드라인을 보면 ‘어떤 경우엔 어떻게 보고하고 기록을 남기고’ 등등의 내용을 담아 굉장히 두껍다. 개별 언론사가 BBC 수준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는 어려울 텐데 차후 언론재단이나 단체 등에서 공동으로 더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언론사에서 공인 취재를 하고 반론을 요구할 때 당일 몇 시간 전에 연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후배들에게 옛날처럼 그렇게 취재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반론 기회를 줘야 한다고만 돼 있는데 개인적으론 최소 하루 이상 기회를 줘야 한다고 보고 있다. 준칙이 좀 더 상세한 후속 가이드라인으로 이어졌을 때만이 현장 언론에서 실질적으로 활용이 많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공인의 인격권 보호를 강조한 준칙 기조가 언론보도 위축을 야기할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김선호 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공인 보도준칙의 전체 내용이 균형을 맞추려고는 하지만 잘못하면 공인의 인격권 보호에 더 무게를 싣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인상이 든다. 공인 보도준칙이란 타이틀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저도 참여하다보니 이 규정을 현장 기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도 든다”고 했다. 그는 유명인의 개념 등 공인에 대한 개념적 정의는 가능해도 실제 특정 개인의 공인여부 판단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라 지적하며 “준칙이란 틀을 갖고 갈지 자율심의를 하는 언론단체의 심의규정으로 사용할지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시대 변화와 맞물려 최소한의 기준 마련은 필요하지만 준칙으로 인한 위축 여지를 해소하기 위해 사후 사례집이나 가이드 마련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 박영례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기사심의실장은 “무차별적인 사생활 보도나 확인되지 않는 보도들에 대해 과거엔 언론의 윤리적 측면에서 저희가 거론을 했다면, 이제는 법적 책임을 받는 상황이 돼 분명히 환경이 바뀌었다. 공인이라고 해서 인격권을 마구 침해해도 된다는 기존의 어떤 관행에 필요하다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공인의 사회적인 영향력이나 역할 등을 볼 때 언론이 보도를 통해 더 자유롭게 검증해야 하는 부분은 남는다”고 했다.
그는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반대로 준칙은 선언적인 의미가 있어서 너무 자세하게 하게 되면 언론의 자기검열이 될 수 있고 보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개인적으로 하고 있다”며 “관련 사례집이나 가이드라인을 통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의견에 저도 동의한다”고 했다.
현창국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은 “과거의 언론 보도 관행과 지금 많이 달라졌고 그런 변화를 따라가야 하는 건 분명하다. 공익성이 있는 경우와 사적인 영역을 구분한 보도준칙은 의미가 있다고 보지만 저는 이제 시작이라 본다”며 “추상적인 준칙만으론 현장 혼란이 클 텐데 사례집이 반드시 나와 쉽게 전달돼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이날 의견수렴에 더해 준칙의 구체적 문구 수정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언론재단은 이를 반영한 준칙을 11월쯤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주성 한국일보 기자(온라인총괄부문장)는 “언론의 잘못된 취재 관행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고 그런 부분들에 대해선 반성도 하고 있다. 하지만 공인 보도준칙이 공인들을 지키는 준칙이 돼선 안 되고 언론의 취재관행을 자율적으로 바로잡는 정도는 돼야 하고 이에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그는 “오늘 공청회를 통해 언론 현업단체와 기자들의 의견을 경청해 충분히 반영하고 자살예방준칙이 4.0까지 나온 것처럼 필요에 따라 재개정을 하며 계속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준칙 제정만으론 그릇된 관행을 한번에 자정하지 못하는 만큼 추가적인 조치도 계속 따라야 할 것으로 본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