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 사진첩 속 외국인, 46년 만에 영화로 만나다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 다큐 '내 이름은 원덕기'로 감독 데뷔

1980년 5월24일 전남대병원 옥상. 붉은 체크무늬 셔츠 차림에 선글라스를 쓴 미국 청년이 긴박한 목소리로 광주의 참상을 설명했다.


“버스에서 내려 골목길을 통해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군인들이 들이닥쳐 모든 사람을 포위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남자라면 누구든, 서 있기만 했다면 누구든지 다리와 머리를 무자비하게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가 23일 서울 마포구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린 ‘내 이름은 원덕기’ 특별상영회에서 말하고 있다. /강아영 기자

이 미국인 청년의 이름은 팀 원버그(Tim Warnberg), 한국 이름 원덕기.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그는 46년 전 우연히 항쟁에 휘말렸고 망설임 없이 광주에 남기를 택했다. 그리고 시민들을 위해 행동했다. 부상자 이송을 도왔고 그가 목격한 참상을 카메라 앞에서 똑똑히 진술했다. 팀의 인터뷰는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영상 일부분으로 남았고, 그 영상을 지난해 말 소중한 오마이뉴스 기자가 낡은 테이프 속에서 건져 올리며 빛을 보게 됐다.


소 기자와 팀의 인연은 오래전 시작됐다. 그는 2019년 말 공개된, 이른바 ‘보안사령부 사진첩’에서 팀을 처음으로 봤다. 참혹한 현장에서 다친 시민을 돕고 있는 모습이었다. 2020년 5·18에 맞춰 해당 내용을 보도했던 소 기자는 지난해 말 힌츠페터 사망 10주기를 맞아 관련 취재를 하다가 우연히 팀의 모습을 다시 발견했다. “힌츠페터가 찍은 1시간짜리 테이프를 보고 있는데 낯익은 사람이 있는 거예요. 옷도 많이 봤던 거고. 팀이라는 사실을 알고 의미가 있겠다 싶어 취재에 착수했는데 이 사람이 가진 스토리가 되게 풍부한 거죠. 그래서 3월에 미네소타도 가게 되고 영화로 ‘내 이름은 원덕기’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비빔냉면을 좋아했던 평범한 청년 팀은 5·18을 겪으며 각성했다. 고향인 미네소타로 돌아간 뒤 의사의 꿈을 접고 한국학을 전공했으며 5·18의 진실을 논문과 인터뷰를 통해 알리는 데 주력했다. 1993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행동은 계속됐다.


“팀이 되게 특별하거나 영웅은 아니거든요. 우리 주변에서 만날 법한 평범한 20대 청년인데 광주를 통해 한층 성장했다는 것, 그게 저한테 크게 와 닿은 것 같아요. 팀의 친구 로버트 그라찬 교수가 말하잖아요.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할 때 얼마나 비범한 일을 해낼 수 있는지. 그 메시지를 관객들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약 14년간 글 기사만 썼던 소 기자에게 이번 영화는 큰 숙제였다. 가장 큰 문제였던 예산은 다행히 817명의 시민이 영화 제작을 위한 펀딩에 참여하며 해결됐고, 편집의 경우 KBC광주방송에서 일했던 김태관 콘텐츠팜 호미 PD가 도움을 주며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23일 서울에서 첫 상영회를 연 영화는 11월 중순까지 특별 상영회를 통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후엔 영화제 출품 중심으로 도전해 보려 해요. 만약 원하시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추가 상영회도 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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