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창간 1백주년’(18일)을 맞아 채수삼 사장(61)을 만났다.
지난 12일 서울신문 6층 사장실에서 만난 채 사장은 건강하고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가급적 상세히 답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채 사장은 특히 서울신문의 경영개선 상황과 인사문제, 제호변경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힌 반면 논조와 관련된 질문에는 다소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편집자주>
-18일은 대한매일신보가 창간한지 1백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의 정체성과 지령을 이어 받은 신문임을 자임하고 있는데요. 우선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18일은 우리나라 언론사 최초로 서울신문이 창간 1백주년을 맞는 뜻깊은 날입니다. 저는 일생을 재계에서 지내다가 지난해 7월 1일 서울신문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번 달은 저의 취임 1주년을 맞는 달임과 동시에 서울신문 1백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달이어서 감개무량합니다.
-일부에선 대한매일신보와 서울신문을 별개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울신문은 항일구국의 사명으로 1904년 7월 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의 맥을 이어받은 정론지입니다. 물론 일제에 의해 매일신보로 제호를 변경, 대한매일신보의 지령만 이어가는 아픈 역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 대한매일신보는 서울신문 혁신호로 재탄생했습니다. 그 때 서울신문이 대한매일신문에 대한 계승이 없었다면 창간호가 나왔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혁신속간이라고 해서 지령 1만3천7백38호를 이어 발간했습니다.
물론 일각에선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지만 이는 혁신속간 사실 자체를 잘 모르거나 신문의 역사를 이념 중심주의로만 보기 때문일 것 입니다. ‘대한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 그리고 서울신문, 대한매일 그리고 다시 서울신문’으로 이어지는 역사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서울신문은 지난 1월 제호를 대한매일에서 서울신문으로 환원했습니다. 물론 사원투표를 통해 결정됐지만 제호변경은 사장께서 심혈을 기울인 사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호 변경 이후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에는 ‘매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신문이 무려 19개나 됩니다. 대한매일 당시 어떤 사람은 저를 매경 자회사 사장으로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한일보로 오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 신문을 제대로 알릴 수 없을 것 같아서 제호를 서울신문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브랜드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제호 변경 후 서울신문의 열독률이 많이 높아졌습니다.
-채 사장께서는 재계에서만 20년 동안 근무한 대표적인 전문CEO 입니다. 신문사 경영과 관련해 평소 어떤 경영철학을 가지고 계십니까?
=외부에서 저를 평가할 때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습니다. 그러나 제 스스로는 목표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성과위주의 업무처리 방식을 최고 강점으로 꼽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번트 리더’(Servant leader)를 지향하기 때문에 개방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언론의 전문성과 혁신을 추구하는 동시에 이를 비즈니스 마인드와 결부시켜 독자가 원하는 신문을 만드는 게 제가 지향하는 바 입니다.
-신문사 사장 일 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을 텐데요.
=재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경영인으로서, 언론사 최초 재계출신 공채 사장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취임했는데 신문시장이 예상보다 거칠어 경영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특히 상품이 단일해 탄력성이 떨어지고 시장개척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또한 언론분야의 전문성이 워낙 강해 적응하는데도 상당기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취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사장님의 전문성에 대해 큰 기대를 했습니다. 특히 내부 구조개혁과 인사 등에 있어서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신문은 인사문제로 많은 내홍을 겪고 있는 등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저는 원칙주의자입니다. 저는 현재의 인사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봅니다. 외부에선 일련의 인사과정을 내홍으로 보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번 문제를 ‘인사 시스템’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으로 보고 싶습니다.
-지난해 10월13일 ‘2004년 비전’ 발표식 때 사원들에게 올해부터 서울신문을 흑자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서울신문의 현 경영상태는 어떤 상태입니까?
=영업정상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모든 여건이 유리하게만 작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지금은 신문시장만 나쁜 것이 아니라 경제 전체가 하강 국면을 걷고 있어요. 신문이라는 것이 경제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현 상태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신문은 당초 목표에는 미달됐지만 전년 동기에 비해선 플러스 신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른 언론사와 비교해 볼 때 결코 나쁜 실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앙일보 등 많은 신문들이 경기가 어려워지자 지면 감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비록 별지이지만 서울신문은 ‘We’나 ‘서울 in Seoul' 등 오히려 면을 늘리고 있습니다. 신문업계의 전반적인 추세와 달리 증면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가 별지 증면을 결정할 당시 메이저 3사는 48면을 발행했던 반면 서울신문은 32면을 발행했었습니다. 따라서 증면이라기보다는 독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가급적 많이 넣자는 취지라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신문시장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여러 전문가들이 신문매체 영향력과 경쟁력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IMF 이후 최대 위기라는 말도 하고 있는데요. 서울신문도 이러한 점에서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요.
=선진국인 미국도 80년대 신문시장의 위기를 경험했고 그것을 극복했습니다.
현재 인터넷 문화의 확산과 공중파의 위세, 기존 거대언론의 부정적 폐해, 극심한 경기침체 등 불리한 시대상황이 종이신문의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서울신문을 살리기 위해 여러 변화와 혁신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서울신문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신문을 만드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하며 이 때문에 제호변경과 타블로이드 섹션 발행을 단행했습니다. 또한 소유구조에서 비롯된 채무문제 해결과 조직의 효율적 개편, 사업다각화, 사원들의 경쟁력 강화 등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경영전략입니다.
-언론계에서는 ‘조중동’과 상반대 되는 말로 소위 ‘한경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서울 경향 한겨레 등 이른바 ‘독립 언론’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겨레나 경향에 비해 서울신문은 자기색깔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서울신문은 6백여 사원들이 회사 주인입니다. 또 편집국장도 사원들이 집적 선출합니다. 따라서 편집권은 어느 때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서울신문은 이념적으로 ‘합리적 진보’, ‘중도 진보’의 좌표에서 전사원의 콘센서스를 맞췄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조중동’ 대 ‘한경서’ 구도는 자의적이며 이분법 혹은 당리댱략적 구분법으로써, 이는 우리 언론이 아직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지 못한 반증이라고 여겨집니다.
-서울신문도 언론개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현 상황에서 언론개혁을 위해 가장 힘써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불공정 행위에 의해 형성된 ‘왜곡적인 언론환경’은 타파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언론개혁을 위해 편집권 독립과 소유지배구조의 분리, 불공정판매 개선, 독자 구제 등에 관한 제반 조치들이 취해져야 하며, 언론개혁은 국민의 편에서 그리고 시장원리에 따라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특히 신문 판매시장의 혼탁은 신문사나 독자를 위해 시급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서울신문은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공동배달제 방안이 마련된다면 동참할 의사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공배제에 찬성하며 지난해 공배제 참여를 신중히 검토했었습니다. 그러나 내부적인 콘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예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공배제가 필요하며 서울신문이 참여해야할 시점이 되면 그 땐 제가 내부 구성원들을 설득할 것 입니다.
-서울신문은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하고 구독률에 있어서 상대적인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신문이 전국지로서 위상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방안이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서울신문 매출의 90%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물론 지방에도 많은 독자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 독자서비스국과 광고국이 연구하고 있지만 비용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12월에는 ‘사장 중간평가’가 있습니다. 중간평가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고 계신지요? 또 남은 임기 동안 역점을 두고자 하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중간평가에 대해선 연연하지 않고 마음을 비웠으며 크게 개의치 않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회사를 정상궤도에 올리느냐에 초점을 맞춰 열심히 일하고 있을 뿐 입니다. 지금 다른데 신경을 쓸 겨를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서번트 리더’로서 서울신문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소하고 나아가 사원들 스스로 시장주의 원칙 아래 경쟁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경영 정상화를 앞당길 수 있는 길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