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249) 일상을 환대할 준비
쉼을 찾아 들른 후쿠오카 오호리 강가에 일몰이 따스하게 비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노을을 감상하며 걷던 중 한 중년 남성의 행동이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강가에 내려앉은 빛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들고 있던 서류 가방을 열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카메라를 꺼내 들었습니다. 거창한 출사라기보다는 일상의 틈새에 늘 곁에 두던 물건을 자연스럽게 꺼내는 듯했습니다.그는 잠시 멈춰 서서 석양이 비치는 강가를 바라보며 진중히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리고 제자리에 선 채 안경 너머로 카메라 화면을 확인했습니다. 바쁘게 지나가는 러너들 사이에서 가만히…
[뷰파인더 너머] (248) 아·마·주를 아시나요?
아마주가 무엇일까? 이 생소한 줄임말은 바로 아파트, 마트(편의점), 주유소의 줄임말이다. 기사를 위해 반복해서 찍는 스케치를 대표한다. 일상은 보통 역사적이지 않다. 우리가 찍는 사진도 대부분 그렇다. 아마주는 멋있지 않고, 기사에 쓰인 사진은 하루짜리 유효기간을 가진다. 동기 A에겐 스케치 지도가 있었다. 전기요금 기사를 위해 필요한 전기 계량기는 어디 골목에 많고, 자영업자 폐업 증가를 설명할 공실 상가는 어느 거리에 있는지 표시해 둔 지도였다. 길을 걷다가도 쓸 만한 장면이 보이면 휴대전화를 켜 위치를 추가했다. 어느 순간부
[뷰파인더 너머] (247) 초록의 계절, 시간을 심다
주말농장을 찾는 사람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전국 단위로 정확히 집계되진 않지만,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정책 자료에서 도시농업 참여 확대를 핵심 목표로 제시하고, 실제로 참여 인구가 수백만 명 규모로 커졌다는 흐름은 분명한 방향을 보여준다. 각 지자체 농장 역시 매년 추첨과 빠른 마감으로 채워진다.도심의 일상 속에서 흙을 만지고 계절을 직접 겪으려는 선택은 이제 낯설지 않다. 지난 주말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한 주말농장을 드론으로 내려다보며 그 흐름을 실감했다. 짙은 녹색 빛 나무들 사이로 노란 황토밭이 드러나고, 그 위에는 어린
[뷰파인더 너머] (246) 공중으로 뛰어오른 봄
회사 앞 공원에 초등학생들이 현장 체험을 나왔다. 초록빛 나무가 가득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동시에 몸을 튕겨 올린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한 번에 공중으로 떠오른다.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하늘로 뻗은 팔과 막 땅을 떠난 발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까지 더해져, 그 짧은 순간이 유난히 또렷하다. 마치 시간이 잠깐 멈춘 것처럼.아이들은 몇 번이고 다시 뛰어오른다. 숨이 차오르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선생님이 내준 사진 과제를 위해서다. 이유는 단순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인다.그 모습을 보며
[뷰파인더 너머] (245) 딜링룸 경쟁
모니터 속 숫자와 그래프로 가득한 서울의 한 은행 딜링룸, 오후 3시30분 종가 시간이 되면 그날의 경제 뉴스에 따라 이곳은 사진기자들의 셔터 소리와 부산한 발걸음 소리로 가득 채워진다. 이 은행은 과거부터 원달러 환율이나 코스피 지수 등 그날의 뉴스 사진에 맞는 스케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사진영상 기자들에게 딜링룸을 개방해 왔다. 은행 직원이 각종 지수가 표시되고 있는 전광판 앞을 지나가면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코스피 지수가 올라가는 긍정적인 뉴스에 맞는 사진이 필요하면 직원의 웃는 모습을 한참 동안 기다리곤 했
[뷰파인더 너머] (244) 실수할 용기
실수할 것 같아서 하려던 걸 제대로 못 하지 말고, 차라리 과감히 실수해 버려. 지난달 전국에서 단 하나뿐인 주니어 여자야구단을 만나러 갔던 날 경기장에서 우연히 들은 말입니다. 야구가 좋아 모인 소녀들이지만 올해 첫 경기를 앞두고 어딘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평소라면 자신 있게 했을 플레이도, 실수를 걱정하며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감독이 건넨 한마디였습니다. 잠깐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그 말을 들은 뒤 선수들의 움직임은 달라졌습니다.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는 동작이 눈에 띄
[뷰파인더 너머] (243) 다시 4월, 노란 리본 앞에서
기자의 일은 좋든 싫든 현장으로 향하는 데서 시작된다. 특히 여러 분야를 오가는 사진기자는 뉴스 장면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게 된다. 사건의 시작과 끝, 혹은 그사이 흘러가는 시간을 기록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현장은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 움직인다. 내게 세월호가 그렇다.다시 4월이다. 노란 리본이 걸리는 시간, 그 12번째 봄을 맞는다. 하교 후 생존자 명단을 확인하며 숨죽여 울던 나는 이제 카메라와 펜을 든다. 나의 교복은 옷장 깊숙이 들어갔지만, 유가족의 노란 점퍼는 여전히 거리와 광장에 남아 있다.현장에서 마주한 노란 점퍼
[뷰파인더 너머] (242) 뿌연 하늘, 머뭇거리는 봄
겨울철 공기의 탁함을 계절의 일부처럼 받아들였다. 창문을 닫은 채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난방과 멈춘 공기 속에서 미세먼지는 조용히 쌓이면서 사람들은 그 무게를 익숙하게 견뎌냈다. 다가올 봄과 따뜻한 햇살, 맑은 하늘을 기대하며. 하지만 대한민국 봄의 공기는 다른 방식으로 흐려진다. 황사를 타고 온 먼지들이 멀리서 건너와 하늘을 옅게 덮고, 또렷해야 할 풍경을 천천히 지워버린다. 맑아질 듯하다가도 다시 흐려지는 날들이 이어지며 푸른 하늘에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그 차이를 더 크게 느낀다. 겨울에는 참을…
[뷰파인더 너머] (241) 공존
울산 도심이 여명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시간, 태화강 상공에 검은 물결이 선회한다. 겨울을 나기 위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떼까마귀다. 빌딩 숲 사이에서 펼쳐지는 수만 마리의 군무는 울산이 단순한 산업도시가 아니라 생태도시임을 증명한다.시민들의 노력으로 맑아진 태화강은 철새가 머무는 휴식처가 되었고 강변을 따라 자리한 십리대숲은 천적을 피해 숨을 수 있는 안식처가 되었다.울산의 하늘은 그렇게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철새들의 무대가 되었다.그러나 이 경이로운 풍경의 이면에는 또 다른 목소리도 있다. 상가의 간판과 인도, 주차된 차량 위
[뷰파인더 너머] (240) 이탈리아의 반려견 사랑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작은 카페. 잔잔한 음악과 적당히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서 맑은 눈동자와 금색 털을 가진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견주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익숙한 공간인 듯 테이블 아래 공간을 자리 잡고, 견주가 맥주와 피자를 다 먹을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 밀라노 아르코 델라 파체 인근의 한 슈퍼마켓을 찾은 남성 역시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장을 보러 나왔다. 반려견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어린 소녀들을 제외하면, 장을 보는 다른 손님들은 반려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이탈리아 식당, 마트, 대중교통에선 반려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