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을 취재하는 자세
소설 어머니를 쓴 막심 고리끼는 구소련 사회과 교과서 서문에서 소련식 사회주의의 대표적 성과를 중앙아시아의 시르다리야강과 아무다리야강의 물줄기를 돌려서 키질쿰 사막을 개간한 농업혁명으로 꼽았다. 소련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대 흉년과 기근을 겪었고, 굶어 죽는 사람이 즐비했던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비약적인 농업생산력이 굶주림과 추위를 극복해준 것은 맞다. 그러나 개간 후유증으로 아랄호가 사라져가고, 호수변 주민은 환경오염으로 새로운 풍토병에 노출되어 고통을 받게 될 것을 고리끼는 몰랐을 것이다. 매번 자연은 인간이…
산불, 더위, 홍수, 태풍 그리고 언론
겨우내 추운 나날 지나고 새싹 돋아날 무렵, 봄날의 햇살이 주는 따스함보다 기록적인 산불 소식이 더 익숙하다. 이번 여름엔 평년보다 훨씬 더 일찍 찾아온 열대야 그리고 평년보다 훨씬 늦은 장마가 있었다. 그렇게 수도권엔 을축년 대홍수에 버금가는 큰 홍수가 났다. 그다음은 태풍이다. 악명 높은 루사, 매미보다도 더 큰 위력을 가진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에 닥쳤다.자연재난이 닥칠 때마다 온종일 방송 뉴스를 가득 메우고, 일간지 헤드라인까지 가득 채운다. 그러나 대부분 보도에선 근본 해결책에 대한 접근이 없어 다소 공허함을 남긴다. 뉴스는
'개발'하고 싶을 때만 써먹는 '청년', '반지하'
이번 여름, 폭우로 인해 반지하에 거주하던 주거취약계층, 장애인, 빈곤층, 노동자가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기후위기 재난으로 열악한 주거에 살던 사람이 생명을 잃을 수 있다는 것에 정부는 그 책임을 통감하며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언론 등이 보다 다양한 대안과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시킬 때였다. 그러나 카메라의 초점은 또다시 주택 가격을 향하고, 부동산 시장이 하락 국면에 접어들어 곡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기사가 냉큼 쏟아진다. 그 많은 언론이 주목하는 집이란, 여전히 자산 증식 수단이다.최근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 주택 재개발 2
K-POP이 대단하다고 새삼 느낀 순간
나는 주로 일본 매체에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는데 가끔 K-POP 관련 원고 의뢰를 받을 때도 있다. 아무래도 수요가 많은 건 영화나 드라마보다 K-POP이다. 최근 아이돌 그룹 NCT127 유타(나카모토 유타)에 관한 원고 의뢰가 들어왔다.세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일본인 20명에 관한 기획 기사라고 한다. 20명 중 1명으로 유타가 뽑힌 것이다. 나는 K-POP 아이돌로 데뷔한 일본인이 꽤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중 누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여러 분야의 20명에 들어간 유타가 어
디지털 구독료 하락에 대처하는 자세
국내 언론들의 디지털 전환은 왜 더딜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하나만 꼽으라면 매출과 수익 축소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미국의 관련 자료를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미국 전역의 대도시 지역일간지 20개를 표본 조사한 텍사스대학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발발 후 9개월(2019년 대비 2020년 3분기 현재) 동안 인쇄 신문 구독자는 평균 21% 줄고, 디지털 구독자는 64% 늘었다. 문제는 구독료다. 이들의 디지털 구독료(무제한으로 기사를 볼 수 있는 올 액세스 상품 기준)는 연평균 165달러(약 22만원). 연평균 인쇄판 구
미디어가 재현하는 자폐에 대한 단상
우영우 신드롬이다. 오징어게임을 비롯하여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인기를 끈 많은 드라마들이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설정과 장면 묘사로 입방아에 오른 데 반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배우들의 수준 높은 연기력과 더불어 여성 자폐성 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하고 부딪히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로 많은 이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드라마 속 우영우는 이전에 미디어에서 재현한 자폐인이나 장애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일단 나이부터 다른데, 이전에 자폐를 다룬 영화인 증인이나 말아톤의 주인공이 10대 여학생이나 20대 초반의 청년 모습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3주년에 보는 '우영우'
(*이 글에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요즘 평소에 잘 안 먹던 김밥을 자주 먹는다. 얼마 전에는 딸아이랑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같은 단어 맞추기 놀이를 했다. 회전문을 보면 왈츠가 떠오른다. 이쯤 되면 드라마에 단단히 빠진 게 맞다.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자꾸 생각나는 드라마다.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자폐 변호사가 주인공인 점이나 모든 법률 분쟁은 해피엔드로 마무리되는 점 등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지점들이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하는 데는…
드라마 '우영우'에서 발견한 것
웰메이드 드라마라 부르는 건 섣부를까. 그러나 이렇게나 빠르게 대중의 눈을 사로잡은 드라마도 드문 건 사실이다. ENA채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천재적 두뇌와 자폐 스펙트럼을 동시에 지닌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 분)의 대형 로펌 생존기이다. 단 4회 만에 자폐인 변호사 우영우를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새삼 미디어의 위력을 실감한다. 정말 오랜만에 OTT 서비스에서 방송 채널로 리모컨 설정을 바꾸고 본방사수를 했다. 단체 메신저 각 방과 오프라인 모임에서 감상 소
신문용지 갈등, 해법이 필요하다
오래된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해법이 필요하다. 2010년 신문의 위기극복을 위한 대토론회에서는 구체적 실천 방안의 하나로 효율적인 신문고지 관리와 가격안정화를 제안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법은 찾지 못했다. 2021년도에 신문기업에서 사용한 신문용지는 총 41만8000톤이다. 신문용지는 품질과 구매량, 결제방식에 따라서 가격에 차이가 있지만 톤(롤)당 평균 75만원이었다. 어림잡아도 작년 1년간 신문업계가 지출한 비용은 3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신문용지 가격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신문제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는 '기후 장르'
기후 문제로 해수면이 높아지고 강이 말라버리며 자원이 부족해지고 종말의 위기에 빠진 후손들이 엔트로피를 되돌리는 기술로 인버전(시간 역행)을 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기후위기를 방관한 선조인 현대 문명을 침략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20년 블록버스터 작품 테넷의 스토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놀란 감독이 과학 장르(Science Fiction) 영화의 대가인 만큼 그의 영화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다루기 좋은 소재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시간역행이나 엔트로피 등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기술을 대중에게 쉽고 흥미 있게 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