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얼마나 윤리적인가
김만배씨와 기자들의 거액 돈거래를 계기로 언론윤리가 다시 많이 거론된다. 많은 언론이 언론윤리의 추락을 개탄하고, 특집 보도도 했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혹시 우리는 언론윤리 문제를 너무 사건화하는 건 아닐까?언론윤리 문제의 사건화를 걱정하는 이유는 우리가 종종 언론윤리 문제의 복잡성과 구조적 측면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사실관계가 충분히 드러나기도 전에 평가를 끝내고 금방 어딘가에서 터질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이다. 윤리 문제가 어느 언론사, 나아가 어느 언론인에게나 문제가 될 수
문제가 만연한 시대, 언론의 역할
만 9년을 못 채운 채 기자를 그만두고 정책연구자란 정체성으로 지낸지가 5년 가까이 지났다. 현직 때보다 기자의 일은 언론계에서 통상 인식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저널리즘이 위기란 말이 나온 게 하루이틀이 아니고, 기자란 직업의 명칭은 멸칭으로 더 자주 호명되는 이 시대에 이게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공론장에서 다뤄진만큼 진전이 있든, 퇴보를 하든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공론장은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모색하게 한다. 대안이 정책으로 실행된 뒤에 효과…
지워진 장면들에 대한 의도적 기록
많은 투쟁이 숫자로 기억된다. 몇 년간의 복직 투쟁, 몇백일의 고공 농성, 몇십일의 단식.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투쟁 또한 1842일의 광화문농성으로 회자된다.시간의 길이는 투쟁의 절실함을 어느 정도 드러내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지루한 하루를 견뎌냈을 사람들의 피로와 땀내, 잦은 막막함과 종종 찾아오는 연대의 환희와 같은 지난 시간의 구체적 경험이 그 숫자에는 없다. 그 시간을 언론도 보도하지 않는다. 보도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알 수 없고, 과정을 삭제한 결과 중심의 보도는 단지 싸움의 승패만을 알릴 뿐이다. 여기에는 언론의 습
적대의 시대 언론의 역할
2022년 8월, 여론조사기관인 유고브와 이코노미스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43%가 10년 내 미국에서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쩌다 이렇게 많은 미국인이 내전을 걱정하게 된 것일까?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따르면 그 주된 원인은 미국 정당정치의 양극화에 있다. 특히 1990년대 공화당 지도부였던 뉴트 깅리치의 극단주의가 시작이었다. 깅리치는 민주당을 항상 부정적으로 묘사하도록 공화당원들을 독려했을 뿐만 아니라, 하원의장이 된 이후에는 아예 민주당과 타협불가를 방침으로 정했다.깅리치 이후
신문 수익모델과 온라인 뉴스 페이월
저널리스트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심지어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통적인 저널리스트에 대한 설명은 유명한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의 글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조판을 가르치고 경영 방법을 설명하는 것은 저널리즘 학교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저널리즘은 상업성을 추구하지 않는 것을 넘어 반상업적이어야 하며, 오히려 필요하다면 비즈니스를 희생하며 사회적 지식과 문화를 높여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오늘날 뉴스 제작을 위한 기술에 무지하고 수익 구조에 신경 쓰지 않는 저널리스트가 가능할까?워렌 버핏은 1
과거사에 대해 일본은 사과하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서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왜 일본은 사과를 하지 않는가?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같은 과거사에 대해 왜 사과하지 않느냐는 것인데 한번도 안 한 건 아닌데라고 답하면 가끔 그럴 리가 없다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해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듯하다. 사과는 했지만 그걸 부정할 만한 일본 정치인의 발언이나 태도 때문에 사과를 못 받은 것처럼 느낀다라고 하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사과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해라고 되풀이하면 일본 쪽에서도
영화제가 영화상영회가 아닌 이유
필자는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 비프(Community Biff)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관객이 직접 상영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다양한 부대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행사인데,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상영하고 이후 박찬욱 감독과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 대한 관객 독서 토론을 진행하거나 지역 주민들과 연계해 함께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기도 했다. 동네방네 비프는 영화제가 지역민의 생활 공간 거점을 직접 찾아가는 행사다. 기존 해운대나 남포동 같은 곳을 벗어나 범어사, 유라리 광장, 차이나타운 등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
'신(神)'이 만약 '사용자'라면
어떤 노동자가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녀는 노동위원회에 해고가 부당하다며 구제신청을 냈다. 다행히 노동위는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해고가 부당하니, 즉시 원래의 직으로 복직시키라는 이른바 원직복직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 판단에는 전제가 있었다. 바로 회사가 그동안 프리랜서로 취급해왔던 그녀가 사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법률적 판단이었다. 그러니 입사 당시부터 근로자라고 판명난 그녀가 돌아갈 자리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정규직 근로자일 것이다.그런데 회사는 그녀를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복직시켰고 근로계
못 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근사한 재즈 바와 달콤한 튀르키예 간식이 있는 곳. 익숙한 풍경에 내가 한창 이태원 골목을 쏘다니던 딱 그 또래 청년들이 쓰러져 있었다. 심정지 인원만 수십에 달한다는 속보를 봤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언론에서 사망이 아닌 심정지라고 하니 기다려보자라는 말들이 오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현장에서 심정지로 분류된 환자 대부분 사망판정을 앞두고 있다는 걸 사회팀 기자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마음을 이태원에 보낸 채 뜬눈으로 밤을 샜다.새벽 내내 언론은 참혹한 참사현장을 빠르고 생생하게 전달했다. 빠르고, 생생해선 안 될 것들이었
안다만의 회색바람까마귀
2004년 12월26일,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15만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 쓰나미는 리히터 규모 9.0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피해를 본 나라만도 인도부터 베트남까지 12개 국가였으며, 그 물결이 아프리카의 서부 해안에 닿았을 정도였다. 이 참사로 북반구의 매서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동남아시아에 여행을 왔던 관광객들도 속절없이 죽어갔다. 재난은 TV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었고, 희생자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하며 초혼했던 시기였다.그러나 이 쓰나미에서 재산을 잃었어도 목숨은 부지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