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자상] 김건희 '집사 게이트'
살아있는 권력의 비리를 취재해 폭로하는 것은 코끼리 사냥과 비슷합니다.맨 처음 코끼리에게 창을 던지는 사냥꾼은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창을 아무리 날카롭게 벼려도 단 한 번의 창질로 코끼리가 쓰러지는 일은 없습니다. 날카로운 창을 맞고 상처 입은 코끼리는 화가 나서 창을 던진 사람을 향해 달려듭니다.옆에 있는 사냥꾼들이 도움을 주면 좋으련만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좀처럼 없습니다. 코끼리가 이기나 사냥꾼이 이기나 멀뚱히 지켜봅니다. 코끼리가 사냥꾼을 짓밟으면 다들 고개를 돌리고 외면합니다.최초의 사냥꾼이 다시 일어나 코끼리에게 계속…
[이달의 기자상] 캄보디아 '인질 외교'에 발 묶인 한국인들
작년부터 캄보디아 거점 피싱 조직들을 추적하면서, 풀리지 않는 질문 하나가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캄보디아에서 붙잡힌 한국인 범죄자들의 송환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가. 경찰청은 원래 인터폴 수배자는 송환이 오래 걸린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지만, 저는 그 이면에 다른 사정이 숨어 있다고 직감했습니다.진실을 향한 갈증 하나로 프놈펜으로 향한 결과, 유관 부처에서 숨기기에 급급했던 사실들을 하나씩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캄보디아 정부가 한국에 체류 중인 자국 반정부 인사의 송환을 요구하며 우리 국민을 볼모로 범죄자 맞교환
[이달의 기자상] 언론인 선행매매 사건 추적
언론인 선행매매 사건 추적 보도는 취재 과정만큼이나 상신 과정이 간단치 않았습니다. 제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티키타카들이 잘 정리가 안 됐기 때문입니다. 여러 층위의 생각이 이런저런 감정과 섞여 복잡했습니다. 결국 상신하자란 결론에 이르렀는데 무엇보다 우리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세상이 손톱만큼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단 그 믿음으로 권력도, 기업(인)도, 제도도 비판합니다. 설령 그 대상에 우리 기자가 오른다 해도 비판은 유효하고, 믿음은 변함없습니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감시는 더 나은 기자 일, 세상을 위한 첫걸음이 될…
[이달의 기자상] 서민 울리는 민생범죄
불법사금융, 전세사기, 보이스피싱, 마약. 낯설거나 새로운 범죄는 아니지만 오래도록 곁에서 사라지지 않는 범죄들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시작은 일선의 경찰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범죄 형태의 변화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오늘날 사채업자는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피해자를 협박하고, 단 두 대의 컴퓨터로 수백명의 피해자를 양산합니다. 직접 노출되는 위험은 낮추면서 피해자들의 삶을 가장 깊숙이 파고드는 형태로 변화한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범죄의 흐름을 쫓지 못하면 결국 피해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달의 기자상] 경북 안동 고교 시험지 유출 사건
이번 취재는 우연히 시작됐다. 한 고등학교 시험지 유출 의혹 제보를 처음엔 가벼운 해프닝으로 여겼지만, 확인할수록 사건의 무게는 달랐다. 전직 기간제 교사, 학부모, 내부 관계자가 조직적으로 시험지를 빼내려 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교육 현장의 최후 보루라 믿었던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취재 과정은 쉽지 않았다. 관계자들은 만나기 어려웠고, 학교는 말을 아꼈다. 아이들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언론 접근을 막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침묵은 은폐였다. 자료와 증언을 모아 허술한 보안 체계와 내부자 공모를 확인하는 순간, 내 기
[이달의 기자상] 종량제 봉투는 쌈짓돈? 8년간의 비밀
저도 상식적으로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이번 취재가 시작되고 8년 가까이 7억 원 가까운 쓰레기 종량제 봉툿값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급작스럽게 기자회견을 자청한 제주시장이 내놓은 답입니다. 무책임했습니다. 환경부는 2008년부터 내놓은 지침을 통해 쓰레기 종량제봉투는 그 자체로 돈의 가치를 가지는 유가증권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에서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인쇄하는 인쇄소는 빗대어 이야기하면 조폐공사인 셈입니다. 거기에서 찍어내는 화폐나 다름없는 종량제 봉투를 8년 동안 한 공무직이 빼돌렸고 그 뒤에는 카카오톡과 엑셀
경향 '오광수 차명 부동산' 보도, 정권 초 언론감시 사례
제418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에는 9개 부문에 걸쳐 총 62편이 출품돼 심사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총 4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이번 달 출품작 중에는 전반적으로 사회적 의제를 다룬 보도가 눈에 띄었다. 유사한 주제를 다룬 기사라도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하고 집요하게 파고든 취재와 창의적인 기획, 그리고 문제의식과 진정성이 뚜렷한 기사들이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취재보도1부문에서는 경향신문의 오광수 민정수석, 차명으로 부동산 관리 보도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민정수석으로 지명된 오광수…
[이달의 기자상] 오광수 민정수석, 차명으로 부동산 관리
친여 성향 매체들을 중심으로 오 전 수석에 대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자 결국 자진 사퇴로 선회.오광수 전 민정수석이 차명 부동산 의혹으로 낙마하자 한 언론은 이를 여권 내 권력투쟁의 결과로 해석했습니다. 여권 인사가 경향신문에 제보해 차명 부동산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는 듯했습니다. 온라인 기사에는 누가 봐도 검찰에서 흘린 듯, 검찰이 캐비닛 열었네 같은 댓글이 달렸습니다.둘 다 아닙니다. 이 기사는 제보자가 없습니다. 핵심 고위공직자들이 임명되는 정부 출범 초기에는 으레 그렇듯이 인사검증을 해야 하기에 취재를 시작했을 뿐입니다. 판
[이달의 기자상] 은폐-해킹당해도 숨는 기업
SKT디올서브웨이파파존스예스24SGI서울보증까지. 올해 상반기 해킹을 당한 기업들입니다. 이들은 내부 자료가 유출되고 서버가 마비되자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복구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해킹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기업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해킹을 당해도 절대 알리지 않고 꽁꽁 숨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열에 아홉이 해킹 사실을 은폐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한 뒤 왜 신고를 안 하는 걸까에서 시작한 호기심은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위기감을 불렀고 실태를 파헤쳐보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졌습니다.은폐가 계속된다면 해킹은 영원
[이달의 기자상] 소멸: 청년이 떠난 자리
고백하자면, 서울에서 일하면서 지방소멸을 체감하긴 쉽지 않았습니다. 작년 여름 해양쓰레기 취재로 전국 어촌을 돌아보고 나서야 그 심각성을 조금이나마 느꼈습니다.이후, 지방에 살던 30대 지인이 연봉 높은 대기업 일자리를 포기하고 서울로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탕후루 가게도 하나라 줄 서서 먹어요라는 경험담이 웃어넘길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청년이 눈이 높다는 식으로 치부해도 되는 걸까. 어촌은 물론 광역시마저도 청년을 붙잡지 못하는 현실이 그제야 서늘하게 다가왔습니다. 경제부 기자로서 불균형과 양극화에 따른 성장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