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회담과 외톨이
한·일 정상이 3년6개월 만에 자리를 같이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냉각된 한·일 관계를 녹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정상이 만나야만 실무자 간 협의가 가능해지고 위안부문제, 교과서문제, 영토문제 등 현안을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거는 일본 언론의 기대감은 취재진의 규모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수백명의 일본 취재진들이 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진을 쳤고 방송사들은 특파원의 현지 리포터로 속보를 앞다투어 전달했다. 그렇지만 관련 보도는 관계 복원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정상회담 개최에 의미를 부
조지 워싱턴의 흑인노예 318명
미국 워싱턴에서 차로 포토맥 강을 건너 남쪽으로 20분 정도 가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살았던 집이 있는 마운트 버논이 나온다. 지난 주말 가족과 이 국가 사적지를 찾았을 때 많은 관광객들이 워싱턴이 기거했던 저택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된 방이 21개 있는 대저택이었다. 보채는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우리 부부는 기다리는 것이 여의치 않아 저택 주변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대저택 주변 낮은 건물들로 향했다. ‘감독관의 숙소’를 지나자 나타난 곳은 ‘노예들의 숙소’라는 팻말이 붙은 건물이었다
‘셀러브리티 저널리스트’의 이직
BBC 뉴스의 경제 편집자인 로버트 페스턴(Robert Peston)이 지난 7일 ITV의 정치 편집자로 이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몇 주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BBC와 ITV의 ‘셀러브리티(유명) 저널리스트 잡기’ 경쟁에서 후자가 이긴 셈이다. 페스턴은 영국 주택대출회사인 노던록의 파산을 비롯해 경제 분야에서 수많은 특종을 올리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2009년에는 로얄 텔레비전 소사이어티가 주최한 저널리즘 시상식에서 ‘올해의 전문기자’상과 ‘올해의 텔레비전 저널리스트’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BBC의 경
위기의 브라질, 다시 뜨는 룰라
요즘 브라질 사정이 말이 아니다. 국가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강등되면서 금융시장에서 신뢰를 잃고 있고, 공식 통화인 헤알화의 가치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1930년대 초반 이후 처음으로 올해와 내년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경제 전반을 뒤덮고 있다. 저성장과 헤알화 약세 때문에 브라질 국민 1인당 소득은 4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정부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싸늘하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호세프 대통령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는 긍정 10%,…
‘양치기 소년’이 된 중국 경제 붕괴론
“중국발 세계 경제 위기에 대비하라.”최근 전 세계 언론을 도배하고 있는 기사 제목이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서구 유력 매체들은 마치 중국 경제가 당장 무너질 것 같은 보도들을 내 보내고 있다. 중국이 더 이상 세계 경제의 견인차가 아닌 세계 경제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시각들도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은 2007년 14.2%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7%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6월 5000선까지 뚫고 치솟았던 상하이종합지수는 이후 속절없는 폭락세가 이어지며 최근에는 3000선도 무너졌다. 부
안보법안 반대여론 왜곡하는 일본 보수언론
2007년 선정된 일본의 올해의 유행어에 ‘KY’란 단어가 있다. 일본어로 ‘구키 요메나이’라는 머리글자의 알파벳을 차용한 말 줄이기 문화의 일종이다. 한국어로 표현한다면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상황에 맞는 언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릴 때 사용한다. 개인의 KY도를 측정하는 심리 테스트가 심심찮게 인터넷에서 주목을 받기도 한다.최근 들어 일본 언론을 대상으로 ‘KY도’ 조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여론의 움직임을 애써 무시하려는 일본 언론의 행태가 심심찮게
샌더스와 트럼프 현상
미국 대통령 선거를 1년2개월여 앞두고 대선판의 주인공은 각각 민주, 공화 양당의 유력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67)과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62)가 아니다. ‘시간이 내 편’이라고 믿는 두 사람은 가급적 논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며 낮은 행보를 하고 있다.대선의 초반 흥행을 주도하는 인물은 무소속 상원의원으로 사회주의자임을 표방하는 버니 샌더스(73)와 부동산 갑부로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을 진행한 도널드 트럼프(69)다. 샌더스는 대선 풍향계라고 하는 아이오와주의 민주당 지지자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오늘의 BBC, 불확실한 미래
‘오늘의 BBC : 불확실한 미래(The BBC Today : Future Uncertain)’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현재 BBC가 처한 상황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칙허장 갱신 협상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보수당 정부는 거칠게 ‘수신료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지난 5월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후 캠페인 기간 동안 못마땅했던 BBC에 대한 적개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 온 터였다. ‘BBC의 황제적 야심’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그 규모를 축소하라고 주장해 논란을 빚어 온 조지 오스본 재
브라질 중도좌파 정권 위기의 실체
브라질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3월15일과 4월12일에 이어 지난 16일에도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동시에 시위가 벌어졌다. 현지 언론은 240여개 도시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다고 전했다.시위 현장에서는 집권 노동자당에 대한 비판과 정권 퇴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브라질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중도좌파의 대부’ 룰라 전 대통령도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중도좌파 정권에 대해 전면적인 거부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브라질 사상 첫 여성대통령이라는 거창한 수
중국 파견 특사의 미국 사랑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특사단을 보낸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2014년 10월)“우리(한국)에겐 역시 중국보다 미국이다.”(2015년 7월)첫 문장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한 중국 매체와 인터뷰 중 한 말이고, 두 번째 문장은 김 대표가 최근 미국에서 한 이야기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김 대표는 2013년 1월 박 대통령이 보낸 특사단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당선인 자격으로 첫 특사단을 파견하며 미국이 아닌 중국을 택했다. 그리고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본부장과 심윤조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