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기자를 하고 싶은 학생 없나요?"
전공생 진로 탐색 특강을 위해 기자 출신의 강사분을 초청한 적이 있다. 다양한 직종을 경험하셔서 그런지 전공 분야 전반의 직무와 전망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짧은 특강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수줍어하는 학생들을 대신해 내가 던진 질문이 있었다. 만약 자제분이 미디어 관련 전공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잠시 당황하던 그분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미 아이들한테 아빠는 공대 가는 거 아니면 등록금 대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이번 학기에 담당하는 수업 중 하나는 저학년을 위한 개론 수업이
'먹을 수 있는 여자'
먹는다는 행위는 인간의 삶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먹을 수 있는 여자의 주인공 메리언 매켈핀은 먹는 것을 거부한다. 거의 비정상에 가까울 정도로 정상인 메리언은 갓 대학을 졸업하고 설문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 전 전도유망한 변호사이자 괜찮은 외모의 남성 피터로부터 당신만큼 현명한 여자는 없다며 청혼을 받았다. 그러나 피터의 청혼 이후, 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메리언이 노력하면 할수록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레스토랑의 스테이크였다. 하지만 달
'익명 사회' 길목서 벌어지는 신상공개 논란
살인 사건 피의자 신상 공개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아파트 흡연장에서 만난 주민을 폭행해 숨지게 한 20대 남성의 신상은 공개됐지만 일본도로 주민을 살해한 30대 남성은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도 살해 피의자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서울경찰청은 피의자가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이 있고, 피해자의 유족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봤다.피의자 신상공개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일본도 살해 사건 기사에는 범행 동기가 공익이라며 범죄를 옹호하는 댓글이 달려 충격
언론이 무서워 정당을 이렇게 운영하다니
한국의 정당들은 지난 20년간 법을 제대로 지키며 운영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 사실을 정당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알고 있으나, 언론이 무서워서 혹은 언론이 만들어낼 여론이 무서워서 이 상태를 방치한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현행 정당법 제30조에는 정당에서 월급을 받는 직원의 수를 제한하는 규정이 있다. 법률에선 정당의 유급사무직원수 제한이란 표현을 쓴다. 이 법률의 1항은 정당에 둘 수 있는 유급사무직원은 중앙당에는 100명을 초과할 수 없으며, 시도당에는 총 100인 이내에서 각 시도당별로 중앙당이 정한다이다. 일
언론과 권력의 거리
8월21일 미디어오늘이 현직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국가정보원 직원이 친분 있는 여성 기자들의 사진을 공유하면서 성희롱 대화를 일삼아 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확인된 피해자만 이미 최소 3명이고, 그 대화 내용은 지면에 옮기기 난감할 정도다.특히 핵심 권력기관의 직원과 유력 언론기관의 고위직을 담당한 이들이 타인의 사진을 아무런 허락 없이 사용하고, 자신들의 성적 만족감을 위해 성적 희롱과 모욕을 가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할 행위다.더하여 이번 사건은 반드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이 일이 언론의
n번방 사태 겪은 한국 사회서 '또', 언론은?
한국 사회는 현재 역사 논란이 뜨겁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이 강제동원 표기를 거부했음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합의해 버렸다. 독립기념관장에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김형석씨가 임명되면서 광복절 기념식은 두 동강이 났다. 나라가 망했는데. 일제시대 국적은 일본이라던 김문수씨는 고용노동부 장관에 올랐다. 여기에 독도 조형물 철거를 둘러싼 논쟁과 한국학력평가원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에 이르기까지, 언제 끝날지 모를 날들이다. 그 중심에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기후 위기 문제와 저널리즘의 책임
기후 위기 보도는 이 문제가 글로벌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시민들이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 이에 따라 언론 보도가 실질적인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기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보도하기 어려운 주제로 꼽히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어 기후 변화에 대한 체감도가 높아지면서 시민들 역시 기후 위기 문제를 보다 더 가깝게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언론 역시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기후와 환경 문제를 다루고 있다. 최근 국내 여러 언론사에서 기후 위기 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보도를 보
인공지능의 원죄와 새로운 생태계
퍼플렉시티(Perplexity)는 2022년에 출시된 인공지능(AI) 언어모델 기반 검색 엔진이다. 기존 검색 엔진이 관련성 높은 링크 목록을 제공하는 것과 달리 퍼플렉시티는 질문의 문맥을 이해하고 개인화된 검색 결과를 요약해서 제공한다. 이용자는 추가 질문을 통해 연속된 맥락에서 검색이 가능해 기존 검색과 차별화된 이용자 경험이 가능하다. 다양한 활용 가능성으로 인해 2024년에는 30억 달러(약 4조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으며, 월간 1500만명 이상이 접속하고 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자연어로 답변을
뉴스를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출판 편집자들에게 업무 중 가장 하기 싫은 일을 물어보면, 열 명 중 대여섯 명은 보도자료(news release) 작성이라고 할 것이다. 그간 만나온 편집자 중 상당수가 보도자료 쓰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말했는데, 개인적으로 글쓰기가 어려워서일 수도 있지만 힘들게 제작한 신간이 어떤 매체에도 소개되지 않을 거란 두려움도 깔려있다. 지면은 제한되어 있는데, 매월 발간되는 신간 종수는 5000종이 넘다보니 그 와중에 기자의 선택을 받아 뉴스가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2000년대 이후 학술계간지 발간소식은
익명 취재원, 언론사 안에선 검증하고 있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익명의 취재원이 등장하는 기사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가령 지난 12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정부의 의료 정책에 관한 기사에서는 6개의 인용문 중에 5명의 발언자가 익명 처리돼 있었다. 나머지 하나도 당일 나온 정부의 발표를 정부를 주어로 쓴 것이었다. 사람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이다.정부 고위 관계자가 정책의 배경을 설명하고, 세브란스병원의 한 교수와 빅5의 한 신경외과 교수는 그런 발표의 문제를 지적했다. 과거의 대형병원 문제는 의료계와 의료계 인사들의 말로 제시된다. 이런 기사를 읽다 보면 정말 당일에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