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안 되는 이유
2015년 4월 중순, 아직 눈이 덮여있는 설악산에 오른 적이 있다. 1박 2일에 걸쳐 강원 양양군 오색리~설악산 끝청봉 사이를 오르내린 당시 산행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예정지가 어떤 지역인지 직접 살펴보기 위한 취지였다. 등산로도 없고, 지형도 험준한 사업 예정지를 기다시피 올랐던 설악산에서 기자는 환경영향평가서나 보도자료 뒤에 숨어있는 설악산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당시 찾아낸 첫 번째 이유는 안전성 문제였다. 기자가 지상에서 경험한 초속 19~20m에 이르는 강풍은 성인 남성이 뒤로 밀려나는…
'오너 리스크' 유감
SM엔터테인먼트는 2019년부터 주주들과 다퉜다. 이 회사 최대 주주인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 개인회사인 라이크 기획이 충돌 배경이었다. SM은 라이크기획에 음반의 자문프로듀싱 수수료 형태로 총 1600억원을 지급했다.하지만 자문프로듀싱 대가로는 과도하단 전문가와 투자자들의 지적이 많았다. 이 전 총괄이 대주주 지위를 악용해 회사 현금을 빼가고 있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대주주의 편법행위 의혹이 불거지자 SM은 행동주의펀드의 표적이 됐다. 행동주의펀드는 투자한 기업에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주주 권
유물의 뒷모습
6일 기자가 찾은 국립경주박물관 불교조각실. 지난해 12월 재개관하며 총 70점의 유물을 선보인 불교조각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국보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다. 바닥부터 벽, 천장까지 은은한 회색빛이 감싼 전시장 중앙에 177㎝ 높이 불상이 홀로 서 있다. 불상의 앞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보니 마치 실제처럼 옷 주름이 져 있다. 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어떻게 저런 섬세한 조각을 할 수 있었을까 감탄하며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전시를 안내해주던 학예연구사가 이렇게 말했다.불상의 뒤편으로도 한 번 가보시겠어요? 진정 놀라운 건 바로…
장애 체육시설 부족의 아쉬움
지난해 9월 코리아 휠체어컬링리그를 취재하러 경북 의성에 갔을 때다. 휠체어컬링리그는 국내 처음 도입된 겨울 장애인스포츠 리그였다.의성컬링센터의 빙질 자체는 괜찮았다. 선수들도 리그 상위권 도약을 위해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컬링장 시설이 아쉬움을 남겼다. 휠체어가 드나들기에는 통로가 비좁았고 화장실 이용도 불편했다. 이는 비단 의성컬링센터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방으로 갈수록 체육시설은 낙후돼 있고, 여기에 장애인 편의시설까지는 언감생심이다. 지자체에서는 예산 문제를 얘기하지만, 비장애인 체육시설에 관한 관심이 그만큼 부족
'요구받는 화해'와 예정된 결과
취임 초부터 위안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던 박근혜 정부는 2015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까지도 위안부 문제에서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기도 전인 그해 12월 돌연, 피해자들조차 합의 내용을 몰라 졸속이라고 비판받는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다. 원칙에서 타협으로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던 것이다, 1년도 채 안 되는 그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선 과거사를 대하는 한국의 태도를 비난하는 듯한 웬디 셔먼 당시 미 국무부 차관의 발언이 있었다. 한일 관계의 책임이 마치 한국에 있다는 식의 충격적인 말이
벌거벗은 통계, 우리는 책임 없나
데이터저널리스트는 출입처가 따로 없다. 대신 통계와 데이터가 중요한 취재원이다. 이를 통해 공직을 감시하고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숫자 하나를 뽑기 위해 길게는 한 달씩 데이터와 통계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만큼 객관적인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오래 공들이는 중요한 취재원인 것이다.그런데 최근에 그 통계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만든 통계가 왜곡됐다고 포문을 열었고 여야는 계속해서 힘겨루기 중이다. 국가의 근본이라고 불리는 통계가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통계 왜곡은 최근에만
노조에 칼날부터 겨누는 노동 개혁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노동 개혁의 출발점으로 노사 법치주의를 꼽았다. 정작 노동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라고 한다. 사실 노사 법치주의라는 말은 어색하다. 노사관계에서는 자치(스스로 통치함)라는 말을 더 많이 쓰며 그 핵심은 대화와 협상이다. 대통령이 준법과 법치주의를 헷갈리는 것 같다(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일단 노사가 법을 지켜야 노동 개혁도 할 수 있다는 말일까?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30인 미만 기업이 주 52시간 상한제를 지키지 않은 걸 발견해도 올해까지는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기업이 주 52시
연애 않는 이들에게 출산 권하는 정부
2023년 토끼해가 밝았다. 새해 첫 칼럼인 만큼 토끼 같은 자식 이야기를 해보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모든 분야의 정책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주력하는 인구, 즉 저출생 이야기다. (현상의 책임을 여성에 지우는 저출산 대신 저출생이라는 표현을, 합계출산율 같은 학문 용어는 그대로 쓰겠다.)합계출산율 0.7명대 전망에 정부의 움직임은 절박하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전국을 누비며 산파 역을 자처하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부처 폐지 후 보건복지부 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 편입에 전력을 다한다. 육아휴직 기간과
질문을 계속하려면
유튜브 보니까 날씨가 엄청 춥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에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광화문 거리에서 시민에게 내일 날씨를 확인하셨냐고 물었더니 유튜브에서 봤다는 말이 돌아왔다. 회사를 마치고 거리에 나온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남성은 아마도 어떤 언론사가 올린 날씨 관련 영상을 봤겠지만, 그에게 언론사가 생산하는 뉴스와 유튜브는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언론사는 꾸준히 차별화하려고 하지만 20년 전에는 인터넷 포털에, 이제는 유튜브 안에 가두리 양식을 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만여개까지 늘어난 언론사가 조사까지 똑
'히스테리시스', 돌이킬 수 없는 기후 위기
맥주캔이나 콜라캔 같은 깡통에 강한 힘을 주면 찌그러진다. 발로 세게 밟으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납작해진다. 깡통이 견딜 수 있는 힘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어떤 형체에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이 가해졌을 때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변형이 일어나는 현상, 바로 히스테리시스(hysteresis)다. 우리말로는 이력 현상이라고 한다.변화를 일으킨 물질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비가역성(irreversibility)과 같은 의미로 모두 물리학에서 많이 쓰는 용어다. 그런데 최근 기후위기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도 히스테리시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