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씨 부녀와 문재인 대통령, 독자 여러분께 다시 사과드립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독자들께 더 신뢰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세 번째 사과였다. 성매매 관련 기사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딸 조민씨를 연상시키는 삽화를 사용해 큰 논란을 일으켰던 조선일보는 지난달 30일 지면에 또 한 번 사과문<사진>을 게재했다. 이번 사과는 28일 열린 조선일보 윤리위원회의 권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여 나온 것이었다. 윤리위원회에선 “이번 일을 심각한 사안으로 여겨 독자들에게 자세한 경위를 설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사과문과 함께 이날 28면 전면을 할애해 조 전 장관 부녀를 연상시키는 삽화가 어떻게 온라인에 올라가게 된 건지, 그 경위를 세세히 밝혔다.
조선일보 설명에 따르면 삽화 데이터베이스(DB) 관리부터 온라인 출고와 이를 관리·감독하는 방식까지 총체적인 결함이 있었다. 조선일보 DB에 있던 삽화엔 자세한 설명이 생략돼 있었고 기자 역시 이를 꼼꼼히 확인하지 않고 부주의하게 삽화를 기사에 추가했다. 데스크 선에서 걸러질 수도 없었다. 조선닷컴 디지털 제작 체계는 일선 기자가 기사를 수정하고, 사진이나 삽화도 직접 삽입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는 삽화를 추가했을 때도, 이 삽화가 문제가 돼 교체했을 때도 사회부 담당 데스크나 회사에 보고하지 않았다. 결국 취재 데스크와 디지털 콘텐츠 책임자들은 삽화 추가 이후 48시간 동안 문제 발생 사실을 인지하지 못 했다.
윤리위는 이번 사태에 대해 “조선일보 디지털 시스템 확장 과정에서 허점이 다수 드러났다”고 평했다. 다만 일각에선 이 같은 시스템상의 결함이 단지 조선일보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충분치 않은 인력에 그 누구보다 빨리, 많이, 또 자극적으로 온라인 기사를 유통해야 하는 현 미디어 환경에선 언제 어디서든 이와 같은 사고가 다시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DB 관리부터 기사 출고 및 관리·감독 결함은 마찬가지
이미 이전에도 비슷한 사고는 다수 발생했다. 불과 지난달만 해도 사건과 관계없는 사람들의 사진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기사에 사용해 당사자들의 항의를 받고 삽화로 교체한 언론사가 있었고, 무고한 일반인의 사진을 사실 확인 없이 조두순으로 못 박아 수많은 언론사들이 기사로 퍼트린 일도 있었다. 심지어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 관련 기사를 보도하며 조 전 장관의 사진을 잘못 게재한 언론사도 있었다. 이번 논란이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앞으로도 이런 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경제지에서 온라인뉴스를 관리하는 A씨는 “우리도 예전에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며 “그 때도 데스킹 없이 기사가 보도돼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A씨는 “속보 경쟁을 하며 워낙 빠르게 기사가 나가니 중간에 거를 장치가 없다”며 “네이버에 떠 있는 기사 보고 수정을 얘기하는 수준이다. 지금 같은 디지털 환경에선 조선일보와 같은 사고가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B 기자 역시 “데스킹을 거치긴 해도 빨리 속보를 내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사후에 ‘고치면 되지’라는 마인드가 기자들 사이에 팽배한 것 같다”며 “게다가 섬네일(그림) 욕심도 커지고 있는데 신문사 DB는 삽화든 실사든 없는 경우가 많다. SNS에는 다른 이미지가 필요한데 매번 쓰던 걸 또 쓰니 기자들이 사진을 바꿔 넣기도 한다”고 했다. 다른 경제지에서 디지털 업무를 담당했던 C 기자도 “사건사고에 붙일 이미지가 너무 없다”며 “그래서 정말 자극적인 사건사고는 삽화를 그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특히 이런 사고는 통합 콘텐츠관리시스템(CMS)을 도입한 언론사에서 일어날 여지가 더욱 크다. 고도화된 통합CMS를 사용할수록 CMS 내부에서 과거에 사용한 사진과 삽화를 쉽게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CMS를 사용하고 있는 한 종합일간지 D 기자는 “회사에서 빨리 기사를 송고하라고 해 DB에 있던 사진을 잘못 붙였다가 초상권 침해 소송 직전까지 간 적이 있다”며 “게티이미지처럼 돈을 내야 하는 사진인데 DB에 저장돼 있어 그냥 썼다가 한 장에 100만원의 저작권료를 낸 적도 있다. 몇 번 사고가 난 다음에야 사진에 빨간색으로 ‘초상권’ ‘사용불가’ 등을 적어 넣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DB 관리뿐만 아니라 온라인 출고를 관리·감독하는 방식 역시 문제다. 한 경제지 E 기자는 “우리 회사 같은 경우 취재한 기사는 부장이 데스킹을 보지만 보도자료는 그냥 기자들이 알아서 온라인에 출고한다”며 “보도자료를 포함하면 한 부서 기사가 하루 50~80개는 나올 수 있는데 데스크 한 명이 그걸 어떻게 다 보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당직 체제인 주말도 마찬가지다. 지역 종합일간지 F 기자는 “평일엔 모든 기사를 데스크가 보는데 토요일 같은 경우엔 혼자 일하다보니 데스킹 없이 기사가 바로 나간다”며 “조선일보와 같이 실수할까 봐 무섭다. 데스크도 괜히 클릭 수 얻으려고 오버하지 마라, 확실한 것만 쓰라고 하는데 그래도 실수에 대한 부담이 있으니 항상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기사 출고 전 데스크가 이를 점검해도 한계는 있다. 명확하거나 단순한 실수는 걸러낼 수 있더라도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양산되는 혐오 표현과 사진, 그림들은 관련 감수성이 없으면 놓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씨는 “데스크가 표현이나 이미지에 숨어 있는 조롱, 의미를 알아보지 못하면 아무리 데스킹을 본다 해도 걸러낼 수 없다”며 “데스크 10명이 있더라도 못 잡아낸다. 그런 건 어떻게 개선하거나 보완할지, 그저 사고가 안 터지길 바랄 수밖에 없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게이트키핑 일원화하고, 범용 이미지 제작해야
다만 현실적인 어려움을 얘기하며 손을 놓고 있기엔 그 어느 때보다 언론의 책무성이 커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게이트키핑 기능이 약화되는 현실과 별개로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오롯이 언론사가 져야 한다.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보수적 시각에서 언론사라 함은 게이트키핑이 작동되는 곳”이라며 “게이트키핑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전통적인 언론사와 1인 미디어 같은 곳의 차이가 없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언론이라) 주장하고 싶다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상황을 면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등 게이트키핑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번 사태를 거치며 △팩트체커 도입해 디지털 점검 강화 △과거에 쓴 일러스트 전면 사용 금지 △출고 전 관련 부서에 이미지 점검 의무화 등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최소한의 조치’ ‘미봉책’이라 지적했다. 조선일보 기자들도 지난 1일 노보를 통해 “팩트체커를 몇 명이나 둬야 하루 종일 쏟아지는 온라인 기사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겠느냐”며 “실효성이 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그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이원화된 게이트키핑 구조 자체부터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온라인 기사도 지면기사와 같은 정도의 엄밀한 관리가 되지 않으면 이번 사태와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결국 일원화된 편집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채용과 처우, 교육 등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회사(부서)가 별개의 조직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직 문화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도 “온라인 뉴스를 종이신문 뉴스와 다른 종류의 것으로 생각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언론사들이 범용 이미지를 제작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용도가 분명하고 익명화된 삽화를 써야 하는데, 언론사들은 사고가 나기 전까지 조심을 안 한다. 다른 회사 지뢰 터진 거 구경하다 자기 회사가 밟아야 안다”며 “모욕죄든 뭐든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지, 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는 지다. 이번 기회에 기존에 쓰던 이미지들은 점검하고 아예 특정인에 대한 동일성을 다 지워버린, 유추도 불가능한 범용 이미지들을 제작해 바꿔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