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운동

한국기자협회 온라인칼럼 [김주언의 미디어거울]



   
 
  ▲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정수장학회가 올해 양대 선거를 앞두고 최대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수장학회가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발목을 잡는 과거사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수장학회를 강탈한 이후 그의 딸인 박 위원장이 오랫동안 이사장을 맡아 왔고 최측근인 최필립씨에게 넘겼으나 실질적 소유주는 박 위원장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박위원장을 겨냥하며 정수장학회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일이라고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수장학회는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박근혜 위원장이 아직도 떠받들며 존경해 마지않는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멀쩡한 언론사를 강탈하여 정권의 홍보도구로 삼았다는 사실이 다시한번 만천하에 드러났다. 게다가 박위원장이 아직도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않으려는 것은 언론을 장악하려는 속셈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지분 100%와 문화방송 지분 30%, 그리고 경향신문 사옥 부지를 소유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총선과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언론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장악한 공영방송도 모자라 자신을 보위할 수 있는 민간 언론사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반한나라당식 신문제작이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산일보 사장의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려 하는가.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처럼 언론의 도움으로 권력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인가.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자신이 소유한 언론사들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을 자초해 권좌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박 위원장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수장학회 판결의 의미

박근혜 위원장은 최근 강탈된 주식이라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 뒤에 숨어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7부는 최근 5.16쿠데타 직후 강압에 의해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주식을 넘겼다며 고 김지태씨 유족이 정수장학회(당시 5.16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5.16쿠데타 당시 고 김지태씨가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자신이 소유한 언론사들의 주식과 토지를 강제로 빼앗겼다는 유족의 주장을 인정했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강탈한 장물이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자신 소유의 재산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산일보는 원래 부산지역 유지이자 사업가였건 고 김지태씨(삼화고무 회장)의 소유였다. 고 김지태씨는 5.16 쿠데타 직후인 1962년 군사정부에 불법 구금돼 조사를 받다가 협박에 못 이겨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등의 주식과 토지 10만평을 국가에 기부해 부일장학회를 설립했다. 부일장학회는 5·16장학회로 이름이 변경됐다가 이후 박정희의 ‘정’자와 육영수의 ‘수’ 자를 따와서 정수장학회로 탈바꿈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5년 타의에 밀려 사임하기 전까지 근 10년 동안 박근혜 위원장이 이사장을 맡아왔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는 2007년 고 김지태씨의 기부는 ‘공권력에 의한 강탈’로 결론내고 원상회복하거나 유족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정수장학회는 현재까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박 위원장은 정수장학회가 이미 사회에 환원된 것이라고 반발했지만, 자신의 핵심 측근인 최필립 전 리비아대사를 후임 이사장에 앉혔다. 정수장학회가 실질적으로 사회에 환원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박근혜 위원장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 전국언론노조 이강택 위원장과 부산일보 조합원들이 지난 1월 부산일보사 계단에서 출근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부산일보 지부 제공)  
 


박근혜 위원장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10년 동안 2억5000만원 가량을 연봉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장물 논란’은 더욱 가열돼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정수장학회는 김지태 선생의 부일장학회가 강탈당한 장물”이라며 “참여정부 때 진실·화해위가 강탈의 불법성을 인정했는데도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문고문은 이어 “지금은 손 뗐다면 과거 장물에서 얻은 과실은 어떻게 하냐”며 “상근도 안하면서 해마다 2억5,000만원이면 몇명 분 장학금이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야당의 공격에 대해 박 위원장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정수장학회는 자신의 손을 떠난 일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박 위원장은 “정수장학회는 사회적 공익재단이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장물’이라면서 모든 권력을 동원해 어떻게 해보겠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다”며 “2005년에 이사장을 그만두고 저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진정 부산의 민심을 듣고 싶다면 먼저 정수장학회를 사회환원하고 부산일보를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요구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편집국장을 대기발령하는 등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의 입을 막고 편집권마저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고 “박정희 독재정권이 강탈해 정수장학회를 만들더니 이제 박 위원장이 부산일보의 영혼까지 빼앗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언론사의 독립문제로 귀착


정수장학회 문제는 강탈재산이나 장물 논란을 넘어 언론문제로 귀착된다. 정수장학회는 부산 경남지역의 유력지인 부산일보 사장을 임명하는 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정치적 쟁점으로 보기 어려운 문제가 여기에 있다. 부산일보가 박 위원장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 경우 어느 때보다도 정치적 격랑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부산일보가 언론사로서 정수장학회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이다.

정수장학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일보의 ‘제2 편집권 독립운동’이다. 당시 부산일보는 정수장학회 비판 기사를 게재한 뒤 회사가 신문발행을 중단시키는 사태가 일어났다. 회사는 편집국에서 부산일보의 노사갈등과 전말을 다룬 기사를 지면에 싣자 사장 명의로 윤전기를 돌리지 말 것을 지시했다. 인터넷 뉴스사이트도 폐쇄했다. 부산일보의 윤전기가 멈춰 선 것은 지난 1988년 편집권 독립 투쟁 이후 23년 만이다.회사가 신문발행을 중단시킨 것은 65년 부산일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앞서 회사는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과 사장후보 추천제 도입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 위원장을 면직시켰다. ‘정수재단 사회환원 촉구’ 기사를 지면에 실으려 한 이정호 편집국장도 명령불복종 등을 이유로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후 부산일보 사태는 부산지역 시민사회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결국 부산일보 사장은 사퇴했다.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노조의 민주적 사장 선임제도 도입 요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사장을 임명했다. 부산일보 사태는 지역현안으로 아직도 진행중이다.

부산일보 노조가 정수장학회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서 편집권의 독립이다. 최근 MBC 기자들이 제작거부에 돌입한 뒤 파업을 이어가고 KBS 기자들도 제작거부에 나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1987년 언론사 노조가 결성될 당시 최대 이슈였던 공정보도를 위한 편집권 독립의 제도화가 25년 만에 또 다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부산일보는 1988년 언론노조 설립 이후 최초로 파업투쟁에 나섰다, 편집국장 직선제 등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6일동안 신문발행을 중단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그만큼 편집권 침해가 다반사로 행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부산일보가 정수장학회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이유도 편집권 독립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이사장이었던 2002년 한나라당이 위기에 몰렸던 탄핵정국이 조성됐다. 당시 부산일보 지면에 ‘이순신 칼럼’이 실렸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배 열두척으로 충심을 다해 싸워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의 마음으로 싸우라는 충언을 담은 내용이었다. 부산일보 기자들은 “한나라당 당보에 실릴 정도의 글이 부산일보 지면에 실렸다”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이 칼럼이 나간 뒤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부끄럽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서 박근혜 이사장에게 정수장학회에서 손을 떼라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 박근혜 위원장이 부산을 찾은 지난달 24일 부산일보 노조 조합원들이 박 위원장 방문지 앞에서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과 정수장학회 사회환원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결국 2005년 박근혜 위원장은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박 이사장은 부산일보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당시 박 최측근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를 이사장 자리에 앉혔다. 당시 최 이사장은 취임 직후 노조와의 면담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요청으로 이사장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고 부산일보 이호진 노조위원장은 밝혔다. 이 위원장은 “최 이사장은 '부산일보가 행여라도 노조의 강성 투쟁으로 문을 닫게 되면 내가 박정희 대통령을 뵐 면목이 없지 않겠느냐’며 여전히 박 전 대표의 영향력 하에 있음을 느끼게 했다”고 덧붙였다. 정수장학회 이사장실 벽에는 박 전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고, 책상에는 박 전 대표와 인사를 나누는 사진도 붙어 있다.

부산일보 노조는 또다시 편집권 독립 투쟁에 나섰다. 노조는 2006년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사 경영진 선임에 전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며 ‘사장추천제’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40일동안 이어진 투쟁은 이사장과 경영진이 ‘전향적 검토’를 약속하면서 일단 봉합됐다. 그러나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불공정 보도는 계속됐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선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김모씨가 동영상 UCC와 배너광고를 게시해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건은 불명확한 이유로 보도되지 못했다. 그해 3월에는 재단이 임명한 사장의 “반미 반재벌 반한나라 식 신문제작이 회사에 도움이 안된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08년 대선때는 한나라당에 유리한 기사로 논란에 휩싸였다. 공정성과 신뢰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언론사로서는 치명적인 문제이다.

부산일보로서는 생존문제도 걸려 있다. 거의 모든 신문사가 마찬가지이지만, 부산일보는 지난 5년 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2년 호황기에 800억여원까지 기록했던 매출은 지난해 450여억원으로 줄어들었고 당기순손실만 57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정수장학회는 매년 기부금 명목으로 8억원의 기부금을 부산일보에서 꼬박꼬박 받아갔다. 부산일보뿐만 아니라 정수장학회가 지분 30%를 갖고 있는 MBC도 20억원을 기부했다.

정수장학회는 지난 해 21억5000만 원의 장학금을 썼다. 두 언론사에서 28억 원을 걷었는데 이마저도 다 쓰지 않았다. 예금재산은 200억원 가까이 이르지만 한 푼도 장학금에 안 쓴다. 게다가 3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MBC의 자산가치는 주식시장에 상장할 경우 10조원을 넘는다는 추정도 나온다. 여기에 대구 영남대도 정수장학회 소유다. 경향신문사 사옥 땅 일부도 갖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금은 내지 않고 누구에게 물려주려 하는가.


진정한 사회환원을 이루려면

결국 박근혜 위원장은 이러한 엄청난 자산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려 하는 것이다. 이미 사회에 환원했다는 말로 끝날 수는 없다. 정수장학회의 이사진과 이사장을 사회구성원이 선임하고, 공적인 목적을 위해 투명하게 사용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사회환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박 위원장이 스스로 실질적 관계를 청산하고 사회공론화 과정을 통해 재편해야 한다.


박근혜 위원장은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독재자인 ‘아버지의, 아버지에 의한, 아버지를 위해’ 불법적으로 탈취한 재산으로 설립된 재단을 그대로 틀어쥐고 있다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박 위원장은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을 하려면 잘못된 과거사는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 게다가 언론사를 틀어쥐면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허황된 꿈도 버려야 한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에서는 가능한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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