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란 중앙일보 기자

선경래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이사는 시장의 ‘전설’이다. 1990년대 초반 동원증권에 입사해 주식부에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과 인연을 맺었다. ‘박현주 사단’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으로 미래에셋 창업에 동참했다. 대표 펀드인 ‘인디펜던스’를 맡아 업계 최고 수익률을 올렸다. 34세 나이에 주식운용본부장이 됐다. 잘나가는 펀드 매니저인 그였지만 2002년 돌연 사표를 던졌다. 박 회장이 그를 잡기 위해 연봉 100억원을 제시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회사를 나와 원금 10억원으로 선물(先物) 투자를 시작했다. 6년 만에 2000억원 넘게 불렸다. 최근에는 서울 서초동에 있는 빌딩을 620억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그를 ‘슈퍼 메기’라 부른다.

그의 밑에서 투자를 배운, 지금은 한 자산운용사의 주식운용본부장이 된 A씨가 해 준 얘기다. A씨는 선 전 이사의 투자 성공 비법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그는 선 전 이사와 주고받은 대화를 들려줬다.

먼저, 어느 날인가 선 전 이사가 A씨에게 물었단다. “투자에는 네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좋은 주식을 싸게 사는 경우, 좋은 주식을 비싸게 사는 경우, 나쁜 주식을 싸게 사는 경우, 나쁜 주식을 비싸게 사는 경우. 이 중 가장 나쁜 투자가 뭘까”라고.

보통 사람은 ‘나쁜 주식을 비싸게 사는 경우’라고 답할 거다. 그런데 선 전 이사는 다른 답을 내놨다.
“좋은 주식을 비싸게 사는 경우다. 나쁜 주식을 비싸게 사면 시간이 지나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손절매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주식에 투자하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 그렇지만 좋은 주식을 비싸게 산 경우엔 그렇게 못한다. 분명히 좋은 주식인데 주가가 안 오르니 답답하다. 팔지도 못한다. 시장이 언제 가치를 알아채고 내가 판 다음날부터 주가가 오를지 몰라서다. 시장만 원망하다가 시간 다 보낸다.”

주식시장 격언에 ‘주식과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좋은 주식이니까 내가 옳다는 확신에 빠져 시장과 싸우려 든다. 시장을 거스르고선 투자에 성공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카지노 얘기를 꺼내면서 했단다. “카지노에서 왜 돈 버는 사람이 드문지 아니? 블랙잭에서 플레이어가 이길 확률은 48%다. 딜러가 승리할 확률은 52%고. 한두 번 하면 플레이어나 딜러가 반반씩 이길 수 있다. 그런데 수십, 수백 번 하면 다르다. 게임 횟수가 늘어날수록 승률은 평균에 가까워진다. 주야장천 게임을 하다간 플레이어가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승률이 80%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런 경우는 1년에 몇 번 오지 않는다. 그때만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다.”

클로드 섀넌 MIT 교수는 UCLA 물리학과 대학원 과정을 거친 에드워드 소프를 만나 블랙잭에 대해 연구했다. 에드워드 소프는 훗날 차익거래를 이용해 월가에서 헤지펀드로 크게 성공한 인물이다. 이들은 블랙잭에서 이기는 필승 전략인 ‘켈리 공식’을 발견한다. 카드를 세고 있다가(카드 카운팅) 딜러가 조금이라도 확률적으로 불리한 시점을 포착해 그때마다 확률만큼 베팅액을 조절한다. 확률에 입각한 베팅 끝에 블랙잭으로 큰돈을 벌게 된다. 그러나 돈을 잃게 된 카지노 측이 카드 숫자를 계산하지 못하게 블랙잭 규칙을 바꿨다. 요즘에는 카드 카운팅을 하는 사람은 카지노 입장을 제한한다.

주식을 한 번 사서 팔면 약 0.33%의 매매 수수료(온라인 최저 수수료 0.015%×2)와 세금(0.3%)을 낸다. 1년 영업일수를 240일이라 하고 하루 한 번만 주식을 사고팔아도 1년에 원금의 약 80%가 수수료와 세금으로 날아간다. ‘쉬는 것도 투자’라는 말이 있다. 확실한 승리가 점쳐질 때만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 매매를 여러 번 하는 게 아니라 한 번을 제대로 해야 한다.

10억원으로 2000억원을 만든 고수의 비법치고는 별 게 없다.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라는 것, 그리고 확신이 섰을 때만 투자하라는 것. 쉬워 보이는데 막상 투자를 할 때 지키기 어렵다. 자기 확신과 투자에 중독되기 쉬운 인간이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