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이 피아노 건반 위를 또르르 굴러간다.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집중했다. 아름다웠다. 익숙한 멜로디였지만 전혀 새로운 듯 방안의 공기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드뷔시-달빛’ 달빛이 은은히 비치는 창가, 고요하게 일렁이는 물에 비친 달이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으로 시작해 ‘쇼팽-녹턴’으로 빛을 뿌리더니 ‘베토벤-엘리제를 위하여’에 이르러 첫 마디에서 그만 숨이 막힌다. 체르니 30번쯤 치게 되면 누구나 친다는 그 흔한 ‘엘리제를 위하여’에서 가슴이 내려앉는 감동을 받다니 어찌 놀랍지 않은가.
과장이 아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 지휘자 정명훈이 들고 온 소품집 ‘피아노’는 반짝반짝 ‘작은 별’같은 마법을 부렸다. 하던 일을 멈추고 꼼짝없이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 말이다. 사람을 멍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아름다움의 힘. 작지만 긴 시간을 이겨낸 소품, 즉 명곡을 재발견하게 해준 고마운 음반이었다. 그런 정명훈이 드디어 피아노와 한 무대에 선다.
1974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하고 돌아온 그는 김포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다. 모두 어렵던 시절, 그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하지만 아쉽게도 피아니스트 정명훈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지휘자로 40년을 지낸 그가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이렇게 말한다. 사실 ‘지휘’보다 ‘피아노’가 훨씬 좋다고. 이쯤이면 ‘고백’ 아닌가.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진짜 음악’을 들려주겠단다.
피아노는 운동과 같다. 갈고 닦지 않으면 손이 굳는다. ‘늦깎이’ 피아니스트는 틈틈이 연습에 매진했다. 지난 2월 잠시 귀국한 그를 서울시향 사무실에서 만난 기억이 난다. 약속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그의 방에선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촬영을 위해 같은 곡을 무려 5번이나 기꺼이 반복해 치는 이례적인 모습까지. “이 정도면 될까? 손이 잘 안 돌아가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 평소 방송용 마이크를 가슴에 다는 것조차 꺼릴 정도로 예민하던 마에스트로의 낯선 모습이 아닌가. 그는 피아노 앞에선 마치 ‘신인’ 같았다.
16살에 산 피아노를 지금껏 쓰다 이번 연주회를 위해 새로 피아노를 들였다. 프란츠 리스트가 애용했다는 ‘뵈젠도르퍼’다. 울림을 배가시키는 저음부 건반이 9개 더 있는 ‘뵈젠도르퍼’는 깊은 소리는 더 깊게, 아름다운 소리는 더 가녀리게 내는, 그래서 한결 부드럽고 여성적인 피아노이다. 그 ‘애기(愛器)’를 프랑스에서 고국에 데리고 왔다. 최근 기자간담회 때 선보인 피아노가 바로 그 녀석이다. 고가의 보험도 들었다. 지방 무대엔 온도 조절되는 무진동 차량을 동원해 운반될 몸이며 조율은 안드라스 쉬프의 조율사가 맡는다. 그가 이번 연주회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애착을 쏟는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도전’이다. 최고의 경지를 이룬 지휘봉을 내려놓고, 권위의 옷을 벗고, 피아노 앞에 앉는다? 우문을 던졌다. 직접 듣고 싶었다. “혹시 점점 대중과 멀어지고 있는 클래식을 살리기 위한 것인가?”
정명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좋아서 하는 거지!” 웃음이 번졌다. 그 말이 듣고 싶었다. 진짜 좋아서 하는 음악. 최고의 경지를 경험한 거장이 힘을 빼고 자신이 즐기는 음악을 들려주는 것. 조금이라도 의무감이 섞인 음악이 아닌, 순도 100%짜리 ‘좋아서 하는 음악’ 말이다. 우리 시대 거장 정명훈이 즐기는 기쁨을 담아낸 음악은 과연 어떨까. 순수한 무언가를 만난다는 것이 어려운 세상, 그래서 벌써 설렌다. ‘오버’일까?